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에 걸린 에인트호벤은 황홀경

기사입력 2013-08-22 07:56


◇21일(한국시각) PSV에인트호벤-AC밀란의 2013~2014시즌 유럽챔피언스리그 예선 플레이오프 1차전에 열린 네덜란드 에인트호벤 필립스 스타디움의 모습. 에인트호벤(네덜란드)=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

네덜란드 에인트호벤은 사실 볼거리가 거의 없다.

옛스럽지도, 현대적이지도 않다. 한 세계적 전자기업의 로고와 수없이 거리를 오가는 자전거 행렬 정도가 그나마 눈에 들어온다. 에인트호벤역 앞의 몇몇 빌딩들이 그나마 이곳이 도시라는 점을 깨닫게 해준다. 그러나 땅거미가 채 지기도 전부터 거리가 한산해지고 쥐죽은 듯 조용해지면 인구 21만명의 도시가 맞는 지 의문이 들 법 하다.

이런 에인트호벤이 딱 하루 '마법'에 걸리는 날이 있다. 연고팀 PSV에인트호벤이 홈 경기를 펼치는 날이다. 21일(한국시각) 열린 AC밀란과의 2013~2014시즌 유럽챔피언스리그 예선 플레이오프 1차전을 앞두고 마법을 체험했다. 경기 시작 반나절 전부터 에인트호벤역 앞 광장에는 붉은색 유니폼을 입고 활보하는 이들로 넘쳐났다. 일부 과격한 팬들은 필립스 스타디움 옆 광장에서 크게 응원가를 부르면서 분위기를 달궜다. 맞은편에선 이동식 매점이 늘어섰다. 무질서보다는 평소보다 더 많은 자유를 누리는 것처럼 보였다. 경기장 내 구단 용품점은 문전성시였다. 유니폼 뿐만 아니라 경기별 한정 상품을 사기 위해 지갑을 여는 팬들의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선수들이 경기장으로 입장하는 중앙통로는 원정 팀에겐 지옥으로 들어가는 입구와 다를 바 없었다. 온갖 야유와 욕설이 난무하는 가운데 서둘러 자리를 뜨기에 바빴다. 반면 에인트호벤 구단 버스가 도착하자 선수가 내릴 때마다 큰 환호로 힘을 북돋우면서 '우리 편'임을 인증했다. 필립스 스타디움은 에인트호벤 인구 6명 중 1명이 참가하는 거대한 파티장이 됐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경기장을 찾은 팬들의 함성이 90분 내내 메아리 쳤다. 경기 전만 해도 호기좋게 에인트호벤 거리에서 응원가를 외쳤던 AC밀란 원정 팬들은 사방이 투명벽으로 막힌 2층 스탠드 꼭짓점에서 숨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

주심의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자 마법도 풀렸다. 경기장을 꽉 채웠던 팬들은 언제 어디로 갔는지도 모를 정도로 빠르게 사라졌다. 홈, 원정 가릴 것 없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 에인트호벤은 빠르게 일상으로 돌아갔다. 거리에는 다시 적막이 감돌았다. 경기장 앞에 어지럽게 쌓인 맥주컵이 방금 전까지의 축제를 엿볼 수 있는 증거다.

네덜란드 에레디비지에의 규모는 유럽 빅리그로 불리는 잉글랜드, 스페인, 이탈리아, 독일과 비교하면 작은 수준이다. 그러나 이들의 열정 만큼은 빅리그에 뒤쳐지지 않는다. K-리그가 열리는 도시에서도 언젠가는 한 번쯤 보고 싶은 장면이었다.
에인트호벤(네덜란드)=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

Copyright (c) 스포츠조선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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