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한국 게임산업 역사에 남을 초대형 거래가 성사됐다.
한국을 대표하는 1세대 게임사 위메이드의 창업자이자 '미르의 아버지'로 불리는 박관호 위메이드 의장이 자신이 보유한 지분 39.33% 전량을 약 9200억원에 매각하면서 중국계 투자 플랫폼 네오펄스가 최대주주에 올랐다.
겉으로는 대형 M&A(인수합병)이지만, 위메이드와 박 의장, '미르' IP가 갖는 상징성을 감안하면 단순한 경영권 변경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AI가 바꾸는 개발 환경, 중국 시장의 영향력 확대, 1세대 창업자의 퇴장까지 한국 게임산업이 마주한 굵직한 변화가 이번 거래에 집약돼 있다. 여기에 1조원에 가까운 중국 자본이 유입됐음에도 산업적으로 큰 관심을 받지 못한 현실 역시 한국 게임산업의 저평가를 보여주는 단면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9200억원 거래, 두 개의 시선
업계에서는 이번 계약을 '위메이드'보다 '미르' IP의 미래를 산 거래로 해석한다.
위메이드의 MMORPG 개발력도 있지만, 중국 시장에서 20년 넘게 검증된 '미르' IP의 가치가 기업가치보다 훨씬 높게 평가됐다는 것이다. 중국 자본이 최대주주가 되면서 향후 중국 시장에서 '미르' IP의 영향력이 더욱 확대될 가능성도 커졌다.
중국은 여전히 국내 게임사들의 최대 시장 가운데 하나다. 판호 발급이 재개됐지만 진입 장벽은 여전히 높고 현지 네트워크의 중요성도 커졌다. 여기에 중국 게임사들의 개발력까지 빠르게 성장하면서 이번 거래 역시 이러한 시장 변화가 반영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이번 거래를 바라보는 시선은 엇갈린다. 김정태 동양대 게임학부 교수는 국내 대표 게임 IP가 사실상 해외 자본의 영향력 아래 놓이게 됐다는 점에서 한국 게임산업 경쟁력의 해외 이전을 상징하는 부정적 사례라고 평가했다.
반면 업계에서는 보다 현실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 글로벌 게임산업에서 자본 이동은 이미 자연스러운 흐름이며, 오히려 저평가됐던 국내 게임산업과 IP의 가치가 제대로 인정받았다는 해석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투자자의 국적이 아니라 개발 조직과 경쟁력을 얼마나 유지하고 성장시키느냐 라는 것이다. 다만 국내 대표 게임 IP의 전략적 방향이 해외 자본의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커졌다는 점은 앞으로도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창업자의 퇴장…게임산업도 패러다임 교체
이번 거래의 또 다른 상징성은 박관호 의장의 퇴장이다.
국내 게임산업을 일군 1세대 창업자들은 대부분 지금까지 경영권을 유지해 왔다. 게임은 창업자의 철학과 색깔이 기업 경쟁력으로 이어지는 산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 의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업계에서는 한국 게임산업이 새로운 세대로 넘어가는 신호탄으로 받아들이는 시각도 적지 않다.
동시에 이번 거래는 한국 게임산업의 현실도 보여준다. 개발비는 계속 늘고 흥행 성공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지만 국내 게임사들의 기업가치는 좀처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게임산업은 지금 AI라는 거대한 변곡점을 지나고 있다. AI는 코드 작성과 이미지 생성, 번역, QA, 라이브 서비스 운영 등 반복 업무를 빠르게 대체하며 개발 방식을 바꾸고 있다. 일부 중소 게임사에서는 주니어 개발자의 역할 상당 부분을 AI가 맡을 정도로 활용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반면 어떤 게임을 만들고, 세계관을 구축하며, 이용자에게 어떤 재미를 줄 것인지를 결정하는 일은 여전히 사람의 영역이다. 결국 AI 시대 게임사의 경쟁력은 개발 인력의 규모보다 기획과 설계, 창의성을 갖춘 조직으로 이동하고 있다. 최근 글로벌 빅테크와 게임사들이 AI 중심으로 조직을 재편하는 것도 같은 흐름으로 해석된다.
'사람'을 품어야 성공하는 인수…고용승계가 최대 시험대
결국 이번 경영권 교체에서 가장 중요한 화두는 사람이다.
위메이드와 계열사에는 2000명 안팎의 개발자와 사업·운영 인력이 근무하고 있다. 최근 게임업계는 투자 위축과 프로젝트 축소, 구조조정 등의 영향으로 채용 시장이 크게 위축된 상태다. 과거처럼 새로운 프로젝트를 찾아 쉽게 이직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닌 만큼, 임직원들에게는 고용 안정성과 승계 여부가 무엇보다 민감한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다.
게임산업 경쟁력의 핵심은 결국 사람이다. 단기적인 비용 절감보다 조직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것이 기업가치와 서비스 경쟁력을 지키는 데도 유리하다. 특히 중국 자본이 새 주인이 된 만큼, 기존 개발진과 조직을 얼마나 존중하고 시장의 신뢰를 확보하느냐가 인수 이후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될 전망이다.
경영진의 연속성도 관심사다. 업계에서는 위메이드맥스 손면석, 위메이드플레이 우상준 등 주요 계열사 대표들이 각자의 사업 분야에서 축적한 경험과 노하우를 갖춘 만큼, 이들의 역할이 유지될지에도 주목하고 있다. 새 투자자 입장에서도 기존 경영진과 개발 조직은 단기간에 대체하기 어려운 핵심 자산이라는 평가다.
이번 거래는 단순히 한 게임사의 주인이 바뀐 사건으로만 보기 어렵다. 국내 게임산업의 기업가치, 글로벌 자본과의 협력, 중국 시장 의존도, AI가 바꾸는 개발 환경, 그리고 1세대 창업자의 퇴장까지 한국 게임산업이 마주한 과제가 모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국내 게임사들도 글로벌 IP와 개발사에 적극 투자하는 만큼 이번 거래를 무조건 부정적으로만 바라볼 필요는 없다"며 "AI 시대일수록 기술의 차이는 점점 좁혀질 수 있지만 사람과 조직의 차이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자본은 회사를 살 수 있어도 개발 문화와 창의성, 그리고 좋은 게임을 만드는 조직까지 하루아침에 만들 수는 없다. 기존 경쟁력을 얼마나 존중하고 이어가느냐가 이번 인수의 성패를 가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 거래가 한국 게임산업의 새로운 성장의 출발점이 될지, 해외 자본 의존이 심화되는 계기가 될지는 결국 사람과 조직을 얼마나 지켜내느냐에 달려 있다"고 덧붙였다.
남정석 기자 bluesky@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