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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름의 짙은 숲이 도르도뉴(Dordogne) 강변에 자리한 자그마한 마을 까스띠옹(Castillon)을 뒤덮고 있다. 이른 아침 강심에서 피어난 물안개가 숲으로 번져난다. 까스띠옹은 프랑스 보르도 외곽에 자리한다. 마을 바로 곁에는 오베르뉴 산맥에서 발원해 서쪽 대서양을 향해 흘러드는 도르도뉴 강이 지나고 있다.
이튿날, 딸보장군은 프랑스군이 퇴각하고 있다는 주민의 정보를 믿고 단번에 적을 쳐부수겠다는 일념으로 성문을 열고 적진으로의 진격을 명했다. 허나 그는 이전에 볼 수 없었던 강력한 포화의 집중공격을 받았다. 지난날 백년전쟁의 여러 싸움에서 용맹을 떨쳐 프랑스 군이 가장 두려워했던 장군이었으나 이번 싸움은 야포를 수레에 싣고 이동하면서 영국군의 공격을 무력화시키고 있는 뷔로 장군의 페이스였다. 끝내 영국군은 처절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마지막 순간까지 전마를 몰고 독전하던 장군의 말이 포탄의 파편을 맞고 땅바닥에 고꾸라지면서 장군도 함께 뒹굴었다. 프랑스의 한 궁수가 적장임을 알아보고서 손도끼로 그의 목을 쳤다. 프랑스군의 승전고가 울려 퍼지고 마지막 수성(守城)의 영웅이 최후를 맞게 되면서 1백여 년을 끌어온 이른바 '백년전쟁'도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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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여 년간 영국이 차지했던 프랑스의 보르도 지방을 마지막까지 사수했던 영국 장군은 죽음 후에도 와인에 그의 이름을 남겼다. '1855년 메독 등급'에 그랑크뤼 4등급으로 지정된 '샤또 딸보'의 와인이다. 굳이 프랑스의 한 샤또가 영국인 딸보의 이름을 딴 연유는 샤또의 자리가 딸보가 이 지역의 총독으로 머물 때, 군대의 베이스 캠프로 쓰였기 때문이다. 죽은 영국의 한 장수 이름이 프랑스 와인 라벨에 올라 훌륭히 브랜드 마케팅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 역사적 아이러니라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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