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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학생은 '스포츠 소외계층'…축구로 건강한 경쟁 배울 수 있어"
하프라인에서 골라인까지 영역을 점유한 남학생들은 승부차기에 여념이 없었다.
은평고 1학년인 이현준 군의 발을 떠난 공이 골대 하단 구석을 찔렀다. 오전 이른 시간에 열린 자체 경기에서 강슛을 선보였던 이현준 군이 킥을 찰 때마다 경쾌한 뻥뻥 소리가 났다.
골망이 흔들릴 때마다 흥분과 격정이 섞인 그 또래 특유의 왁자지껄한 대화가 잇따랐다.
"참 행복해 보이네요."
불광중 2학년인 강민지 양은 경기를 마친 뒤 따로 승부차기까지 야무지게 즐기는 남학생들을 바라보며 이같이 말했다.
반대편 그라운드는 강민지 양을 포함한 여학생들의 차지였다.
인근의 각 학교에서 구산중을 찾은 여학생 15명이 덕성여고 교사인 전해림 씨의 지도에 따라 트래핑과 패스, 드리블 등 기본기를 연습하려 바쁘게 발을 움직였다.
전해림 씨가 "수비할 때 몰려다니는 동네 축구하면 안 돼. 기본기는 나쁘지 않은데, 축구를 어떻게 하는지 몰라서 그래"라며 다독이자, 용기를 얻은 여학생들은 공을 몰고 그라운드를 폴짝폴짝 뛰어다녔다.
패스가 유독 부정확했던 강민지 양은 전해림 씨에게 따로 지도받았지만 표정은 밝았다.
학교 선생님의 권유를 받고 구산중을 찾았다는 강민지 양은 "다 같이 경기를 이뤄가고, 패스하고, 슛을 차고 그런 연결 과정이 있어서 축구가 좋다"고 말했다.
이어 "선생님께서는 여자아이들이 축구할 기회가 없으니까, 모든 여학생이 할 수 있게끔 만들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같이 여학생들끼리 따로 축구를 배울 수 있게 된 건 지난달 대한축구협회와 나이키가 서울특별시교육청, 인천광역시교육청, 경기도교육청의 협조를 얻어 '킥키타카'(Kicki-taka) 프로그램을 시작한 덕이다.
킥키타카는 축구 용어인 '티키타카'와 '킥'의 합성어로, 축구로 즐겁게 하나 되는 여학생들의 웃음소리에서 따왔다.
서울·경기·인천 지역 거점 훈련 학교 22곳(중등 14개·고등 8개)에서 이뤄진다. 전해림 씨처럼 축구 지도 경력을 쌓은 교사들이 10차례 훈련을 진행한 뒤 챔피언십 예선·본선 순으로 실전 기회도 제공한다.
이날 프로그램에 참여한 여학생들은 '축구의 매력이 뭐냐'는 질문에 마음껏 뛰어노는 즐거움을 준다고 답했다.
서연중 1학년인 최담이, 이상미 양은 "일상에서 다른 사람을 제치고, 몸으로 부딪쳐도 되는 경험이 축구"라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경기를 치를 정도로 축구에 진지한 관심을 보이는 여학생들이 당장은 많지 않다. 학교에서 용기를 내 서넛이 모여도 경기를 진행하기에는 너무 적다.
그렇다고 남자아이들과 경기하려니 실력 차이가 너무 크다. 입문 단계인 여학생들은 서슴없이 어울리지 못하고 주눅 들어 '축구는 나의 것이 아니다'라는 결론에 이른다.
전해림 씨는 "학교별로 두, 세 명이 모여 여기로 오면 두 자릿수 인원이 모여 경기를 할 수 있다"며 "관심을 보이는 학생은 있는데 부담 없이 즐길 기회는 없어 시작된 프로그램"이라고 말했다.
이어 "여학생들은 팀 스포츠를 경험하는 일이 적다"며 "협동심을 기르고, 성취 경험을 조금씩 쌓아야 하는데, 그렇게 하려면 스포츠에 자유롭게 참여할 여건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우리나라 여학생들은 세계적으로 봐도 가장 운동량이 떨어지는 청소년 계층이다.
2019년 세계보건기구(WHO)가 146개국을 대상으로 2016년의 국가 간 청소년 신체활동 부족률을 비교한 결과, 운동 부족으로 분류된 학생 비율이 94.2%로 조사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여학생은 무려 97.2%로, 사실상 전원이 신체·정신건강 유지와 발달에 충분한 신체활동을 하지 않는 걸로 나타났다.
프로그램을 기획한 나이키코리아 SCI팀 유현지 책임도 한국 여학생들을 놓고 '스포츠 소외계층'이라 표현했다.
유 책임은 "우리가 만난 성인 여성분들은 대부분이 어릴 때 긍정적 스포츠 경험이 없었다. 거기서 착안했다"며 "신체활동이 없어 여자아이들이 경쟁을 두려워하는데, 건강한 경쟁을 배울 팀 스포츠 가운데 평생 이어갈 수 있는 게 우리나라에서는 축구"라고 말했다.
킥키타카는 나이키의 전액 펀딩으로 운영된다. 현재로서는 축구협회도 운영 인력은 투입하되, 예산을 따로 배정하지는 않았다.
킥키타카가 수도권을 넘어 전국으로 확산하려면 관계기관들의 지원도 늘어야 한다.
유 책임은 "스포츠 소외계층인 우리 학생 중에서도 소외계층인 여학생들을 보면 학교에서 축구하고 싶어도 따로 스포츠 클럽이 없으면 뛰어놀 곳이 없다고 한다"며 "궁극적으로 남녀 모두가 다 뛰어노는 포용적인 장을 만들고자 한다"고 밝혔다.
신나게 승부차기를 치른 뒤 반대편 그라운드의 킥키타카 현장을 힐끔거리던 남학생들은 여학생들이 축구를 즐기는 모습이 어떻게 보이냐고 묻자 호평이 나왔다.
이현준 군을 비롯한 남학생들은 "다들 잘한다. 확실히 잘하는 아이들이 보인다"며 "기본기를 되게 열심히 한다. 이 정도면 괜찮게 축구하는 것"이라고 웃었다.
pual07@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