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리 슈틸리케 감독은 15일 제주도 전지훈련에서 이례적으로 네 명의 골키퍼를 데려왔다. 슈틸리케호에서 뜨겁게 달아오른 김진현(27·세레소 오사카)을 비롯해 김승규(24·울산) 정성룡(29·수원) 이범영(25·부산)이다. 섬을 밟지 않은 골키퍼 중에서도 기회를 부여받은 이가 있다. 전북의 K-리그 클래식 우승을 이끈 권순태(30)다. 슈틸리케 감독은 10일 "4명의 골키퍼 외에 권순태도 함께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5명 중 최종명단에 3명의 골키퍼가 발탁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슈틸리케 감독이 권순태를 '뭍'에 두고 온 이유는 무엇일까. 이미 클래식 경기를 통해 충분한 기량 검증이 이뤄졌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권순태는 올시즌 클래식 18경기 무실점, 경기당 평균 0.56실점으로 '제2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또 다른 이유는 매끄러운 훈련 진행 때문이다. 슈틸리케 감독은 "4명을 소집하면 골키퍼 코치가 짝을 이뤄 훈련을 진행할 수 있다. 홀수가 되면 어렵다"며 "5명이 되면 대표팀 내 골키퍼 비중이 커져 부담도 된다"고 설명했다.
'섬'에선 치열한 경쟁이 펼쳐졌다. 김승규-정성룡이 짝을 이뤘고, 김진현-이범영이 훈련 파트너가 됐다. 특훈 첫 날임에도 훈련 강도는 상상을 초월했다. '생존 경쟁'의 효과가 그대로 나타나는 듯했다. 2시간여의 훈련을 마친 정성룡은 "열심히 해야 한다. 훈련 기간이 짧기 때문에 더 집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성룡을 포함한 골키퍼 사총사의 얼굴에는 비장함이 가득했다. 안일함을 보이면, '히든 카드' 권순태에게 자리를 빼앗기게 된다.
10월 슈틸리케 감독 부임 이후 치른 네 차례 A매치에서 김진현이 근소하게 앞서있다. 정성룡과 김승규는 나란히 한 경기에서 골문을 지켰다. 김진현은 두 경기에 출전했다. 슈틸리케 감독의 A대표팀 데뷔전이었던 파라과이전과 중동 원정 2연전 중에서도 비중이 컸던 이란전에서 선발로 골키퍼 장갑을 꼈다.
토너먼트 대회에 골키퍼를 세 명이나 포함시키는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1, 2번 골키퍼는 끝까지 주전 경쟁을 해야 한다. 3번 골키퍼는 역할이 제한적이다. 주로 승부차기를 대비한다. 1, 2번 골키퍼들도 출중한 승부차기 방어 능력을 갖췄지만, 상대의 심리적인 면을 이용하기 위해 감독들은 골키퍼 교체 카드를 꺼낸다. 3번 골키퍼는 이범영이 적합하다. 2012년 런던올림픽 8강전에선 영국단일팀의 스트라이커 다니엘 스터리지의 승부차기를 막아낸 경험이 있다. 이범영은 승부차기 선방 비결을 '비밀'에 부치고 있을 정도로 '11m 룰렛 게임'에선 자신감이 넘친다.
그렇다면 호주아시안컵 최종명단의 남은 자리는 두 자리다. 김진현 정성룡 김승규 권순태, 25%의 확률이다. 슈틸리케 감독에게 어필하기 위해선 골키퍼도 '멀티 능력'이 필요해졌다. 이날 훈련에서 슈틸리케 감독은 골키퍼들의 발기술을 강조했다. 8대8 미니게임에서 손을 쓸 수 있는 영역을 최대한 줄이고, 발을 사용해 패스를 연결하는 것을 주문했다. 수비수들이 적극적으로 공격에 가담했을 때 골키퍼가 센터백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암시했다. 골문 방어는 기본이고, 활동폭을 넓혀 수비수를 돕는 역할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