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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인터뷰]'유리몸 트라우마'날린 이승기 해트트릭 뒷얘기

전영지 기자

기사입력 2017-09-11 18:14



"다시 전성기를 만들어야죠."

10일 K리그 클래식 28라운드 전북-강원전(4대3승)에서 '7분 해트트릭'을 기록한 이승기(29·전북)의 목소리는 나직하지만 또렷했다. 전반 56초, 강원 김경중에게 선제골을 허용하고 0-1로 밀리던 상황에서 이승기의 쇼타임이 시작됐다. 전반 14분, 19분, 21분 연거푸 연속골을 쏘아올리며 K리그 역대 최단소요시간 '7분' 해트트릭 기록을 세웠다. 올시즌 22경기에서 3골을 기록한 이승기가 7분만에 시즌 4-5-6호골을 한꺼번에 쏘아올렸다. '2011년 K리그 신인왕' 출신 공격수 이승기가 서른 즈음에 '다시 전성기'를 노래했다.


▶에이스 발목 잡은 부상 악령

이승기는 자타공인 에이스다. 상복도 넘쳤다. 광주 금호고 시절인 2006년 한국축구대상 고등부 최우수선수, 울산대 시절인 2010년 전국대학축구대회 득점왕에 올랐다. 광주 유니폼을 입고 K리그에 첫발을 내디딘 2011년, 8골 2도움을 기록하며 신인왕을 거머쥐었다. 2013년 '1강' 전북 유니폼을 입은 첫해 5골 3도움을 기록하더니, 2014시즌 5골10도움으로 K리그 도움왕에 올랐다. 베스트 미드필더로도 선정됐다.

끝없이 날아오를 것만 같았던 축구 청춘의 발목을 번번이 잡은 것은 '부상 악령'이었다. 전북에서의 첫 두 시즌, 크고 작은 부상이 잇달았다. 2013년 3월 개막전부터 햄스트링을 다쳤다. 그해 9월 홍명보 감독이 이끌던 A대표팀에 허벅지 근육 파열로 낙마했다. 10월에는 왼쪽 무릎 내측인대를 다치며 시즌을 마감했다. 2014년 3월 아시아챔피언스리그 광저우 헝다전에서 허벅지를 다쳤고, 6월 브라질월드컵 휴식기 중 전지훈련에서 발목을 접질렸다. '유리몸'이라는 달갑지 않은 수식어까지 생겼다. 지난해 9월 상주 상무에서 제대한 이승기는 전북에서 야심찬 새시즌을 다짐했다. 동계훈련 내내 몸만들기에 몰두했다.

지난 3월 수원전, 2라운드만에 서정진과 충돌하며 또다시 쓰러졌다. "자주 다쳐서 마음고생이 심했는데 시즌 시작하고 적응할 만한데 또 다쳤다"고 아찔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오른 무릎인대 부분파열이었다. 속상했지만 축구에 지장이 갈 정도의 부상은 아니라서 그걸로 위안 삼았다"며 웃었다. "우리팀에 좋은 선수들이 많으니까, 복귀해서 뛸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했던 시기"라고 털어놨다.

7월 8일 울산전(4대0승)에서 시즌 첫골이 터질 때까지 최강희 전북 감독은 이승기를 믿고 썼다. "감독님이 기회를 주시고 챙겨주셨다. 우리 팀은 선발이 정해져 있지 않으니, 늘 열심히 해서 경기에 나가야지 하는 생각하나 뿐이었다"고 했다.



▶'유리몸' 트라우마 날린 해트트릭


팬들에게 '기적'이었던 이날 해트트릭은 이승기에게 '선물'이다. 최 감독은 "이승기는 양쪽 발목이 다 안좋다. 드리블과 턴 동작이 많아 고질적 부상이 있다. 부상 트라우마를 훌훌 털어버리면 좋겠다"고 했다.

선수들에게 부상보다 더한 것이 '부상 트라우마'다. 이승기 역시 "또 다칠까봐 두려웠다"고 했다. 거침없이 치고 달리며 수비라인을 뚫어내던 드리블이 자신도 모르게 위축됐다.

팬들은 6년 전 광주에서 펄펄 날던 '신인왕' 이승기를 똑똑히 기억한다. 이승기는 "저도 그때 제 모습을 기억한다"며 웃었다. "부상 때문에 힘들었다. 신인 때의 과감성, 저돌적인 모습이 부상이 닥치면서 위축된 면이 있었다. 잘했던 동작이 안되기도 했고, 부상을 안당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다보니 안정적이면서 팀에 도움이 되는 플레이를 많이 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강원전 해트트릭의 시발점이 된 전반 14분 동점골은 '왜 이승기인가'를 보여주는 순도 높은 골이었다. 드리블로 치고 달려나갈 때의 저돌적인 움직임, 수비 2명 틈새를 빠져나가는 유연한 몸놀림에 이은 논스톱 감아차기 슈팅은 짜릿했다. 첫골은 오른발, 두번째골은 왼발, 세번째골은 오른발로 완성했다. 양발을 자유자재로 쓰는 에이스의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냈다.

이승기는 "부상 트라우마를 털어낸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 다음 경기 때도 자신감을 갖고 해보겠다"고 약속했다. 1988년생 이승기는 한국나이로 서른이다. "전북에서 30세 공격수는 나이 많은 축에도 안든다"며 웃었다. "(이)동국이형이 좋은 경기력으로 매경기 뛰고 있기 때문에, 공격수들 모두 나이가 좀더 들어도 잘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동국이형에게 감사한다"며 웃었다.

최강희 감독이 측면 공격수들에게 주문했다는 '7골' 미션에 단 1골이 남았다. 이승기는 눈빛을 빛냈다. "남은 경기에서 1골만 넣는 게 아니라 그보다 더 넣어야죠."


이승기 어머니 노경민씨가 이승기의 조카를 안은 채 전북-강원전을 직관했다 아들의 프로 첫 해트트릭을 현장에서 목도하고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그간 마음고생도 있었는데, 오늘 세골 넣고 해트트릭해서 기쁘다. 앞으로도 승승장구 하길 바란다"며 애틋한 모정을 전했다.

▶가족의 힘으로 축구하는 선수

이승기는 '가족의 힘'으로 축구하는 선수다. 그의 경기가 있는 날이면 할아버지, 부모님, 형수, 조카 등 온가족이 총출동한다. 이승기는 "가족이 광주에 산다. 제 경기를 보는 걸 좋아하신다. 축구선수 출신 형은 올시즌 처음 왔는데 마침 해트트릭을 했다. 형이 지적을 많이 했었는데…"라며 웃었다. "부상 당할 때마다 어머니가 저보다 더 마음 아파하셨다"고 했다. 이날 이승기의 해트트릭 세리머니는 가족을 향했다. 경기장에서 아들의 쾌거를 지켜본 어머니 노경민씨는 "그간 마음고생이 컸는데 오늘 3골을 넣어서 너무 기쁘다. 앞으로도 승승장구하길 바란다"며 애틋한 모정을 전했다.

이승기는 스물세살이던 2011년 11월 브라질월드컵 3차예선 아랍에미레이트전에서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 2014년 2월 미국전, 12번째 A매치는 마지막 태극마크가 됐다. 6명의 동료들이 신태용호에 차출된 A매치 휴식기, '전직 국가대표' 이승기는 목포에서 3주간 뜨거운 땀방울을 흘렸다. 해트트릭은 치열한 노력의 보상이다. 이승기는 "그동안 대표팀에 들어갈 정도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쉬는 기간 훈련을 잘해서 좋은 모습을 보여야지 생각했는데, 다행히 강원전에서 잘됐다"고 했다. "축구선수라면 당연히 국가대표, 월드컵을 목표로 한다. 하지만 욕심으로 되는 게 아니다. 잘해야 한다. 가고 싶다고 되는 게 아니다. 잘해야 나라를 대표해 뛸 수 있다. 잘 준비하고, 잘하는 선수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서른살의 공격수는 '기적'같은 해트트릭에 '일희일비'하지 않았다. "한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시즌 마지막까지 계속 좋은 모습을 보여드려야죠."

최강희 감독은 "이승기가 요즘 철이 들었다"고 했다. 서른 즈음에, 이승기의 축구는 '다시 전성기'를 준비하고 있다.
전주=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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