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박찬준 기자]아르헨티나에 미묘한 균열이 왔다.
아르헨티나는 20일 오전 4시(이하 한국시각) 미국 뉴저지주의 뉴저지 스타디움에서 스페인과 2026년 북중미월드컵 결승전을 치른다. 2022년 카타르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아르헨티나는 대회 2연패에 도전한다. 아르헨티나가 이날 승리할 경우, 브라질이 1958년과 1962년 대회를 연속 제패한 이후 64년만에 월드컵 2연패를 달성하게 된다.
아르헨티나 국민들에게는 한줄기 희망 같은 소식이다. 아르헨티나는 심각한 경제 위기에 빠져 있다. 초인플레이션으로 국민 경제가 파탄이 났다. 유일하게 웃을 수 있는 것은 축구 뿐이다. 아르헨티나는 위기가 심화된 2021년 코파아메리카 우승 이후 메이저 대회 3연패에 성공했다. 2024년 코파 대회에서도 우승을 차지했다. 이번 역시 우승을 통해 국민들에게 위로하겠다는 각오가 대단하다.
메시는 지난 잉글랜드와의 준결승전 승리 후 믹스트존에서 "상황이 어렵거나 일자리가 없고, 월급으로 월말까지 한 달을 버티기 힘든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며 "비록 잠시 동안일지라도 이러한 기쁨을 국민들께 선물할 수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며 이는 우리 대표단을 매우 행복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아르헨티나는 0-1로 끌려갔지만, 막판 메시의 2도움을 앞세워 극적인 2대1 역전승을 거뒀다. 메시는 "이번 잉글랜드전 승리는 단순한 한 번의 승리가 아니라 아르헨티나 모든 국민이 간절히 원했던 매우 중요한 승리였다"며 "국가가 울려 퍼지는 순간부터 특별한 감정을 느꼈다"고 했다.
이어 "우리는 지난 4년 동안 최고의 모습을 보여왔고, 오늘도 그 누구도 우리에게 아무것도 거저 주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했다"며 "우리가 이뤄낸 모든 것은 경기장에서 스스로 싸워 얻어낸 결과"라고 강조했다. 아르헨티나는 경기 후 과거 잉글랜드와의 포클랜드 전쟁을 거론하며 '말비나스는 아르헨티나 땅"(Las Malvinas son Argentinas)'이라고 적힌 현수막을 드는 등 자국 팬들을 위한 정치적인 움직임을 이어가고 있다.
메시의 이번 발언은 오랜 기간 생활고를 겪는 아르헨티나 국민의 현실을 지적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메시가 언급한 "월말까지 버티지 못한다"(No llega a fin de mes)는 표현 역시 아르헨티나에서 생활고를 상징적으로 나타낼 때 가장 널리 쓰이는 관용구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아르헨티나 대통령실의 반응은 달랐다. 아르헨티나 대통령실 아드리안 라비에르 대변인은 17일 인터뷰에서 "정부는 국민들이 월급으로 한 달을 버티기 힘들다는 진단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공개적으로 반박했다. 이어 밀레이 대통령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메시를 직접 거명하지는 않았지만 "축구 선수들이 경제를 얼마나 아느냐"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밀레이 정부는 2023년 12월 출범 이후 강도 높은 긴축 정책을 추진해 연간 세 자릿수였던 물가상승률을 최근 연간 30% 안팎까지 낮췄고, 지난해 경제성장률 4.4%를 기록하는 등 거시경제 지표에서는 일정한 성과를 거뒀다. 밀레이 정부는 '경제 개혁이 성과를 냈다'며 자평하는 모습이었는데, 이번 메시의 발언으로 자신들의 성과가 폄하될까 걱정하는 모습이다.
밀레이 대통령은 이번 대회 내내 아르헨티나 대표팀에 열성적인 응원을 보냈다. 그는 심지어 스페인과의 결승전을 직관 하는 대신 관저에서 지켜보겠다고 했다. 밀레이 대통령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현지 라디오 방송인 '엘 옵세르바도르'와 인터뷰에서 월드컵 결승전을 위해 미국 뉴저지로 건너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잔니 인판티노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과 함께 관람할 계획이 있냐는 질문에 "절대 안 된다"라고 밝혔다. 그는 "앞으로도 모든 아르헨티나 대표팀의 경기는 대통령 관저에서 계속 TV로 시청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밀레이 대통령이 'TV 시청'을 고수하는 이유는 '카발라스'(Cabalas)라고 불리는 아르헨티나 특유의 미신 때문이다. 자신만의 '카발라스' 의식에 대해 밀레이 대통령은 "날씨가 추운데 난방을 틀지 않았고, 난 정유 회사 브랜드가 박힌 재킷을 입고 있었다"라며 "스위스와 8강전 때 더워서 재킷을 벗었더니 아르헨티나가 실점했다. 그래서 재킷을 다시 입었고, 그 뒤로는 절대 벗지 않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아르헨티나의 월드컵 2연패를 위해 결승전 때도 두꺼운 재킷을 입고 있겠다"라고 덧붙였다.
공교롭게도 밀레이 대통령은 아르헨티나가 이번 월드컵에서 치른 7경기를 모두 관저에서 TV로 봤고, 아르헨티나는 모두 승리를 거두며 결승에 올랐다. 하지만 메시의 발언과 이에 대해 불편해하는 대통령실 반응이 겹치며, 묘한 흐름이 만들어진 분위기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