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와 황새의 기막힌 반전, 표정은 '극과 극'

기사입력 2014-11-30 17:33


◇최용수 서울 감독(왼쪽)과 황선홍 포항 감독이 지난 8월 20일 포항 스틸야드에서 열린 2014년 아시아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을 마친 뒤 악수를 나누고 있다. 포항=최문영 기자 deer@sportschosun.com

불과 4일 전이었다.

지난 26일 상암벌에서 서울과 포항은 대혈투를 펼쳤다. 0대0, 승리의 여신은 침묵했다. 그러나 서울에 승점 3을 앞서 있던 원정팀 포항에겐 승리와 다름없는 결과였다. 마지막 남은 1장의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 출전권의 주인은 30일 오후 2시 서귀포(제주-서울전)와 포항(포항-수원전)에서 동시에 펼쳐지는 승부에 따라 가려지게 됐다. 모두가 포항을 바라봤다.

추격자였던 '독수리' 최용수 서울 감독은 벼랑 끝에서 기적을 노래할 수밖에 없었다. 최대 고비를 넘은 '황새' 황선홍 포항 감독은 냉정함을 유지하려 애썼다. "시간대별 시나리오를 그려놓고 경기를 해야 할 것 같다. 균형이 깨지지 않는 한 (ACL 출전권은) 우리가 가져갈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로 엇갈렸다. 기적을 부르짖던 최 감독은 기쁨의 눈물을, 수성을 다짐했던 황 감독은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

올 시즌 최고의 '서울극장'을 연출한 최 감독은 감격에 젖었다. "뼛속 깊이 다가온 승부다운 승부였다. 운명의 장난이라고나 할까. 모든 공을 선수들에게 돌리고 싶다." 최 감독은 이날 후반 44분 오스마르의 역전골이 터지기 전까지 88분 간 가슴을 졸여야 했다. 그는 "포항-수원전 내용을 자세히는 듣지 못했다. 장내 아나운서가 포항이 앞서고 있다고 말해 '올 시즌 운은 여기까지'라고 체념했다. 수원이 역전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정신을 차렸다"고 털어놓았다. '최대 라이벌' 수원은 서울에게 이날 만큼은 '은인'이었다. 최 감독은 "수원은 얻을 것을 다 얻었다. (포항전은) 뚜렷한 목적의식이 없는 승부이기 때문에 젊은 선수들로 선발 라인업을 짤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면서 "수원은 끝까지 스포츠정신을 지켜줬다. 라이벌이지만 이런 계기를 통해 화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미소를 지었다. 실낱같은 희망을 안고 서귀포까지 날아온 서울 서포터스 '수호신' 사이에선 눈물범벅의 수원 응원가가 울려 퍼졌다.

같은 시각, 포항 스틸야드에는 굵은 빗줄기가 뿌려졌다. '영일만 친구'들의 눈물이었다. 꼬박 1년전 울산을 '버저비터골'로 꺾으며 기적을 일궜지만, 이날은 비운의 주인공이었다.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린 뒤 황 감독은 벤치에서 일어나지 못한 채 한동안 멍하니 그라운드를 바라봤다.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고, 눈에는 초점이 없었다. "할 말이 마땅히 생각나지 않는다. 아직도 결과를 받아들이기 어렵다." 황 감독은 "경기는 예상대로 흘러갔지만, 실점 장면에서 실수가 패인이 됐다"며 "여러모로 믿기지 않는 결과다.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도 많이 당황스럽다"며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는 "오늘만 버티면 된다고 봤다. 결과만 취하고자 했지만, 그러질 못했다. 책임은 감독의 몫"이라고 침통해 했다.

최용수와 황선홍, 한국 축구가 낳은 세기의 라이벌이다. 최 감독은 "황 감독님과는 특별한 라이벌 의식이 있다. (서울이) 결과는 조금 좋았지만,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다"며 "경쟁구도를 통해 동반성장하지 않는가. 내년에도 (승부가) 더 기대된다"고 말했다. 황 감독 역시 "오늘 아쉬운 결과에 그쳤지만, 축구는 계속된다"고 입술을 깨물었다. 2014년 끝자락에 쓰인 반전 드라마는 새로운 명승부를 알리는 서막이었다.


서귀포, 포항=김성원, 박상경 기자

Copyright (c) 스포츠조선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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