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뉴 감독의 경계 발언이 성지(聖地)가 됐다. "기성용에게 윌리안을 붙여 창의성을 빼앗겠다."던 다짐은 연장 후반 13분에 터진 기성용의 결승골로 무너지고 말았다. 18일 새벽 4시 45분(한국시각) 영국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에서 열린 캐피탈원컵 8강전에서는 보리니, 기성용의 연속골에 힘 입은 홈팀 선덜랜드가 첼시를 2-1로 꺾고 4강에 합류했다.
선덜랜드엔 너무나도 어려운 경기였다. 중앙 수비 브라운과 오셔가 옆줄에 근접한 지점까지 넓게 서고, 수비형 미드필더 캐터몰이 내려오면서 형성한 패스 축은 시작부터 심한 견제를 받았다. 첼시는 2선의 램파드까지 가세해 5~6명 이상이 중앙선 윗 진영으로 넘어왔고, 선덜랜드 공격의 시발점에 끊임없이 훼방을 놓았다. 이를 잘 피해 중앙선을 넘는다고 해도 다비드루이즈-케이힐이 시간을 지연했고, 이어 가담한 공격진은 공간을 죽이며 패스를 끊는 장면을 연출했다. 볼을 탈취한 첼시는 역습을 통해 재차 선덜랜드 골문을 조준했다.
다만 다행이었던 건 첼시의 공격 날이 상당히 무뎠다는 점. 개개인의 능력이 뒷받침돼 탈압박에서 순조로웠던 첼시지만, 상대 골문을 약 30m 앞둔 지점에서부터는 파괴력이 급감했다. 패스를 선택할 타이밍에서 번번이 실수를 범했고, 이를 도울 동료의 움직임도 부족했다. 길목에서 공격이 지체된 탓에 페널티박스 언저리에서는 빽빽이 포진된 상대 수비 7~8명을 상대해야 했다. 정적인 상황에서 볼을 잡은 첼시 공격진이 슈팅 거리와 각도를 확보하지 못한 건 당연지사. 게다가 1~2m 앞에 상대가 버티고 있어 치고 뛸 공간이 없다 보니 제대로 된 슈팅 자세도 나오지 않았고, 대안으로 삼은 중거리 슈팅은 하늘로 솟구쳤다.
'시도 대비 저효율, 아니 무(無)효율'의 공격은 로테이션을 감행한 무리뉴에게 최악이었다. 뾰족한 수를 제시하지 못했던 에투, 쉬얼레-윌리안-데 브라이네 대신 나선 건 램파드. 후반 시작과 함께 데 브라이네가 터닝 패스로 길을 텄고, 아스필리쿠에타가 골키퍼와 수비 사이로 낮고 빠른 크로스를 뿌린 것이 주효했다. 상대 진영 깊은 곳에서 뒤로 내준 크로스를 백어택(back-attack) 형식으로 처리해 재미를 봐왔던 램파드가 이번엔 더 깊숙이 전진해 상대 자책골을 이끌어냈다. 이후 앞으로 밀고 나오는 선덜랜드 진영에 공간이 생기며 첼시는 더 쉽게 볼을 잡아둘 수 있었고, 여기에 길게 때려 넣을 뒷공간까지 보너스로 받았다.
램파드는 조급하지 않게 제 플레이를 하며, 다음 주 아스널전을 준비할 수 있다는 점에서 팀에 축복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상대를 잘 압박해 볼을 빼앗아낸 에투가 일대일 상황에서 시도한 슈팅이 오른쪽 골포스트 밖으로 유유히 흘러갔고, 넣어야 할 것을 넣지 못한 최후는 끔찍했다. 긴장의 고삐가 슬쩍 풀리는 듯했던 후반 42분, 선덜랜드의 종패스가 오늘 경기 통틀어 가장 날카롭게 들어갔다. 램파드-미켈 라인과 다비드루이즈-케이힐 라인 사이로 정확히 투입된 볼은 알티도어를 거쳐 보리니의 동점골로 이어졌다. 이는 첼시뿐 아니라 이제 막 중계를 끄려던 팬들에게도 일침을 가한 골이었다.
이윽고 돌입한 연장전에서는 첼시의 측면 옵션이 살아난다. 중앙 의존증을 확연히 줄인 새로운 공격 루트는 선덜랜드 박스 내로 날카로운 크로스까지 제공했다. 하지만 브라운이 미친 수비력으로 선방하며 뎀바 바와의 경합에서 앞섰다. 대신 후반 종료 직전 터진 선덜랜드의 휴화산이 활동을 재개했고, 여기에서는 측면 공격수와 위치를 바꿔 심심찮게 전진하던 기성용의 움직임이 적중했다. 중원에서의 볼 배급에 창조성을 불어넣는다는 무리뉴의 발언보다는 측면의 빈공간으로 뛰어들며 패스 루트를 늘렸고, 에시엔을 완벽히 벗겨 낸 뒤 쏜 오른발 슈팅은 팀에 캐피탈원컵 4강행 티켓을 안겼다. <홍의택 객원기자, 제대로 축구(http://blog.naver.com/russ1010)>
※객원기자는 이슈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위해 스포츠조선닷컴이 섭외한 파워블로거입니다. 객원기자의 기사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