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원의 센터서클]9년 전 쫓겨난 곽태휘의 '인생역전' 그리고 FC서울 운명

기사입력 2016-07-10 18:00



눈물없는 성공, 땀이 없는 성공은 없다.

'곱상한 외모'만 보면 산전수전과는 거리가 먼 것 같지만 곽태휘(35·서울)라는 이름 석자에는 '한'이 서려 있다. 멀리뛰기 선수였던 그는 고교 1학년 때 축구를 시작했다. 잘 나가는 선수라면 청소년대표팀에서 태극마크를 달 시기다.

전직이 멀리뛰기 선수라 점프력이 탁월했던 그는 1학년 동계훈련을 거쳐 비로소 축구 선수로 명함을 내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를 기다린 것은 시련이었다. 고교 2학년 때 경기 도중 상대 선수가 찬 볼이 왼쪽 눈을 강타했다. 사물이 흐릿하게 보일 정도의 실명 상태가 됐다. 눈을 치료하기 위해 1년간 휴학한 그는 고등학교를 4년이나 다녔다. 주위에선 다른 길을 모색하라고 했다. 하지만 한 쪽 눈만으로 축구를 하기 위해 땀을 흘리고 또 흘린 끝에 재기에 성공했다.

중앙대를 거친 그는 2005년 프로 진출의 꿈을 이뤘다. FC서울에 입단했다. 2005년 19경기, 2006년 23경기, 2007년 12경기에 출전하며 서서히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미완의 대기'일 뿐이었다.

9년 전인 2007년 7월. 그는 전남 드래곤즈에서 뛰던 후배인 김진규(31)와 트레이드 됐다. 당시 김진규는 국가대표 수비수였다. 서울은 김진규를 영입하는 조건으로 '곽태휘+현금(3억원)'을 지불했다. 남자는 '첫 사랑'이라고 했다. 곽태휘는 누구보다 서울에 대한 애정이 컸다. 그러나 트레이드는 프로 선수의 숙명이다. 원망하진 않았지만 자존심에는 분명 실금이 갔다.

이를 더 악물었다. 전남 이적은 전화위복이었다. 당시 전남을 이끌던 허정무 감독에 눈에 들며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그해 전남의 FA컵 우승을 이끈 그는 허 감독이 7년 만에 대표팀 지휘봉을 잡으면서 태극마크를 달았다. 곽태휘란 이름 석자도 드디에 세상에 나왔다. 2008년 2월 6일이었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예선 1차전 투르크메니스탄전(4대0 승)에서 전반 44분 A대표팀의 577분(인저리타임 포함) 침묵을 깨며 결승골을 터트렸다. 2월 17일 동아시안컵 한-중전(3대2 승)에서도 다시 한번 경기 종료 직전 결승골을 작렬시켰다. '골 넣는 수비수'라는 별명이 붙었다.

하지만 부상 악령은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왼발목에 이어 오른무릎 전방십자인대 수술을 받으며 한동안 그라운드에서 사라졌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을 앞두고 부활했지만 최종엔트리 발표 직전 치른 벨라루스와의 마지막 평가전(0대1 패)에서 왼무릎 내측인대가 파열됐다.

좌절하지 않고 다시 일어섰지만 '비운의 드라마'는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2014년 브라질월드컵에선 마침내 최종엔트리에 승선했다. 그러나 단 1분도 출전하지 못했다. 그렇게 시간이 또 흘렀고, 그의 가슴에는 여전히 태극마크가 달려있다. 현재는 울리 슈틸리케 A대표팀 감독이 가장 신뢰하는 수비수로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곽태휘는 그 사이 J리그 교토상가, K리그 울산, 사우디아라바이 알 샤밥과 알 힐랄을 거쳤다. 울산에서는 2012년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에서 팀을 정상으로 이끌었고, 알힐랄에서도 여러차례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2016년 7월 8일, 자신의 35번째 생일이었다. 하루 전날인 7일 그는 새로운 도전을 선택했다. 9년 전 트레이를 당한 서울로 다시 돌아왔다. 금의환향, 인생역전이었다.

곽태휘는 묘한 향기를 발산하는 선수다. 몸담았던 팀들 모두 그를 그리워한다. 헌신, 희생, 투철한 책임감과 리더십에 믿고 쓴다. 알 힐랄이 강력하게 재계약을 요청했다. 울산, 전남도 그의 복귀를 원했다. 뿐만 아니라 전북과 유럽팀들도 러브콜을 보냈다. 수많은 선택지 앞에서 그는 프로 생활을 시작한 '첫사랑' 팀과 다시 동행하기로 결정했다. 돈 보다는 명예였다. 알 힐랄 연봉과 비교해 몸값을 4분의 1로 낮췄다.

35세, 적지 않은 나이다. 하지만 그는 나이로 평가받기를 거부한다. 은퇴도 스스로 느낌이 올 때 그라운드를 떠날 계획이라고 한다. 늦게 선수 생활을 시작한 만큼 그는 여전히 전성기라고 믿고 있다. K리그 팬들에게도 전성기 때의 활약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컸단다.

황선홍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서울은 과도기다. 서울은 9일 울산과 득점없이 비겼다. 황 감독 부임 이후 1무2패다. 그는 "축구가 참 어렵다"며 허탈하게 웃었다. 교체 카드에 다소 물음표가 있었지만 그래도 희망을 이야기한다. 반등을 위한 몸부림이 그라운드로부터 느껴졌다. 고요한과 김동우 등이 다리 경련을 일으킬 정도로 투혼을 불살랐다. 아드리아노의 징계, 주세종의 부상 등 악재 속에서도 길을 찾아가고 있다.

또 하나 곽태휘의 합류는 천군만마, 신의 한수다. 6월 A매치 후 그는 한 달간에 공백이 있다. 황 감독은 컨디션을 체크한 후 투입 시기를 결정할 계획이지만 곽태휘는 워낙 성실함이 몸에 배어있다. 후배들의 신망도 두터워 주장 오스마르와 함께 팀의 구심점으로서의 활약이 기대된다. 그는 2주 전 이미 개인훈련을 시작해 출전 시기는 더 빨라질 수 있다.

곽태휘는 쓰러질 때마다 늘 오뚝이처럼 일어섰다. 지금 이 순간 축구가 힘든 선수가 있다면 곽태휘를 거울 삼기 바란다. 그는 앞으로도 눈물이 있다면 이겨낼 것이다. '맏형' 곽태휘의 인생역전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스포츠 2팀 기자 newsm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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