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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 K-리그를 품은 최용수 FC서울 감독(42)이 아시아도 품었다.
선전했다. 패전도 없었다. 안방에서 열린 1차전에서 2대2로 비긴 후 2차전 원정에서 1대1 무승부를 기록했다. 2무였지만 한 골이 부족했다. 원정 다득점에서 희비가 엇갈렸다. 정상 등극에 실패했다. "후유증이 있더라. 며칠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내 모습을 보고 '멘붕(멘탈 붕괴)'이 왔다. '멘붕' 상태였다." 그러나 되돌릴 수 없었다.
"코치로 있으면서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을 보냈다. 하지만 눈은 감고 있지 않았다." 이장수→귀네슈→빙가다→황보관 감독을 보좌하면서 그는 철저하게 자신을 감췄다. 배우고 또 배웠다. 2011년 4월 26일 드디어 감독 최용수 시대가 열렸다. 황보관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물러나자 그 자리를 채웠다. 감독대행으로 지휘봉을 잡았다. 연착륙에 성공했다.
이듬해에는 환희의 마침표를 찍었다. K-리그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올해 우승 후유증이 있었다. ACL에선 순항했지만 K-리그에선 8경기 만에 첫 승을 신고했다. 그리고 7연승으로 팀을 정상궤도에 올려놓았다. 서울은 ACL과 병행하면서 K-리그 2연패에는 실패했지만 내년 시즌 ACL 출전 티켓을 거머쥐었다. 최 감독은 2014년 아시아 정상에 재도전한다.
그는 수가 만수다. '형님 리더십'과는 차원이 다르다. 홈경기 합숙 폐지 등 최대한 자율을 보장하지만 엄격하게 관리한다. 시즌내내 팽팽한 긴장의 끈이 이어진다. 천하의 데얀도 그의 말 한마디에는 꼬리를 내린다. 긴장과 이완을 반복하며 쥐락펴락한다. 선수들과의 두뇌싸움에서 밀리지 않는다. 승부욕은 타의추종을 불허한다. 싸우면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최 감독은 최초의 길을 걷고 있다. 현역 시절 신인상(1994년), 최우수선수상(MVP·2000년)을 수상했다. 지도자의 길로 들어선 후에는 지난해 K-리그에 이어 올해 AFC 감독상까지 수상하는 '그랜드슬램'을 이룩했다.
아직 젊고, 지나온 길보다 앞으로 갈 길이 더 많이 남았다. 최 감독은 수상의 영광은 하루로 족하다고 했다. 또 다른 미래를 향한 진검승부는 지금부터라며 입술을 깨물었다.
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