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사부일체]⑨스승 기억 속 홍정호의 '한번의 변화와 두번의 시련'

기사입력 2014-05-22 07:34


인생을 살다보면 변화와 시련의 순간이 있다.

'최초의 빅리그 센터백' 홍정호(25·아우크스부르크)에게는 고등학교 시절이 그랬다. '한번의 변화와 두번의 시련'. 어린 홍정호가 변화와 시련에서 쓰러지지 않도록 지켜준 것은 김준오 제주중앙고 총감독(55)이었다.


중학교 시절의 홍정호(왼쪽에서 다섯번째). 사진제공=홍정호 가족

어린시절의 홍정호. 사진제공=홍정호 가족
한번의 변화=공격수에서 수비수로 변신하다

홍정호는 1999년 창단한 외도초등학교에서 축구를 시작했다. 포지션은 스트라이커였다. 제주중앙중학교를 거쳐 제주중앙고등학교 때까지 공격수였다. 좋은 공격수였지만, 2%로 부족했다. 1학년 때는 빈혈로 운동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운동장 다섯바퀴도 못 뛰었다. 김 감독은 "몸이 부드럽고 탄력도 있어서 뛰면 잘했는데 오래 하면 힘들어하더라. 그래서 병원에 갔더니 위에 출혈이 있다고 했다. 완쾌가 되니까 빈혈도 없어지고 좋아지기 시작했다"고 했다.

아무래도 공격수로는 대성하기 쉽지 않아 보였다. 김 감독은 2학년이 된 홍정호에게 수비수 전향을 권유했다. "내가 볼때 수비수로 장래성이 더 커보였다. 워낙 몸이 부드러운데다 탄력이 있었고, 무엇보다 헤딩력이 뛰어났다. 공격수로는 약간 부족한 스피드지만, 수비수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특급 수비수가 될 가능성이 있었다." 처음에는 꺼려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수비수는 공격수를 하다 밀려서 하는 포지션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하물며 공격수만 봤던 홍정호 입장에서는 자존심이 상할만 했다. 김 감독은 '한번만 해보자'고 홍정호를 설득했다. 홍정호는 실망 속에 경기에 나섰다. 막상 수비를 해보니 재밌었다. 김 감독은 "뒤에서 상황을 보다가 상대가 갖고 있는 볼을 인터셉트할 때 쾌감이 있다며 좋아하더라. 키가 커지면서 킥력도 좋아지고, 제공권도 더 좋아졌다. '조금만 더 하면 대성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호한테 얘기했더니 '설마요'하면서 웃었던게 기억난다"고 했다.

수비수가 된 후 본격적으로 성장한 계기가 있다. 전국체전 제주도 대표팀에 선발된 것이다. 전력이 떨어지는 제주도는 고등학교 혼합팀이 전국체전에 나섰다. 당시 이사였던 김 감독이 홍정호를 적극 추천했다. 그런데 대표팀이 3학년 위주라 주변의 반대가 심했다. 홍정호의 가능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김 감독은 예비명단에라도 올리자고 했다. 행운이 찾아왔다. 당시 주전 중앙수비수가 팔이 부러져 경기에 나설 수 없게 됐다. 홍정호가 제주도 대표팀에 선발됐다. 훈련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주전자리까지 따냈다. 입상은 못했지만 홍정호 입장에서는 한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됐다. 김 감독은 "정호가 나중에 전국체전이 한단계 성장한 계기가 됐다고 털어놓더라. 수비수로 경험이 부족했는데 실력있는 3학년 형들과 함께 하며 많이 늘었다. 육지에 있는 팀들과 경기를 하면서 배운 것도 많았다고 하더라"고 했다.


홍정호(왼쪽)와 김준오 총감독. 사진제공=김준오 제주중앙고 총감독

11번을 단 선수가 홍정호. 사진제공=홍정호 가족
두번의 시련=두려웠던 첫 대표팀, 부상의 악몽

수비수로 변신에 성공한 홍정호는 조금씩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청소년대표 얘기도 나왔다. 김 감독은 "정호를 적극 추천했다. 분명 청소년대표팀에서도 제 몫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고 했다. 홍정호는 꿈에 그리던 19세 이하 대표팀에 선발됐다. 하지만 곧 악몽으로 변했다. 철저한 무명이 걸림돌이 된 것이다. 홍정호는 19세 이하 대표팀에 뽑히기 전까지 단 한번도 각급 대표팀에 선발된 적이 없었다. 김 감독은 "주변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 '정호가 잘하는 선수라면 왜 13세, 15세, 17세 이하 대표팀 때 선발되지 않았냐'는 얘기까지 나왔다. 정호가 아주 힘들어했다. 나도 정호의 능력에 대해 설명하느라 힘들었다"고 했다. 김 감독이 꼽는 가장 힘든 순간이었다. 다행히 홍정호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우려를 실력으로 잠재웠다. 이후는 탄탄대로였다. 김 감독은 "정호가 청소년대표팀에서 자리잡을 때까지 옆에 있었다. 어느 정도 청소년대표팀에서 입지를 굳힌 후에 이렇게 얘기했다. '이제 내가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은 없다. 네가 실력으로 이겨내야 한다.' 실제로 정호가 각급 대표팀에서 빠르게 자리잡더라. 국가대표까지 탄탄대로였다. 너무 고마웠다"며 웃었다.


거침없는 질주를 하던 홍정호를 가로막은 것은 부상이었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 모든 포커스를 맞췄던 홍정호는 불의의 부상으로 출전이 좌절됐다. 동료들이 동메달 신화를 쓰는 모습을 텔레비전으로 지켜봐야 했다. 실의에 빠진 홍정호를 보듬은 것도 스승 김 감독이었다. 김 감독은 "원채 밝은 녀석이었는데 좀처럼 웃지를 않더라. 목표를 잃은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정호야, 월드컵에 가야하지 않겠니. 이제부터 네 목표는 월드컵이다. 치료 제대로 받고 더 큰 무대에 나서자'고 해줬다"고 했다. 홍정호는 스승의 충고를 멋지게 받아들였다. 재활에 성공한 홍정호는 한국인 최초로 빅리그에 진출한 중앙수비수가 됐다. 그리고 꿈에 그리던 브라질월드컵 출전이 눈 앞에 다가왔다.

스승의 기억 속 홍정호는 여전히 순수한 고등학생이다. 김 감독은 2학년 때 남해 연습경기서 너무 열심히 뛴 나머지 운동장 밖으로 나올 힘도 없는 홍정호를 업고 나왔던 에피소드를 생생히 들려줬다. 홍정호가 한국 축구 수비의 대들보로 성장했지만 김 감독은 여전히 걱정이다. "너무 착해서 상대를 더 거칠게 밀어붙이지 못한다"고 아쉬워했다. 김 감독에게 홍정호는 가장 큰 자랑이자, 30년 지도자 생활 중 가장 큰 선물이다. "정호야, 꿈에 그리던 월드컵이니까 후회없이 네가 원하는 플레이했으면 좋겠다. 항상 나한테 '은혜 갚겠다'고 했잖아. 이번 월드컵 출전으로 은혜 갚은 셈이다. 너같은 선수를 키울 수 있어서 내 지도자 생활이 헛되지 않았으니까."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Copyright (c) 스포츠조선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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