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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 20대부터 민주화를 이끌었던 '86세대'가 노인 인구에 진입하기 시작했습니다. '난 알아요'를 외치며 서태지와 아이들의 춤을 따라 추던 엑스(X)세대도 오십 줄에 접어들었습니다. 넘쳐나는 활력에 하고 싶은 일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지만 어쩌다 보니 시니어가 된 세대, 연합뉴스는 86세대 중 처음으로 올해 노인연령(65세 이상)에 편입되는 1960년생부터 올해 50세가 되는 1975년생까지를 액티브한 시니어 세대, 즉 '액시세대'로 보고 이들의 삶을 들여다봤습니다. 액시세대가 어떤 삶을 살고 어떤 도전에 직면해 있으며 어떻게 이를 극복하는지 살펴보고, 지방자치단체들이 액시세대의 고용, 소비, 여가 등을 어떻게 지원하고 있는지 매주 일요일 소개합니다.]
경남 창원남중학교 교장을 지낸 뒤 2021년 2월 퇴직한 전직 영어 교사 권용재(65) 씨.
권씨는 교장 재임 당시 코로나 팬데믹으로 현장 수업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발 빠르게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한 수업을 준비했고, 온라인 화상 입학식에서 직접 환영사를 하는 '열혈 교장쌤'이었다.
대학에서 독문학과 영문학을 공부한 그는 젊은 시절, 괴테의 파우스트에 심취한 소위 '학구파'이기도 했다.
경제가 호황이던 80년대에 학부를 졸업한 그는 지금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쉬웠던 취업 대신 대학원 진학을 택할 정도로 공부에 '진심'이었다.
그는 1993년 문학박사 학위를 따고, 대학에서 강사 생활을 이어 나가다 2000년부터 중·고등학교에서 20년가량 교편을 잡았다.
그랬던 그가 은퇴 후 뛰어든 곳은 생뚱맞은 조경분야였다.
이는 실내에서 이뤄지는 정적인 활동보다 자연과 가까이하고 싶다는 개인적 바람에서 비롯된 결정이었다.
권씨는 퇴직하기 전부터 조경분야 공부를 하기 위해 마당이 딸린 시골 주택으로 이사할 정도로 철저하게 준비했다.
퇴직한 그해 10월에는 조경기능사 자격증을 땄고, 시니어 조경 동아리 소속으로 연간 20∼30회 봉사활동도 했다.
이 시기 그는 노인전문요양원과 시골 마을 회관 등 조경 관리가 필요한 곳은 어디든 마다하지 않았다.
이런 봉사활동은 그동안 살면서 국가와 사회로부터 받은 도움을 다시 되돌려 준다는 마음에서 시작했다.
그러다 그는 봉사활동과 같은 단순 재능 기부 방식으로는 사회공헌을 지속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지난 3월 일정 수익이 날 수 있도록 시니어 조합원 5명과 사회적협동조합을 꾸렸고, 현재 본격적인 사회공헌 사업을 하고 있다.
지난 8일에는 창원시 의창구 대산미술관 요청에 따라 미술관 인근 조경 관리를 하기도 했다.
나무 가지치기와 정원·화단 관리, 잔디밭 조성 등 젊은 사람들도 버거워하는 일을 하면서도 그는 은퇴 이후 삶이 정말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는 "많은 사람이 은퇴하게 되면 집에서만 시간을 보내며 무료한 삶을 보낸다고 하지만, 저는 좋아하는 분야에서 경험을 쌓고 활동을 계속하니 큰 보람을 느낀다"며 "지금은 조경 관리에 나름대로 전문가가 됐다는 자부심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흔히 은퇴 이후 삶을 연극에 빗대 '인생 2막'으로 지칭하는 경우가 많지만, 개인적으로 한 사람의 인생은 5개 막으로 구성된 연극이라고 본다"고 강조했다.
그는 학업을 마치는 무렵이 인생 1막, 본격 생업에 뛰어들어 활동하는 시기를 2막, 은퇴 이후 삶이 3막, 모든 활동을 그만두는 노년 무렵이 4막, 죽음을 준비하는 시기를 5막이라고 자체 정의했다.
이 정의대로라면 현재 그의 삶은 '인생 3막'에 해당한다.
권씨는 "연극에서도 가장 중간에 있는 막이 이야기의 절정을 이룬다"며 "요즘 내 삶이 지금껏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라고 웃었다.
고령층 노후 대비가 연일 사회 문제로 지적되는 요즘, 퇴직한 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행복한 삶을 사는 권씨의 모습은 시쳇말로 '은퇴 희망편'에 가깝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이런 성공적인 은퇴에 대해 외부 지원을 잘 받는다면 누구나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권씨는 "경남도가 운영하는 신중년 지원센터에 소속돼 동아리 봉사활동을 하면서 조경 실력을 쌓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에는 협동조합 설립하는 데에도 많은 도움을 받았다"며 "서류 작성부터 설립 인가까지 그 복잡한 과정을 혼자서는 못했을 것이다"고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서 "중년들이 외부 지원을 받아 은퇴 이후 목표를 잘 설정하면 충분히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 경남도는 민간 위탁으로 운영하는 경남행복내일센터를 통해 주로 신중년을 지원하고 있다.
권씨가 도움을 받은 센터가 바로 이곳이다.
센터는 신중년 취업 상담과 사회공헌활동, 협동조합 설립, 문화강좌, 취업 역량 강화교육, 생애 설계 프로그램 등 다양한 사업을 하면서 신중년을 지원한다.
센터가 하는 사업 중에 특히 눈길을 끄는 분야는 직업훈련 사업이다.
이 사업은 단순한 취업 상담이 아닌 중년들이 실제 재취업을 할 수 있도록 실무적인 훈련을 진행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이를테면 지게차 자격증이 있어도 경력이 없어 재취업을 못 하는 중년에게 센터는 100∼150시간 훈련을 받게 하는 방식이다.
훈련을 수료한 중년과 회사를 연결해 실제 재취업까지 돕기에 사업 참여자들도 많고 호응도도 높다.
정서윤 경남행복내일센터 선임은 "앞으로도 경남에서 '신중년'이라고 한다면 바로 센터를 떠올릴 수 있도록 다양한 사업을 운영할 예정이다"며 "지원이 필요한 분들은 언제든지 센터를 찾아달라"고 당부했다.
jjh23@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