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계약선수(FA)의 최대 알짜배기로 평가받은 이현웅이 수원과 3년 계약을 체결했다. 2010년 신인드래프트 1순위로 대전 유니폼을 입은 이현웅은 안정된 경기운영과 탁월한 개인기량으로 대전 최고의 미드필더로 평가받았다. 특히 패스는 그의 트레이드마크다. 동료의 움직임을 이용해 빠른 패스로 상대의 공간을 파괴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연세대 재학 시절 대학 무대에서는 최고의 패스마스터로 통했다.
2010년 K-리그 데뷔전에서 데뷔골을 터트리는 등 프로무대에도 빠르게 적응했다. 아픔도 있었다. 2011년 발목부상으로 쓰러졌다. 이후 대전도 추락했다. 마무리 패스를 넣어줄 선수가 없었다. 왕선재 전 감독은 지휘봉을 놓을 때까지 이현웅의 부재를 아쉬워했다. 시즌 막바지가 돼서야 그라운드에 돌아올 수 있었다. 2012년 부임한 유상철 전 감독도 이현웅을 아꼈다. 2012년 시즌을 앞두고 많은 팀들로부터 이적제의가 들어왔지만 모두 거절했다. 이현웅에게 에이스의 상징인 등번호 10번을 주었다. 시즌 중반부터는 특유의 패싱감각을 뽐냈다. 36경기에 나서며 건강에 문제가 없음을 알렸다. 대전에서 3시즌을 뛰면서 69경기에 나서 2골-6도움을 기록했다.
이현웅이 FA시장에 나서자 많은 팀들이 달려들었다. 이적료가 없었다. 전년도 연봉 100%에 해당하는 보상금만 지불하면 데려갈 수 있다. 성남, 부산, 제주, 강원, 경남, 대구 등이 관심을 나타냈다. 대전도 잔류를 위해 노력했다. 승자는 결국 수원이었다. 이현웅은 라돈치치와 정대세, 핑팡 등 스트라이커들에게 날카로운 패스를 공급함으로 수원의 공격에 날개를 달아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수원은 이종민을 영입하면서 고민이었던 오른쪽 측면 수비도 해결했다. 2002년 수원에서 프로에 데뷔한 이종민은 2005년 울산으로 이적했다. 울산에서 4시즌을 소화한 뒤 2008년 서울로 이적했다. 2011년과 2012년 상주에서 군복무를 마친 그는 2012년 서울로 복귀했지만 3경기 출전에 그쳤다. 주전 오른쪽 풀백 오범석의 군입대로 고민이 깊었던 수원은 이종민을 데려오면서 걱정을 한 시름 덜 수 있게 됐다. 이 건 기자 bbadagu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