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펩or인자기' 레전드 감독 지단, 기로에 서다

기사입력 2016-01-05 09:30


지네딘 지단 신임 감독과 페레스 회장. ⓒAFPBBNews = News1

[스포츠조선닷컴 김영록 기자] 또 한 명의 레전드가 위기에 빠진 팀의 구원투수로 나선다. 레알 마드리드가 지네딘 지단(44)의 시즌 도중 감독 선임이라는 초강수를 꺼냈다.

레알 마드리드는 5일(한국 시각) 플로렌티노 페레스 회장의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라파엘 베니테스 전 감독을 경질하고, 2군 감독인 지단의 1군 부임을 발표했다.

레전드이자 '초보' 감독을 보는 눈에는 기대감과 불안감이 공존한다. 바르셀로나는 2008-09시즌 펩 과르디올라 감독 선임 첫해 트레블을 달성했다. 과르디올라 감독은 2006-07시즌 현역 은퇴 직후 2군 감독을 거쳐 1년만에 1군 사령탑으로 부임했다.

과르디올라는 호나우지뉴, 데쿠, 사무엘 에투 등 베테랑들을 과감히 방출하고 리오넬 메시를 중심으로 한 티키타카를 완성, 우려를 불식시켰다. 그는 리그 우승 3회-챔스 우승 2회의 업적을 남기며 위대한 감독으로 발돋움했다. 바이에른 뮌헨 이적 후에도 유럽을 대표하는 명감독으로 손꼽히고 있다.

하지만 과르디올라는 보기드문 성공사례일뿐, 반례는 얼마든지 존재한다. 최근 AC밀란은 클라렌스 세도르프, 필리포 인자기 등 밀란 황금기의 레전드들을 잇따라 감독으로 선임했지만, 코칭능력이 갖추지 못했던 그들은 선수 시절의 명성마저 흔들릴 만큼 비참한 실패를 겪었다. 밀란 팬들은 그들이 사랑했던 레전드들에게 욕설을 퍼붓는 안타까운 신세가 됐다.

리버풀 역사상 최고의 미드필더로 불리는 그레이엄 수네스는 잉글랜드 1부리그 최다 우승팀이었던 리버풀 몰락의 단초를 제공한 감독으로 평가된다. 1991년 리버풀 감독으로 부임한 수네스의 리그 첫 10경기 승점은 고작 9점이었다. 이후에도 리빌딩에 실패한 수네스는 부진을 거듭한 끝에 3년만에 경질됐고, EPL 출범 이래 리버풀 최악의 감독으로 꼽힌다.

베니테스 전 감독은 시즌 전부터 선수단과 충돌했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하메스 로드리게스, 토니 크로스 등 주력 선수들의 활용 능력도 낙제점이었다. 바르셀로나와의 엘 클라시코에서 0-4로 대패할 때는 중원이 없는 '5-0-5' 축구라는 조롱마저 받았다. 국왕컵에서는 어이없는 부정선수 출전 실수로 탈락하는 망신까지 당했다. 카를로 안첼로티 전 감독 경질의 대가를 비싸게 치른 셈이다.

베니테스 전 감독은 올시즌의 절반에 가까운 18경기를 소화한 뒤 팀을 떠났다. 현재 레알 마드리드의 승점은 37점에 불과, 리그 선두 아틀레티코 마드리드(41점)에 4점 뒤져있다. 4위 비야레알(36점)에게도 턱밑까지 추격당했다.


지단은 레알 마드리드가 오랜 기간 애지중지하며 키워낸 감독 후보다. 그가 언젠가 1군 사령탑을 맡을 것임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44세의 나이도 어리진 않다. 로랑 블랑(PSG)-디디에 데샹(프랑스 대표팀) 등 가까운 선배들은 물론 클로드 마켈렐레(전 바스티아), 윌리 사뇰(지롱댕 드 보르도) 등 자신보다 늦게 은퇴한 후배들도 감독 커리어를 쌓고 있다.

문제는 지단의 코칭 경험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그는 2013-14시즌 안첼로티 전 감독의 수석 코치로 첫 발을 딛었고, 2014-15시즌부터 1년반 가량 카스티야(2군)를 이끌던 도중 갑작스럽게 1군 감독으로 부임하게 됐다. 행보만 보면 과르디올라와 흡사하지만, 과르디올라에겐 자신의 팀을 꾸릴 시간이 주어졌다. 반면 지단은 첫 걸음부터 진흙탕을 마주하고 있다.

지단은 과르디올라의 반전을 재현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면 세도르프나 인자기처럼 레전드의 잘못된 활용 예로 남게 될지도 모른다.

lunarfly@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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