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번 만 더 믿어달라고 했다. 승점 3점만 생각하겠다. 카타르에 대한 모든 분석을 마쳤다."
선수선발부터 조짐이 좋지 않았다. 일단 플랜B가 없었다. 슈틸리케 감독은 김신욱(전북) 양동현(포항) 등 전문 스트라이커를 배제했다. 대신 활동량과 연계력이 좋은 황희찬 이근호 등을 대거 발탁했다. 의도는 명확했다. 점유율 축구를 더 강조하겠다는 것이었다. 타깃형 공격수 카드는 공격이 단조로워진다는 측면은 있지만 활용법에 따라 위력이 달라질 수 있다. 특히 골이 필요한 순간, 이들의 존재가치는 더욱 커진다. 센터백도 여전히 중국파 일변도였다. 중국파는 최근 조금씩 출전 기회를 늘리고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감각이 떨어져 있다. 정작 K리그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는 수비수들은 모두 빠졌다. 리그에서 부진한 곽태휘(서울)는 여전히 슈틸리케 감독의 신임을 받았다.
시작은 좋았다. 지난달 29일 파주NFC(국가대표 트레이닝센터)에 합류한 손흥민(토트넘) 기성용(스완지시티) 이청용(크리스탈 팰리스) 등 유럽파와 이근호 이재성(전북) 등 K리거 12명이 모여 훈련을 시작했다. 생각보다 강도가 높았다. 전술 훈련도 조금씩 병행했다. 선수들은 강한 의지를 보였다. 카타르 단교로 인한 변수가 생겼지만 선수들의 컨디션은 나쁘지 않아보였다. 슈틸리케호는 3일 1차 전훈지인 아랍에미리트로 넘어갔다.
스케줄 관리도 엉망이었다. 대표팀은 8일 이라크와의 평가전 후 다음날 회복 훈련으로 피로를 풀었다. 이날 이라크전에 선발로 출전해 대부분의 시간을 뛰었던 8명은 나오지 않았다. 훈련은 일찍 교체되거나 늦게 투입된 선수들 중심으로 간단하게 진행됐다. 8명은 숙소에서 쉬며 회복에 주력했다. 다음 날에는 재충전과 분위기 전환을 위해 대표팀 전체가 휴식을 취했다. 이어 다음날 카타르에 입성한 대표팀은 별도 훈련을 하지 않았다. 아랍권의 카타르 단교로 이동에 많은 시간을 허비했기 때문이다. 대표팀은 직항편이 막히면서 제3국으로 경유해야 했고, 그 바람에 1시간이 걸리는 도하까지의 거리가 4시간이 더 걸렸다.
결국 대표팀은 단 이틀만 훈련을 하고 경기에 나섰다. 컨디션이 좋았을리가 없다. 선수들의 몸은 이번에도 무거워보였다. 상대의 움직임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전술이 없었다. 슈틸리케 감독은 전술이 아닌 선수들의 정신상태를 지적했지만 번지수가 틀렸다. 분석했다던 상대는 스리백을 들고 나왔다. 슈틸리케 감독은 이에 전혀 대응하지 못했다. 아시아 최고 수준의 선수들을 이토록 무력하게 보일 수 있도록 하는 것, 슈틸리케 감독의 무능을 설명하는 충분한 이유다.
"믿어달라"고 했지만 슈틸리케 감독에게는 준비도, 계획도 없었다. 그 대가는 너무 뼈아프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