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e스포츠의 본격적인 국제화 과정에서 어처구니 없는 일이 발생했다.
▶어이없는 일방통행
현재 e스포츠를 대표하는 국제기구는 한국이 주도해 지난 2008년 설립된 국제e스포츠연맹(IeSF)이다. 'e스포츠 종주국'으로 불리는 한국을 비롯해 현재 46개국이 참가하고 있다. 다른 종목에 비하면 아직 시작 단계라 할 수 있다.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등 종합대회 등의 인기가 예전같이 못해 스폰서 영입 등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IOC나 OCA가 e스포츠에 점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자구책이라 할 수 있다. 이런 가운데 OCA가 IeSF와 NOC 등을 배제한 가운데, 자본력이 있는 민간기업과 손을 잡는 무리수를 둔 것이다.
이미 IeSF는 투르크메니스탄 대회 조직위와 협의를 한 결과, IT 인프라 미비와 예산 부족 등으로 e스포츠를 치르기 부적합하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하지만 OCA는 '도타2', '하스스톤', '스타크래프트2' 등의 종목을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여기에 알리스포츠 온라인 사이트를 통해 접수를 받고 국가별 대표를 선발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국가를 대표해 출전하기 위해선 NOC가 이를 관장해야 하는데, 마치 하나의 e스포츠 글로벌 대회를 치르는 방식을 도입한 것이다.
한국e스포츠협회가 대한체육회에 문의했지만, 당연히 OCA로부터 통보를 받지 못했으며 이미 국가대표를 모두 선발한 상태라 e스포츠 대표를 추가로 파견할 수 없다는 의견을 받았다. 알리스포츠가 위치한 중국의 중국국가체육총국조차 이런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것은 일종의 '코미디'라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협회는 중국, 몽골, 베트남, 이란 등과 연합해 올해 실내무도아시안게임 불참을 선언하는 한편 e스포츠 정상화를 위해 OCA에 공식 입장 발표를 요구하고 나선 상태다. OCA가 2022년 정식 종목 채택에 앞서, 2018년 자카르타 아시안게임에서 e스포츠를 시범 종목으로 실시하겠다는 계획을 밝혔기에 이번에 확실히 매듭을 짓고 가야하는 시급한 상황이다.
▶e스포츠 주도권 싸움 격화
이번처럼 OCA와 알리스포츠가 '일방통행'을 한 이면에는 IeSF의 영향력이 아직 부족하다는 이유가 깔려 있다.
중국은 국가체육총국이 지난 2003년 e스포츠를 99번째 정식종목으로 채택하며 성장을 거듭하고 있지만 한국은 아직 대한체육회 정식 가맹종목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을만큼 국가별로 e스포츠의 지위는 다르다. 또 한국e스포츠협회는 이미 20년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며 IeSF 창립을 주도할 정도로 자리를 완전히 잡았지만, IeSF에 참여하고 있는 국가별 협회의 운영능력이나 대표성도 천차만별이다.
IeSF는 전병헌 회장(현 청와대 정무수석)이 이끄는 가운데 지난해 2월 IOC에 공식 가입을 신청했고, 이에 앞서 세계반도핑기구(WADA)의 공식 인정, 세계생활체육연맹(TAFISA) 정식 가맹, 스포츠 어코드 가입 등 스포츠 외교력을 높이고 있다. 또 지난 2009년부터 매년 꾸준히 'IeSF 월드 챔피언십'을, 그리고 지난해부터 매년 세계e스포츠정상회의를 개최하고 있다. 여전히 갈 길은 멀지만 차근차근 영향력을 확대, 기존 스포츠 종목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 노력중이다.
또 하나는 IeSF를 견제하고, 주도권을 잡겠다는 중국 기업들의 포석이 깔려있다. 중국은 엄청난 자본과 e스포츠 팬층을 앞세워 세계 최대의 e스포츠 시장으로 성장했다. 최근 중국인터넷정보센터(CNNIC) 발표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e스포츠 시장의 실질 판매수익은 504억 6000만위안(약 8조 2000억원), e스포츠 유저 수는 약 2억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알리바바를 모기업으로 하고 있는 알리스포츠를 비롯해 세계 최대 ICT기업으로 성장한 텐센트, 퍼펙트월드 등 중국 회사들은 e스포츠 전용경기장과 테마파크 조성, 인재양성 등은 물론 e스포츠 산업도시까지 만들겠다고 나서고 있다. 중국 기업들간의 격화된 경쟁 속에서 이번 일이 터진 셈이다.
어쨌든 주도권 경쟁에서 밀리고 있는 한국으로선 IeSF의 존재감 확대를 위해 스포츠 외교력을 더욱 발휘해야 하는 상황이다. 또 국내에선 대한체육회 정식 가맹 등 '자강론'도 필요하다. e스포츠 전문가들은 "글로벌 e스포츠 경쟁에서 밀린다면, 그나마 가지고 있던 주도권도 뺏기게 된다. 미래의 대세 스포츠인 e스포츠의 가치 재평가도 이뤄져야 한다"며 "그래도 문재인 대통령이 게임산업에 호의적이고, 전병헌 정무수석이 e스포츠 발전을 위해 계속 노력하겠다고 밝히는 등 정부 측면에선 기대감이 크다. 국내 e스포츠 전성기였던 2000년대처럼 기업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남정석 기자 bluesky@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