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전] 슈틸리케호, '심리적 싸움'에 집중해야 할 때다

기사입력 2016-06-02 11:47


ⓒAFPBBNews = News1

장판교에 장비가 떡하니 버티고 있다. '드루와 드루와' 상황이다. 매복이 두렵다지만 상대는 단 하나 뿐인데 쉽사리 못들어온다.

관우가 적진 최고 장수 안량 문추의 목을 게눈 감추듯 따고 들어온다. 아직도 술은 식지 않았다.

삼국지연의는 9할이 뻥이라지만 이거 좀 심한거 아닌가. 스포츠를 룰에 의한 싸움 혹은 전쟁이라고 본다면 자신감의 차이만큼은 주목해 볼만하다.

쫓겨다니던 시절 유비 군사는 약해 빠졌지만 훗날 오호 장수로 불렸던 1대1 싸움꾼들 만큼은 아주 셌다. 아니 적어도 '쎄다'는 명성을 가지고 있었다. 관우 장비 조자룡 등은 그 판에서 유명인사였다. 상대가 있는 싸움이나 전쟁이나 스포츠에는 기싸움이란게 있다. 밀리면 십중팔구 진다. 제 기량 발휘가 안된다. 심리가 신경을 타고 흘러 근육을 과도하게 긴장시키기 때문이다.

강적을 만나면 두가지 다른 싸움을 해야 한다. 나보다 나은 실력을 가진 상대와의 물리적 싸움, 또 하나는 나보다 세다는 생각이 드는 상대와의 심리적 싸움이다. 하나도 힘든데 둘이라니, 그래서 설상가상이다. 이변이 힘든 이유다. 물리적 싸움이 안되는 약자는 심리적 싸움에 집중해야 한다. '해볼만 하다. 별 것 아니다'라는 최면이 필요하다. 이마저 안되면 백전백패다.

2일 새벽. 대한민국 축구팬들은 낯 선 광경을 목격해야 했다. 1일이 지나가기 전까지는 괜찮았다. 11시반에 시작한 스페인과의 A매치 경기는 자정이 넘어 날짜가 바뀌고 난 뒤 급속도로 엉망이 됐다. 실바에게 프리킥 첫골을 내준 직후 8분만에 소나기 3연속 골을 허용했다. 실바의 절묘한 첫골은 카운터펀치였을게다. 불안한 마음으로 정신없이 체력전을 펼치다 장시간 비행 여파로 몸이 살짝 힘들 무렵 날라온 놀라운 강펀치. 잠시 잊을 뻔 했던 '상대=강적' 의식이 스멀스멀 피어올라왔을게다. 첫골 이후 한국 선수들의 플레이는 달라졌다. '주춤주춤, 쭈뼛쭈뼛' 뭐 이런 부사들이 어울릴만한…. 골키퍼도 수비수도 그러다가 마크해야 할 상대를 놓쳤다. 본격적인 심리적 싸움이 시작된 시점이기도 하다. 애당초 물리적 싸움이 안되는 강한 상대였으니 심리적 싸움에서 밀리는 순간 대패는 불가항력이었다. 0-5로 뒤진 후반 종료 10분 전. 승부는 이미 기울었다. 포기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이판 사판 공사판(?)' 이런 마음을 품은 상대가 제일 무섭다. 한국이 그랬다. 적진에서 패스 연결이 살아났고 공간이 생기면서 주세종의 슈팅으로 이어졌다. 거침 없이 쏘아올린 대포알 같은 슈팅이었다. 그 슈팅 하나로 대한민국 축구팬들은 그나마 작은 위안을 얻었다.

20년만의 대패에 전문가들의 각종 분석이 쏟아진다. 섣불리 올린 라인의 실패라고도 하고, 압박 실패라고도 한다. 모두 맞는 말이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자신감이다. 5일 또 다른 유럽의 강자 체코전을 앞둔 슈틸리케호. 지금은 심리적 싸움에 집중할 때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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