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히딩크 광풍]④축구판 강타한 댓글 민심, 히딩크의 실수는 용납할 수 있을까

전영지 기자

기사입력 2017-09-17 17:35



지난 3월, 울리 슈틸리케 전 A대표팀 감독은 '공공의 적'이었다. 슈틸리케만 사라지면 한국축구는 벌떡 일어설 것만 같았다. 그가 떠난 자리에 신태용 감독이 부임했다. 어렵사리 9회 연속 월드컵에 진출했지만 단 2경기, 경기력을 놓고 신 감독을 향한 비난이 쏟아졌다. 설령 월드컵에 못가더라도 신 감독 욕은 하지 말자던 여론은 돌변했다. 때아닌 '히딩크 광풍'은 그 틈새를 파고 들었다.

급기야 히딩크 감독은 한국축구의 '만능열쇠'가 됐다. 히딩크 감독만 오면 세상 모든 시름이 잊힐 것같은 분위기다. 히딩크 부임에 찬성하는 이는 절대 옳고, 반대하는 이는 대한축구협회를 편드는 적폐세력이다. '흑백논리'가 판을 친다. 기존 감독에 대한 존중은 안중에 없다. '히 감독' 아래 수석코치를 하면 되겠다고 포지션도 정해준다. 청와대 청원에 이어 촛불시위를 부추기는 선동 댓글이 줄을 잇는다.

댓글 여론에 힘입어, 히딩크가 대한민국 새 사령탑으로 부임하면 모든 논란이 사라질까.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지금은 감읍하겠지만, 만에 하나 러시아에서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천하의 히딩크' 역시 댓글 지옥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2002년의 추억을 아끼는 지인들이 때아닌 히딩크 논란을 반기지 않는 이유다.

대한민국 축구판을 뒤흔드는 댓글 민심은 무시무시하다. 돌이켜보면, 슈틸리케 감독 경질 직후 최종예선 2경기를 이끌 소방수를 하겠다고 선뜻 나서는 이는 많지 않았다. "감독 자원이 그렇게 없느냐"는 말에 한 축구인은 "젊은 감독들은 아무도 총대를 매려 하지 않는다"고 했다. 잘하면 당연하고, 못하면 역적이 된다. 같은 이유에서 신 감독을 말리는 이도 많았다. 온라인 여론은 오프라인 그라운드를 잠식한다. 문제는 이 익명의 온라인 여론이 대단히 잔혹하고, 맹목적이라는 점에 있다. 최근 어느 시내버스 기사의 사건도 그랬다. 버스기사를 죽일 듯 몰아세우던 여론의 십자포화가 순식간에 글을 올린 이에게로 옮아갔다. 이미 누군가는 회복불능의 상처를 입었지만, 책임지는 이는 아무도 없다. '아님 말고' 여론은 다음 먹잇감을 향해 유유히 옮겨간다.

대한민국 축구계는 월드컵을 치를 때마다 '너덜너덜' 상처투성이가 된다. 그렇지 않아도 소중한 자원을 여럿 잃었다. 그라운드 안팎에서 실수 한번에 가차없이 실시간 댓글의 먹잇감이 된다. 도 넘은 인신공격성 비난이 쏟아진다. SNS로 몰려들어 가족들까지 공격하는 현실 속에 어느 선수가 목숨 걸고 도전적, 창의적 플레이를 할까. 한번의 실수가 두고두고 회자되고, 재탕삼탕 희화화되며, 패자부활의 기회마저 앗아간다. 대표팀은 오프라인 그라운드에서는 상대팀과 죽어라 싸우고, 온라인에서는 자국의 여론과 싸워야 한다. 축구는 실수의 스포츠이고, 세상에 잘하고 싶지 않은 선수는 없다.

요즘 온라인 세상은 새털처럼 가볍다. 협회에 '~ㅎ'를 섞어 보낸 '카톡' 메시지가 사실은 감독직 제안이었다는 사실도 '웃프다'. 모든 의사결정에는 정당한 절차와 공식 라인이 있다. 공식라인이 작동하지 않을 경우 '비선 실세'가 막후에서 암약하고, 호가호위하는 극단적 폐해를 우리는 지난해 똑똑히 목도했다. 대한민국 최초의 월드컵 4강을 이끈 히딩크 감독의 능력과 업적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연봉 200억원을 호가하는, 월드클래스 감독이다. 한국축구에 대한 이해와 애정도 각별하다. 한국 팬들은 히딩크를 사랑한다. 그러나 세상 어느 나라 축구협회가 메신저로 '국대 감독' 추천을 받는가. 대한민국 대표팀 감독이란 자리는 '세계적 명장'이 원한다면 언제 어느 때건 기존 감독을 밀어내고, 할 수 있는 자리인가.

무엇보다 지금의 '히딩크 댓글 논란'이 한국 축구의 현재, 미래에 어떤 도움이 되는가. 내년 러시아월드컵에서 한국대표팀의 목표와 로드맵, 이를 위한 진지한 방법론을 고민하고 앞으로 나아가야할 시점에 소모적 논란과 무책임한 논쟁만이 떠다닌다. 자극적이고 지엽적인 온라인 논란에 매몰돼 버린 작금의 상황은 안타깝다. '온라인'의 애정이 '오프라인' 경기장을 향하면 좋겠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현장의 땀방울이다.

히딩크 감독은 지난 14일 네덜란드 현지 인터뷰를 통해 "나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했다. "지면 어떡하냐고? 나는 축구를 사랑한다. 위험이 아주 큰데, 실패하면 어쩌지 그런 생각은 한번도 안해봤다. 물론 내 프로경력에서 늘 성공만 해온 것은 아니다. 언제나 정상에 있었던 것도 아니다. 정상에 서기 위해 때론 넘어지기도 했다. 넘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다시 일어나지 못하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우리다. 고작 2경기를 치른 신태용 감독도 기다려주지 못하는 우리가 히딩크의 실수는 용인할 수 있을까. 한국축구의 조언자를 자청한 히딩크 감독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축구의 스탠다드를 높이는 일(What can I do is to improve the standard of football)"이라고 했다. 우리의 축구 수준(standard of football)은 지금 어디쯤 와 있을까.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 당신이 좋아할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