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나이로 33세다. 그라운드를 떠날 준비를 해야할 시점이다. 새로운 길을 선택했다. 중동에서도 가장 보수적인 이슬람 국가 사우디아라비아 알 샤밥으로 이적했다. 마지막 도전을 위한 최후의 카드다. 곽태휘는 한국 축구의 간판 중앙수비수로 성장했다. 하지만 늦깎이 나이에 변화가 절실했다.
뒤늦게 축구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17세였다. 여정은 험난했다. 고 2때 왼쪽 눈을 다쳤다. 불가항력이어서 1년간 휴학했다. 고 3때는 허리디스크, 대학교 4학년 때는 어깨 근육을 다치는 시련을 겪었다. 고비였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2008년 인생에 드디어 봄이 오는 듯 했다. 태극마크를 달았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 예선 1차전 투르크메니스탄전(4대0 승)에서 전반 44분, A대표팀의 577분(인저리타임 포함) 골 침묵을 깨며 결승골을 터트렸다. 기쁨도 잠시, 왼발목에 이어 오른무릎 전방십자인대 수술을 받았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을 목전에 두고는 더 큰 상처가 기다리고 있었다. 최종엔트리 발표 직전인 벨라루스와의 평가전에서 왼무릎 내측인대가 파열됐다. 공든탑이 한 순간에 무너졌다. 그는 해외전지훈련 캠프인 오스트리아에서 쓸쓸히 귀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2011년 1월 카타르아시안컵에서 부활을 노렸다. 예기치않게 첫 단추부터 엉켰다. 조별리그 1차전 바레인전(2대1 승)에서 페널티킥을 허용하며 퇴장당했다. 오심에 가까운 악의적인 판정이었지만 비난을 피할 순 없었다. 인도와의 조별리그 최종전(4대1 승)에 복귀했지만 또 다시 페널티킥을 헌납하며 실점을 허용했다. 최강희호에서 주장 완장을 차며 날개를 달았지만 최근 다시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굴곡의 역사, 그 한 풀이가 남았다. 2005년 FC서울에서 프로에 데뷔한 곽태휘는 2007년 전남으로 이적했다. 2010년 일본 J-리그 교토에서 한 시즌을 뛴 그는 2011년 K-리그로 돌아왔다. 울산을 선택했다. 부를 포기했다. 당시 '오일달러의 보증수표'인 카타르 클럽 등 중동에서 러브콜을 받았다. 연봉 단위가 달랐다. 10억원대에서 출발했다. 명예회복을 노렸다.
다시 2년이 흘렀고, 그도 노장이 됐다. 2011년 울산은 K-리그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지난해에는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주장 곽태휘는 일등공신이었다. 하지만 마음속 빈자리는 채워지지 않았다. 정체돼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울산도 지난 시즌 후 곽태휘를 보내주기로 이미 약속했다. 알 샤밥 외에 중국과 중동의 다른 클럽 3~4 구단이 그의 영입을 희망했다.
눈을 돌릴 곳이 없는 '사우디 축구 감옥'에 갇히기로 했다. 그의 마지막 목표는 2014년 브라질월드컵 출전이다. 알 샤밥과의 계약기간이 1년 6개월인 것도 월드컵을 염두에 둔 모험이었다.
"새로운 도전을 응원해 달라." 곽태휘는 배수진을 쳤다. 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