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K리그 클래식에 보기 드문 '물건'이 튀어나왔다.
강렬한 '자기소개'를 했다. 녹색 그라운드를 자유롭게 휘저었다. 프로 첫 선발 경기를 치르는 선수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긴장한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부담을 즐기는 듯했다. '대박'의 기운이 느껴졌다.
정승원은 탁월한 드리블러다. 마음만 먹으면 수비수 1~2명은 제친다. 골 감각도 좋다. 그는 지난해 R리그 득점 2위에 올랐다. 15경기에서 7골-3도움을 기록했다.
'유망주 발굴의 장인'조광래 사장이 일찌감치 정승원의 잠재력을 봤다. 2015년 대구 입단 테스트 때다. 당시 안동고 3학년이던 정승원은 자신에게 온 공의 밑부분을 찍어 수비수 키를 넘기는 개인기를 펼쳤다. 한국 축구판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당돌함과 기술. 조 사장은 정승원을 점찍었다.
|
|
이렇게 보면 무탈히 커온 선수 같다. 하지만 티 없이 맑은 '꽃미남' 외모 뒤엔 숱한 고비가 있었다. 축구를 그만 둘 뻔했다. 고2 때다. 여름 전국대회를 앞둔 시점. 오른무릎 4분의 1가량이 무혈성 괴사(혈액이 통하지 않아 세포·조직이 죽는 상태) 진행중이었다. 의사의 말은 충격이었다. "더 늦으면 축구를 할 수 없다". 정승원은 "정말 많이 울었다. 두렵고 겁이 났다. 축구만 알고 살았고 앞으로도 더 해서 부모님 호강시켜드리고 싶었는데 못 하게 될 수도 있다고 하니 정말 하늘이 원망스러웠다"고 회상했다.
이 악 물고 수술대에 올랐다. 정승원은 "최건욱 안동고 감독님이 아니었으면 축구를 접었을 수도 있다"며 "대회, 경기 이런 거 신경쓰지 말고 수술, 회복에만 집중해서 오래오래 공 찰 생각만 하라고 말씀해주셨다"고 했다.
무릎을 들어내고 15개의 구멍을 뚫는 대수술, 정승원은 1년 유급했다. 한데 "더 열심히 해서 1년 공백 채우자"는 다짐은 이내 공허한 메아리가 됐다. 또 부상. 조 사장의 눈을 사로잡아 대구 입단이 확정됐던 2015년 여름. 이번엔 오른무릎 십자인대가 파열됐다. 다시 수술대에 올랐다. 그러나 이번엔 울지 않았다. 입술을 꽉 깨물었다.
회복 후 정승원은 2016년 대구의 중국 전지훈련에 합류했다. 연습 경기에도 나섰다. 정승원은 "조광래 사장님께서 한 번 해보겠냐고 물으셔서 뛰고 싶다고 했다. 기회를 주셨기에 최선을 다했고 비록 연습경기지만 골도 넣어서 정말 뿌듯했다"며 웃었다.
그는 비록 2016년 대구 1군 경기에 단 한 번도 나서지 못했지만 씩씩하게 털어냈다. "R리그에서 열심히 했다. 그리고 형들은 승격을 일구셨다. 그것을 지켜본 것 또한 배움이라고 생각한다."
묵묵히 버틴 정승원은 한 뼘 더 성장했다. 2017년 들어 두 차례 교체 투입 후 서울전을 통해 선발 기회를 잡았다. 자신만의 색깔도 유감없이 보여줬다. 그 동안 K리그에서 보기 힘들었던 '꽃미남 드리블러.' 정승원은 오늘보다 내일이 더 기대되는 선수다. 그의 발끝에 대구의 '내일'이 달려있다.
임정택 기자 lim1st@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