늘 장죽을 물고 계셨던 할머니 방은 담배 내가 심했다. 가족들이 들락날락할 때도 문바람에 냄새가 사방팔방으로 퍼져나갔다. 설날에는 문턱이 닳도록 사람들이 드나들어 저마다 담배 한, 두 개비는 피운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였다. 평소 꼬깃꼬깃 챙겨둔 용돈이 많아 할머니는 <세객>(歲客)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세배 드리는 예의보다 세뱃돈 받는 잇속에 더 관심을 두었던 손자들에게 설날은 계 타는 날이었다고나 할까.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손자들이 변장을 하고서 세배를 두 번 드린 것이다. 세 배를 두 번 드렸으니 세뱃돈은? '곗돈'은 배로 불었다. 할머니는 연로하셨다.
음력으로 1월 1일(정월 초하루)을 뜻하는 설 연휴가 내일 시작된다. 이번 설날은 17일이다. 설은 오랜 전통의 큰 명절이어서 관련된 낱말도 퍽 많다. 설이 왜 설일까? 설은 아직 설익은 상태에 있는 것을 뜻한다. 설익은 해의 첫날이 설날인 이유다. 첫 달은 '설+달'이지만 <섣달>로 굳었다. 한 술 두 술 하는 술과 가락이 만난 술+가락이 숟가락이 된 이치와 한가지다. 그러나 지금은 음력 12월을 섣달로 쓴다. 예전엔 음력 12월에 설날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섣달 하면 으레 따르는 말이 그믐이다. 섣달그믐 하면 음력으로 한 해의 마지막 날을 가리킨다. 이번 섣달그믐은 16일일 수밖에 없다.
설날, 눈이 올 때도 있지 않겠나. 설날 아침에 내리는 눈을 <설밥>이라고 했다. 설밥이 곱기는 하지만 먼 길 어렵사리 세배 다녀야 하는 이들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예전엔 동네 어른들한테도 세배를 다녔다.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들도, 더 어른들에게 세배를 다녔음은 물론이다. 친척들 간에는 <세찬>(歲饌)을 주고받기도 했다. 차례상에 올릴 음식 말이다. 민속에 관한 기록을 보면 <문안비>(問安婢)라는 단어도 나온다. 출입이 자유롭지 못한 부녀자 사이에서 정초에 새해 인사를 전하기 위해 보내던 여자 하인을 뜻한다. 하인이라니? 너무 오래된 이야기다. 뭐니 뭐니 해도 설엔 이 말이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서울=연합뉴스, 고형규 기자, uni@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