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곤 감독의 아름다운 '용퇴'

기사입력 2013-12-05 08:01



K-리그는 환한 웃음으로 마무리됐다. 그러나 웃지 못한 1인이 있었다. 김호곤 울산 감독(62)이었다. 3일 시상식이 끝난 뒤 김 감독은 권오갑 현대오일뱅크 사장을 만나 거취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이 자리에서 김 감독은 스스로 물러나겠다는 뜻을 전했다.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모든 것을 내려 놓으려니 아쉬움이 밀려왔다. 5년 간 선수들과 쌓은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김 감독은 4일 비밀을 털어놓았다. 구단 관계자들과 언론에 자진사퇴 의사를 밝혔다. 김 감독은 "우승을 못한 책임을 통감하고 물러난다. 고민하다 어제(3일) 사퇴를 결심했다"고 전했다. 눈앞에서 놓친 우승 후유증이 컸다. 울산은 1일 포항과의 K-리그 최종전에서 비기기만 해도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지만, 종료 직전 결승골을 내주면서 0대1로 패했다. 포항에 역전 우승을 내줬다. 결국 김 감독이 책임을 졌다.

2009년 울산 지휘봉을 잡은 김 감독은 '현장 지도자'가 천직이었다. 환갑이 넘은 나이지만, 푸른 그라운드에 서면 아직도 어린 아이처럼 마음이 설렌다. 가르침에 대한 열정은 30여년간 일관됐다. 이런 베테랑도 배움에는 끝이 없었다. 현대축구의 흐름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톡톡 튀는 지략과 철저한 계획, 날카로운 분석, 연구의 대가다. 젊은 K-리그 감독들의 본보기가 됐다.

지난 3년, 참 행복한 시간이었다. 2011년 리그 컵, 2012년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 우승컵에 입맞췄다. ACL 우승은 김 감독의 가장 소중한 추억이다. 사실 김 감독은 울산 사령탑 초반 '수비축구', '뻥 축구'라는 비난에 휩싸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만의 전술을 소화할 선수들이 모이고, 전술 완성도가 물이 오르면서 어느 팀도 무시할 수 없는 팀으로 변모시켰다. 일단 발톱을 감춘다. 수비수와 미드필더가 공간을 좁혀 상대 공격수가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한 뒤 공을 빼앗는다. 1차 목표를 달성한 뒤에는 번개같은 역습을 펼친다. 공격수들은 묵직한 한 방으로 높은 골결정력을 보여준다. 그 속에 녹아있는 정확하고 빠른 패스와 강한 압박은 김 감독이 추구하는 축구의 뼈대다.

'카리스마'와 '부드러움'이 공존했던 감독이었다. 김 감독은 관리형 지도자의 대표주자였다. 선수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꼼꼼하게 챙겼다. 무엇보다 '밀당의 귀재'이기도 했다. 선수단과 끊임없이 밀고당겼다. 쥐락펴락하며 분위기를 장악했다. 안일한 생활과 훈련 태도를 보이면 불같이 화를 냈다. 그러나 평소에는 푸근함으로 다가갔다. 선수들의 '제2의 인생'까지 상담해주고 챙겨주는 축구 선배이자, 아버지의 부드러움을 보여줬다.

아름다운 퇴장이다. 김 감독은 "조금 쉬면서 훗날을 생각해보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가 가진 지식은 여전히 한국축구에 활용가치가 높다. 대한축구협회 전무이사로 활동하며 행정에서도 두각을 나타낸 바 있는 김 감독이다. 행정 요직에서도 힘을 보탤 수 있다.

울산은 김 감독이 떠난 자리를 발빠르게 메운다는 입장이다. 김 감독의 후임 감독으로는 허정무 대한축구협회 부회장, 박성화 미얀마대표팀 감독, 유상철 전 대전 감독이 물망에 오르고 있다.

김진회기자 manu35@sportschosun.com

Copyright (c) 스포츠조선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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