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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최만식 기자] "대기업이 골목상권까지 흔드는 걸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K리그에서 잔뼈가 굵은 한 관계자는 "광주 구단과는 별 상관없는 입장이지만 옆에서 보니 광주 선수들이 안됐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팀을 정말 잘 이끌어왔던 좋은 감독을 서울에서 빼가는 바람에 광주 구단은 성공적인 시민구단에서 '종이호랑이'로 추락할 우려가 커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시민구단의 생존법이라는 게 좋은 선수, 지도자를 키워 1부리그에 생존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시·도민 세금이 아깝지 않다는 인상을 심어주는 것인데 상대적으로 풍족한 대기업 구단이 그 흐름에 찬물을 끼얹은 격이 됐다"고도 했다.
자본과 경쟁논리가 지배하는 프로의 세계에서 좋은 자리를 찾아 떠나고, 좋은 인재를 영입하는 행위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이런 순리는 페어플레이 정신에 입각한 신의·상도의가 지켜졌을 때 존중받는다.
2020시즌이 종료되기 전에 박 감독에게 러브콜을 보내는 바람에 박 감독과 구단은 계약해지를 두고 진통을 겪기도 했다. "계약이 남은 인물을 영입할 때는 시즌을 다 끝낸 뒤 구단 측에 먼저 양해를 구하고 작업에 들어가는 게 상도의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여기에 계약서의 기본 원칙인 '신의·성실'이 무너진 결과를 초래했다는 점에서 임기 도중에 떠난 박 감독에 대해서도 곱지 않은 시각이 존재한다.
더 큰 문제는 박 감독이 좋은 곳을 찾아 떠난 것만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남은 자들의 고충이다. 공교롭게도 광주 구단 대표이사가 FC서울이 박 감독 선임을 발표한 그날(8일) 사의를 표명했다.
당장 내년 시즌 준비에 들어가야 할 시점에 사무국과 필드가 한꺼번에 지휘 공백 상황을 맞았다. 광주는 기영옥 전 단장이 사임한 이후 광주시 문화관광체육 실장이 겸직 단장대행으로 일을 대신해 왔다.
여기에 박 감독의 애제자들이 박 감독을 따라 서울행을 택하거나 타 팀으로의 이적러시가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게 나오는 등 팀 분위기는 뒤숭숭하다.
박 감독의 광주에서 뛴 적이 있는 A선수는 "나도 그랬듯이 선수 친화적인 지도력에 반해 박 감독을 좋아하는 선수들이 많았다. 특히 올 시즌 감독님과 함께 일군 성적도 좋았는데…"라며 "그런 감독을 잃은 선수들은 크게 동요할 것"이라고 걱정했다. 이처럼 후유증이 길어지면 광주가 앞으로 시민구단의 최대 염원인 1부리그를 수성하기도 힘들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그런가 하면 올해 초 K리그를 뜨겁게 달궜던 '기성용의 1차 국내 복귀 무산 사태'와 비교하며 '역지사지'를 제기하는 말도 나왔다. 당시 기성용의 전북 입단 타진설이 나오자 서울이 취했던 행동을 생각하면 박 감독 이탈 과정에서 광주 구단이 어떤 심정이었을지는 서울 구단이 더 잘 알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나마 위안거리는 있다. 광주 팬들이 구단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린 박 감독 이적 관련 의견을 보면 '광주를 끌어올려줘서 감사하다. 아쉽지만 큰 팀에서 성공하길 바란다'가 대세였다. 반면 서울 구단의 박 감독 선임 발표 보도자료에는 '소통하는 적임자' 박진섭에 대한 호평 외에 광주 측을 향한 '유감 표명'은 없었다.
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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