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신용등급'이란 게 있다. 부채상환 능력, 자본력으로 기업의 신용과 재무 상태를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지표다.
한국기업평가(KR)는 최근 ㈜두산과 두산중공업은 'A'에서 'A-', 두산인프라코어는 'BBB+'에서 'BBB', 두산건설은 'BBB-'에서 'BB+'로 각각 강등시켰다. "주력 계열사들의 대규모 당기순손실로 그룹 전반의 재무안정성이 저하된 가운데 일부 계열사의 수익구조 및 유동성 대응능력 약화의 부담요인이 확대되고 있다"며 "중단기적으로 유의미한 수준의 실적 개선이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는 점을 반영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어두운 전망이 더 걱정스럽다.
여기에 '인정 없는' 명예퇴직, 배당잔치 논란까지 겹쳤다. 안팎이 시끄럽다.
얼만큼 나쁜가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자. 지난해 두산그룹의 영업이익은 2646억원으로 나타났다. 2014년 9979억원에서 크게 줄었다. 당기 순손실은 1조7008억원(2014년 332억원)이다. ㈜두산의 연결재무제표를 기준으로 한 잠정집계다. '어닝 쇼크' 수준이다.
손실의 주요 내용은 이렇다. 인력구조조정 비용 2113억원, 세법개정에 따른 법인세 비용 1673억원, 자산감액 4118억원, 대손상각 2360억원, 개발비자산감액 1856억원, 환율/과징금 1088억원 및 기타영업관련 비용 2249억원 등이다. '문제'의 3개사가 부진의 '주범'이다.
두산인프라코어의 당기순손실은 8595억원이다. 중국과 신흥국에서의 실적부진에 발목이 잡혔다. 여기에 올해 만기가 도래하는 8150억원의 회사채, 2012년 발행한 5억달러 규모의 신종자본증권(영구채)이 큰 악재다. 회사채의 경우 상반기 1650억원, 하반기 6500억원을 막아야 한다. 영구채에 대해서는 180억원을 배당해야 한다.
회사측에서는 "2015년 말 기준 해외자회사를 포함해 현금성자산 1조원을 보유하고 있어 공작기계사업 매각 효과를 제외해도 회사채 만기 대응 여력이 충분하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부정적인 의견도 많다. 해외법인 보유 자산의 국내 유입은 힘들다는 것이다. 운전자금으로 사용중이거나 금융기관과 체결한 배당제한 조건 때문이다.
두산건설은 3년 만에 다시 적자로 돌아섰다. 적자액이 1669억원이다. 당기순손실은 5207억원이다. 전년대비 7배가 늘었다.
두산건설 역시 차입금 문제가 크다. 올해 갚아야 할 돈이 4301억원이다. 그동안은 빚으로 원리금을 갚아왔다. 그룹에서도 많은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신용등급 하락으로 자금 조달이 여의치 않아졌다. 그룹의 지원도 기대하기 힘들다. 자산 매각 등의 유동성 확보책을 세우고는 있다. 그러나 근본적인 수익성 개선이 절실하다.
이밖에 두산중공업은 1조7509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두산은 양호한 실적에도 불구, 핵심계열사 신용도 하락의 영향을 받았다.
이에 대해 두산측은 '장부상의 문제'라고 설명했다. 구조조정, 대손상각 등의 일회용 비용을 빼면 조정영업이익은 8104억원에 이른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실적개선과 자산매각, 비용절감 등으로 올해 1조4663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리겠다는 청사진을 밝혔다.
하지만 글로벌 영업환경의 악화, 자산매각 작업의 불확실성 등으로 힘겨운 한 해가 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 나이스신용평가측은 "인력구조조정 비용, 세법개정에 따른 법인세비용 증가 등 일시적으로 발생하여 손익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 경우도 있으나, 생산시설 폐쇄 등에 따른 비용, 건설부문의 대손상각, 개발사업 매각손실 등 업황 악화 또는 사업성 저하에 따른 부실 자산 처리비용도 발생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어 향후 업황 회복 여부에 따라 추가적인 손실 발생가능성도 상존하는 것으로 판단된다"며 "글로벌 경기 침체와 주요 영위사업의 업황저하 상황을 감안하면, 중단기적인 회복 여부도 불투명한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박용만 체질개선의 위기?
예전의 두산, 소비재 기업이었다. OB맥주, 코카콜라, 네슬레, 코닥 등 소비자에게 익숙한 사업이 주 업종이었다.
잘 나갔다. 그러다 1990년대 중반, 위기를 맞았다. 경영상황이 악화, 1995년 적자가 9000억원에 이르렀다. 부채비율은 625%나 됐다. 살 길을 찾아나갔다. 구조조정을 택했다. 소비재 사업을 매각했다. 중공업 위주의 사업개편이 이뤄졌다. 이 체질 개선을 주도한 인물이 박 회장이다. 그룹 기획조정실장 시절이다.
노력의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재무구조가 개선됐다. 5%대에 머물던 영업이익률이 1999년에 11.5%로 개선됐다. 2001년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을 인수했다. 2003년 고려산업개발, 2005년 대우종합기계(현 두산인프라코어)를 사들였다. 2007년에는 미국 건설장비 회사 밥캣을 합류시켰다. 두산 체질개선의 절정이었다.
하지만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에 '직격탄'을 맞았다. 두산인프라코어, 두산건설, 두산중공업 등의 실적부진이 이어졌다. 밥캣 인수 등 그룹 확장 과정에서 쌓인 재정적 부담도 커졌다. 중국 등과의 경쟁, 신흥국에서의 영업부진까지 악재의 연속이었다. '위기설'이 계속 나돌았다.
돌파구가 절실했던 지난해, 카드를 뽑았다. 서울 면세점 사업자에 도전, 새 길을 뚫었다. 이와함께 중공업분야 구조조정에 강력 드라이브를 걸었다. 두산인프라코어 공작기계사업, 두산DST, 한국항공우주산업 지분 등의 매각을 추진했다. 핵심 기업을 중심으로 희망퇴직도 시행했다.
하지만 앞길은 불투명하다. 체질 개선이 '한계'에 부딪힌 듯 하다.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다는 말도 나온다. 박 회장에게 찾아온 또 다른 위기다.
인수합병(M&A) 귀재의 선택은?
박 회장은 1977년 외환은행에 입사했다. '남의 눈칫밥을 먹어 봐야 경영인으로서 자질을 갖출 수 있다'는 두산 가문의 철학 때문이다.
두산그룹에 발을 들여놓은 건 1983년이다. 두산건설 뉴욕지사로 들어갔다. 이후 두산음료, 두산식품, 동양맥주, 두산동아 등을 두루 거쳤다.
1995년, 그룹 기획조정실장에 올랐다. 본격적으로 경영에 손을 댔다. 앞서 살펴봤듯이 그룹의 체질 개선을 주도했다. 수많은 M&A를 성사시켰다.
그룹의 수입규모도 급증했다. 1998년 3조4000억원대였던 매출이 2011년에는 26조2000억원대로 뛰어올랐다. 박 회장은 2012년 그룹 회장에 취임했다.
'M&A의 귀재'로 불리는 박 회장은 '트위터리안'으로도 유명하다. 20만명이 넘는 팔로워를 거느린 인기인이다. 2014년에는 아이스버킷 챌린지 참여 영상을 공개, 화재가 됐다. 그룹 회장 취임 뒤에는 '좀 며칠 정신없어 뜸했습니다. 축하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트윗 친구 여러분!'이란 메시지도 남겼다.
또한 소탈한 성격에 유머를 즐긴다. 몇 해 전 만우절에 한 임원에게 '왜 안와? 우리 먼저 식사한다'는 문자를 오전 7시에 보냈다고 한다. 이에 당황한 임원이 '조찬 모임 얘기를 듣지 못했는데 죄송하다'고 하자, '만우절특별조찬'이란 위트를 날렸단다.
박 회장하면 또 떠오르는 문구가 있다. '사람이 미래다.' 이 광고 카피를 직접 썼다. 그만큼 '인재경영'을 강조한다. 회장 취임식에서도 "기업문화를 발현하고 뿌리내리는 것은 사람이므로 '사람이 미래'라는 전략은 더욱 역동적으로 추진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최근 어려운 기업환경에 '인재경영'이 도마에 올랐다. 두산인프라코어 희망퇴직을 실시하면서 신입사원까지 포함시켜 비난을 받았다. 여기에 엄청난 적자에도 배당금을 확대, 또 한소리를 들었다. 오너 일가의 '배당잔치'란 말이 나왔다. 박 회장은 배당금 36억원을 받는다고 한다.
안팎으로 어려운 시기다. 과연 박 회장은 어떻게 헤쳐 나갈까.
신보순기자 bsshin@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