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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윤진만 기자]"꼭 돌아오겠다"는 마지막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하늘로 떠난 유상철 전 감독. 그는 가히 한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멀티 플레이어란 호칭이 아깝지 않은 전설이다.
건국대 1학년때까지만 하더라도 공격수로 활약한 유 전 감독은 1993년 버펄로유니버시아드대회에서 수비수로 자리를 옮겼고, 이듬해 프로구단 현대(현 울산)에 입단해선 측면 공격수로 뛰었다.
대표팀과 소속팀 감독들의 입맛에 맞게 수비형 미드필더, 공격형 미드필더(플레이메이커), 전방 공격수, 센터백을 오갔다.
당당한 체구와 축구 지능, 투쟁심을 두루 갖춘 유 전 감독의 존재 덕에 감독들은 경기 중에도 쉽게 전술을 바꿀 수 있었다.
히딩크 감독은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유 전 감독을 중앙 미드필더로 선발 기용했다 후반엔 수비로 내리는 방식으로 팀에 안정성을 불어넣었다.
히딩크 감독은 월드컵 대회를 앞두고 유 전 감독에 대해 "기량의 우수함은 물론 정신적인 면에서 후배들을 이끌 수 있는 선수"라고 말했다.
유 전 감독은 센터백으로 선발 출전한 경기에서 최후방에만 머무르지 않고 적극적으로 오버래핑하는 플레이를 즐겼다.
공격 상황에선 날카로운 중거리 슛과 헤더로 골도 잘 넣었는데, 특히 큰 대회, 큰 경기에 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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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 부상을 딛고 출전한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조별리그 3차전 벨기에전에선 두고두고 회자되는 슬라이딩 슛을 성공시키며 처참한 성적에 아파하는 팬들의 마음을 달랬다.
유 전 감독이 국가대표로 124경기에 출전해 넣은 18골 중에는 한일전 득점도 있었다. 이제 막 대표팀 주축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던 1994년 10월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8강에서 천금같은 동점골로 한국이 홈팀 일본을 3대2로 격파하는 데 일조했다.
유 전 감독은 2005년 6월3일 우즈베키스탄과의 독일 월드컵 최종예선 경기를 끝으로 화려한 국대 경력을 마무리했다.
K리그에선 울산에서만 활약한 유 전 감독은 2005년 울산의 마지막 리그 우승의 순간을 함께한 뒤 이듬해 은퇴했다.
은퇴 후 지도자의 길로 들어선 유 전 감독은 울산대, 전남 드래곤즈,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을 맡았다.
인천 사령탑을 맡은 2019년 11월, 췌장암 4기 판정을 받은 사실을 공개한 뒤에도 벤치를 지키며 팀의 극적인 잔류를 이끌며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렸다.
그 이후 지휘봉을 내려놓고 본격적으로 병마와의 싸움에 돌입했다. 한때 호전된 시기도 있었지만, 끝내 마지막 싸움에서 승리하지 못한 채 7일 세상을 떠났다.
윤진만 기자 yoonjin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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