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민선자치 30년] ① 풀뿌리 민주주의 안착…온전한 지방분권 확립은 숙제

기사입력 2025-06-15 08:40

(서울=연합뉴스) 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이 1948년 정부수립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지방자치의 변천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기록으로 보는 지방자치' 화보집을 발간했다. 본격적인 지방자치 시행 20년을 맞아 발간한 이번 화보집에는 문서와 사진 등 총 302건을 수록했다. 사진은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개표. 2015.10.27 << 국가기록원 제공 >> photo@yna.co.kr
(삼척=연합뉴스) 배연호 기자 = 27일 삼척핵발전소반대투쟁위원회, 근덕면 원전반대투쟁위원회, 삼척환경시민연대, 삼척원전취소주민소송단이 강원 삼척시 선거관리위원회 앞에서 "삼척 원자력 발전소 유치 신청 철회 관련 주민투표 사무관리를 즉각 수용하라"라고 삼척시 선거관리위원회에 촉구하고 있다. 2014.8.27 byh@yna.co.kr
(수원=연합뉴스) 홍기원 기자 =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30일 앞둔 2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경기도선거관리위원회에서 관계자들이 청사 외벽에 홍보 현수막을 설치하고 있다. 2022.5.2 xanadu@yna.co.kr


1948년에 싹튼 지방자치, 5·16 쿠데타로 실종…민주화 물결 타고 1995년 부활

주민참여·지역자립 토대 마련 성과…여전한 '중앙집중' 권한에 한계 노정

전문가들 "서른 어른, 어릴 적 옷 입은 격…'4대 자치권' 과감히 넘겨야"



[※ 편집자 주 = 올해는 1995년 부활한 민선 자치가 30년을 맞는 해입니다. 지방자치 제도는 풀뿌리 민주주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평가와 함께 여전히 많은 권한이 중앙정부에 집중된 현실로 인해 실질적인 지방자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공존합니다. 연합뉴스는 그간 민선 자치의 성과와 한계를 짚어보고 지방자치 현장의 시도지사와 지방의회, 전문가 제언을 통해 향후 과제와 발전 방향을 모색하는 세 편의 기사를 일괄 송고합니다.]

올해로 민선 자치가 부활한 지 30년이 됐다.

지난 30년은 풀뿌리 민주주의가 전국 곳곳에 안착하는 과정이었다. 내 손으로 우리 지역의 단체장을 손수 뽑고, 요건만 갖추면 소환도 가능한 시대다.

불편하고 불친절했던 관치 중심의 행정은 주민 친화적 행정서비스로 변모했다.

지자체는 경쟁적으로 더 나은 행정서비스를 선보이며 주민 관심을 호소한다.

임명직이던 시절 얼굴 한번 보기 힘들었던 단체장이 거리에서 손을 내밀며 주민 의견을 경청하는 모습은 지난 30년 민선 자치가 낳은 풍경이기도 하다.

중앙에 집중됐던 권한이 지방으로 하나둘 넘어가며 지역은 특색있는 발전을 모색할 수 있게 됐다.

물론 한계도 분명하다. 정당을 중심으로 지방정치가 중앙정치에 종속돼 있다는 비판은 여전하며, 자치·재정분권이 지역 자율성과 자립을 담보할 만큼 이뤄지지 않았다는 목소리는 가시지 않고 있다.

지방자치는 주민 참여를 자양분으로 성장하지만, 아직도 지자체 문을 두드리는 것을 망설이는 이들이 더 많은 게 현실이다.

한국의 지방자치는 어느덧 서른살의 어엿한 어른이 됐지만, 아직도 어릴 때 입고 있던 옷을 그대로 입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 주민참여·지역특색 발전 토대…"12·3 계엄 혼돈 때 민주주의 지킴이"

한국의 지방자치는 1948년 제헌헌법에 지방자치 규정이 도입되면서 그 시작을 알렸다. 지방자치법 제정(1949년), 지방의원 선거(1952년), 자치단체장 직선제(1960년)를 거치며 싹을 틔웠으나, 1961년 5·16 군사쿠테타 이후 지방자치는 실종됐다.

오랜 정치 암흑기를 거쳐 1987년 민주화 운동이란 넘실대는 물결을 타고 지방자치를 향한 열망도 다시금 커졌다. 그해 직선제 개헌과 함께 지방자치법 개정(1988년)이 이뤄졌고, 1991년 지방의회 의원 선거가 다시 치러졌다.

결국 1995년 주민이 지자체장과 지방의원을 함께 뽑는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실시되며 지방자치의 온전한 부활을 알렸다.

민선 자치 30년, 그간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지방자치·분권 등의 업무를 소관하는 행정안전부는 정량적인 지표 변화를 토대로 민선 자치의 주요 성과로 4가지를 꼽았다.

우선 지방선거와 지방의회, 주민투표·소환 등 주민참여가 확대됐고, 정보공개청구 활성화로 풀뿌리 민주주의의 근간이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또 지자체 사회복지예산 확대와 주민 체감형 행정서비스, 부산 글로벌허브도시·대전 과학수도·제주 국제자유도시 등 지역 특화 발전을 통한 지역 경쟁력 제고도 성과로 내세웠다.

지자체는 여전히 갈증을 느끼지만, 지방분권도 점차 확대해온 것으로 봤다.

민선자치 부활 원년인 1995년 42조6천억원이었던 지자체 예산규모는 2024년 310조1천억원으로 8배 가까이 커졌다. 국세 대비 지방세 비율도 1996년 21.1%에서 2023년 24.6%로 높아졌다.

중앙에서 지방으로 넘어간 사무이양 건수는 2002년 232건이었으나, 작년에는 10배가 넘는 2천738건으로 크게 증가했다.

2006년 자치단체의 복지예산 비중은 7.5%에 불과했으나, 2024년 그 비중이 35.0%까지 늘어나며 지역의 의료·보육·문화·예술 분야 예산이 크게 확충됐다.

하혜수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는 15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지난 30년간 지역의 자립력이 강해진 것이 지방자치가 거둔 큰 성과"라고 평가했다.

하 교수는 "지자체 통합, 원전 폐기물 처리장 결정 등 중요한 지역 사안에 대해 주민 목소리가 반영되는 '주민투표제', 주민이 단체장·지방의원을 소환해 소통할 수 있는 '주민소환제' 도입 등 지역 주민의 의사를 반영할 제도가 마련된 것도 지방자치의 성과"라고 돌아봤다.

민선 자치 30년의 변화는 민의를 거스른 '12·3 비상계엄' 사태를 통해서도 확인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헌법을 뒤흔든 위헌·위법한 비상계엄 발동으로 정치적 위기와 혼란이 고조됐지만 전국이 혼돈 없이 빠르게 안정된 배경에는 임기가 보장된 민선 지자체장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분석이 그것이다.

육동일 한국지방행정연구원 원장은 "아마도 지방자치 전이었다면 무정부상태가 됐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며 "대통령이 임명한 이들(관선 지자체장)이었다면 대통령과 함께 크게 흔들렸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번에 각 지자체는 약간의 동요는 있었을지언정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면서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었던 원동력이 지방자치제에 있었던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 "여전히 중앙 권한 집중·획일적…과감한 지방이양 나서야"

민선 자치 30년간 지방은 특색있는 발전 방향을 모색하며 창의성과 자율성을 키워왔지만, 제도나 운영적인 측면에서 여러 한계를 드러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방이 주도하는 자치제도가 자리 잡기 위해서는 중앙에서 지방으로 권한이 대폭 이양돼 실질적인 권한 행사가 가능해야 하는데 여전히 미비한 게 현실이다.

지역 특색을 살린 각종 특구가 확대돼 왔지만 특구 지정 권한은 여전히 중앙정부에 있고, 지방 조직·행정권도 지방보다 중앙의 손에 더 많은 권한이 있다.

낮은 지방세 수입 등에 따른 지자체 재정 부실 문제는 규모가 작은 지자체일수록 어려움이 가중되는 배경으로 지목된다.

'지방시대'를 전면에 내걸었던 윤석열 전 정부는 2023년 국토·환경·산업·고용·교육·복지 등 6개 분야 57개 과제를 우선 이양 과제로 선정해 추진하기로 했지만, 3년 만에 정부가 막을 내리면서 이양 작업은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게 됐다.

최근희 서울시립대 도시행정학과 교수는 "(문제는) 중앙정부가 아직도 쥐고 있는 게(권한) 많다는 사실"이라며 "지방자치·재정권이 약한 점이 지방자치의 걸림돌"이라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행안부, 기재부, 교육부 등 중앙부처가 일부 권한을 지자체에 이양해야 한다"며 "1982년 지방정부의 의무에 관한 법에서 외교·국방권만 빼고 나머지 권한을 지방정부에 위임한 프랑스가 롤모델로 어떨까 싶다"고 제안했다.

지방자치제는 지역마다 고유한 특성과 잠재력을 살려 발전을 도모하는 데 그 의미가 있지만, 지난 30년 한국의 민선 자치는 이런 장점을 살리지 못한 채 획일적인 상태에 머물러 왔다는 비판도 없지 않다.

이 때문에 자치제도의 성과가 극대화되지 못했고, 문제가 일어나면 전국 지자체가 모두 똑같은 문제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육동일 원장은 "지방 자치가 서른살의 어른이 됐지만 이를 둘러싼 제도는 획일적인 상태"라며 "어릴 때 입었던 옷을 어른이 여전히 입고 있는 격"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를 개선할 방안은 지방에 4대 권리를 보장하는 일"이라며 자치 입법권과 조직권, 행정권, 재정권을 지방에 넘겨야 할 권리로 꼽았다.

결국 "헌법과 지방자치법에 해당 권리를 보장하는 조항을 마련하는 게 필요하다"는 게 육 원장의 생각이다.

인구감소·지방소멸 위기가 눈앞에서 벌어지는 상황에서 이제는 중앙이 권한을 지방에 일부만 넘기는 형태가 아니라 지역이 스스로 체력을 키워 자립하도록 과감한 권한 이양에 나서야 한다는 주문도 나온다.

하혜수 교수는 "(권한 이양은) 지역에 나고 자란 사람이 그 지역에서 계속 살 수 있게 지역의 힘을 길러줘야 한다는 의미"라며 "국세를 지방세로 넘기고, 또 중앙부처 장관이 결정할 수 있는 것을 지자체장이 할 수 있도록 넘겨주고 국회 법안을 지역 조례로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ddie@yna.co.kr, shlamazel@yna.co.kr

<연합뉴스>

:) 당신이 좋아할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