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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마크와 선수보호 사이' 홍철 부활에 공들인 홍명보 울산 감독의 진심

전영지 기자

기사입력 2021-03-17 12:46


사진제공=KFA, 프로축구연맹

출처=울산 현대 구단

홍명보 감독은 지난 1월 초 울산 현대 지휘봉을 잡은 직후 2월 아시아 챔피언 자격으로 국제축구연맹(FIFA) 클럽월드컵에 나섰다.

멕시코 강호 티그레스 등 세계 톱클럽들과의 일전을 앞두고 홍 감독은 어려운 결단을 내렸다. 이청용, 홍 철, 이동경, 고명진 등 핵심 선수들을 명단에서 과감히 제외했다. "시즌을 대비해야 하는데 선수들의 상태가 좋지 않다. 이청용, 홍 철, 고명진은 최소 한달 이상 재활이 필요한 선수들이다. 클럽월드컵은 시즌 첫 경기이고 감독 데뷔전이고 아시아 대표로 나가는 중요한 경기지만 내겐 선수 보호가 우선"이라고 말했다.

아픈 선수를 무리하게 뛰게 하지 않겠다고 했다. 당장 눈앞의 클럽월드컵보다 다가올 긴 시즌에 집중하겠다는 뜻을 표했다.



새 시즌, 공격수 이청용, 이동경은 일찌감치 그라운드에 복귀했지만 풀백 홍 철의 재활기간은 좀더 길어졌다. 개막전, 2라운드 왼쪽 풀백 자리는 '영건' 설영우가 맡았다. 홍 철은 9일, 3라운드 인천전에 처음 그라운드에 나섰고, 84분을 뛰었다. 13일 4라운드 포항과의 동해안더비에 82분을 소화했다. 오랜만의 출전이었던 만큼, 최고의 몸놀림을 보여주진 못했다. 번뜩이는 움직임은 여전했지만, 강력한 피지컬로 밀어붙이는 팔라시오스에 고전했다. 호쾌한 스피드로 측면에 시원하게 '고속도로'를 낸 후 파이널서드에서 정확하게 올려붙이는 전매특허 왼발 크로스도 아직은 예열중이다. 울산의 중요한 공격루트인 대한민국 국가대표 풀백 홍 철의 부활을 위해 홍 감독은 각별히 공을 들여왔다. 당장 최고의 컨디션이 아니라 하더라도 '에이스' 홍 철의 출전시간을 단계적으로 늘려가며 경기를 통해 몸을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이 있었다.

15일 파울루 벤투 감독이 발표한 한일전 소집명단에 울산 선수 6명(이동준, 윤빛가람, 원두재, 홍 철, 김태환, 조현우)이 발탁됐고, 이중 홍 철이 포함됐다. 홍 감독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클럽월드컵도 내려놓고 준비한 홍 감독의 '홍 철 플랜'이 틀어졌다. 16일 제주와의 홈경기를 앞두고 홍 감독은 홍 철을 선발에서 제외했다. 사전 기자회견에서 홍 철의 컨디션을 묻는 질문은 당연했다. 홍 감독의 대답은 이랬다.

"홍 철은 몸이 좋지 않다. 2경기에 나섰지만, 정상이 아니다. 합류한 지 얼마되지 않았지만, 위험을 감수하고 경기에 내보냈다. 첫 경기에서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뛰었지만, 두 번째 경기에서는 내용이나 퍼포먼스에서 좋지 않았다. 경기 후 이번 경기에 휴식을 취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더라. 본인도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던 중 홍 철이 대표팀에 뽑혔다. 경기 출전 여부는 모르겠지만, 선발 과정에서 홍 철의 몸상태에 대해 우리와 전혀 조율되지 않았다는 점은 아쉽다. 물론 대표팀에선 홍 철이 경기에 나섰기 때문에 괜찮다는 판단을 했겠지만, 홍 철의 몸상태는 우리가 가장 잘 안다. 협의가 됐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아쉬움이 있다."

이례적으로 상세한 설명이었다. 어찌 보면 벤투 감독에게 직접 전하고 싶었지만, 전하지 못했던 말들이다. 취재 결과, 구단이나 감독이 아닌 선수와는 소통이 있었다. 그러나 그 선수의 몸 상태나 데이터에 대해 객관적으로 조언할 의무팀이나 감독과의 소통은 원활하지 않았다.


'이겨야 사는' 대표팀을 이끄는 벤투 감독의 소신은 분명하다. 지난해 9월 K리그1 우승 향방을 결정할 파이널라운드 직전 울산 선수 9명을 대거 차출했을 때도 그의 원칙은 확고했다. "K리그 일정을 떠나 대표팀 선수는 대표팀에서 100% 하고 소속팀에 가서 100%를 하면 된다. 소속팀에 가 있는 선수들에게 대표팀 일정 이야기를 할 수 없듯이 선수들도 이곳 에 있을 땐 여기에만 집중해야 한다." 소속팀이 어디든 대표팀에 승리를 가져올 최고의 멤버를 뽑겠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리그 우승에 도전하는 소속팀 감독의 입장도 확고하다. 홍 감독은 "월드컵 예선도 시작하지만, 리그도 이어진다. 정상적인 선수들은 괜찮지만, 부상에서 돌아온 선수들은 다르다. 선수도 보호해야 한다. 대표팀 감독과 K리그 감독들도 대화를 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이 열렸으면 좋겠다"고 했다.


벤투 감독과 홍 감독의 발언은 각자의 위치에서 충분히 할 수 있는 말들이다. 조제 무리뉴 감독은 2017년 맨유 사령탑 시절 필 존스가 허벅지 부상을 안은 채 잉글랜드대표팀에 소집돼 독일과의 평가전 전반 25분만에 주저앉은 후 가레스 사우스게이트 대표팀 감독을 맹비난했었다. 무리뉴 감독은 "필 존스는 3주간 부상을 갖고 있었고 재활에 전념했다. 구단이 열심히 노력해 빅매치인 첼시전에서 최고의 컨디션을 만들어 출전했고, 바로 잉글랜드대표팀에 발탁됐다. 모두가 알다시피 부상이 있는 선수였다"고 말했다. "선수들은 누구나 손톱이 빠진다든지 발가락이 아프다든지 감기가 걸렸다든지 이런저런 문제를 갖고 있다. 그런 문제로 A매치 휴식기간에 충분히 쉬면서 휴가를 즐기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순진하고 순수한 감독들은 당연히 소집에 가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가끔은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고 불편한 심기를 여과없이 드러낸 바 있다.

이처럼 어느 나라나 대표팀과 클럽팀의 이해는 엇갈릴 수 있다. 하지만 '선수보호'라는 명제는 대표팀과 클럽팀, 축구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대원칙이다. 주요 선수의 컨디션과 정보를 대표팀과 클럽팀이 수시로 충분히 소통할 필요가 있다. 벤투 감독의 소신, 외국인 감독의 한계도 분명 있다. 코칭스태프들이 대표 선수들과는 수시로 소통하지만 K리그 감독, 구단과의 소통은 원활하지 않은 모양새다. 대표팀 사령탑, 협회 전무를 역임한 '한국 축구 레전드' 홍 감독이 이 부분에 대해 할 말을 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향후 리그와 대표팀의 상생을 위한, 건설적인 논의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

이날 제주전 현장에서 울산 서포터들은 '리그의 발전 없이 국대도 발전 없다'는 플래카드를 들어올렸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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