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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가본 적은 없지만, 도쿄가 아니라 서울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런 곳이 있는지 처음 알았어요. 치즈떡볶이도 매운데 맛있어요."
일본 도쿄의 코리아타운인 신오쿠보 거리에서 최근 만난 20대 여대생들은 "한국은 일본보다 트렌드에 민감한 것 같다"며 이같이 말했다.
대학생들이 입을 모아 언급한 것처럼 호떡, 핫도그, 회오리 감자 등 한국 음식과 다양한 한국 화장품을 파는 상점이 즐비하다. 일본어가 아닌 한글로 상호를 적은 간판이 많아 도쿄라는 느낌이 거의 들지 않는다.
이날 신오쿠보 방문객은 남성과 비교하면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특히 젊은 여성이 삼삼오오 모여 길거리 음식을 즐기고 쇼핑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치즈 핫도그를 먹고 있던 또 다른 여대생은 "한국 음식과 가요를 좋아한다"며 "친구들도 대체로 한국에 호감이 있다"고 귀띔했다.
'K-컬처'로 통칭되는 한국 문화는 이제 일본에서 더 이상 특별하지 않다. 신오쿠보가 아닌 지방 소도시 식당에서도 K팝이 들리고, 공영방송 NHK가 연말마다 개최하는 인기 음악 행사인 '홍백가합전'에는 여러 K팝 그룹이 출연한다.
또 지상파 TV는 정기적으로 한국 드라마를 방영하고, 넷플릭스에서 한국 콘텐츠가 인기 1위를 차지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도쿄에 거주하는 남성인 요시다 다쿠미(28) 씨는 "한국은 문화적으로 일본보다 한 걸음 앞서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자국 문화 확산에 힘을 쏟는다는 인상도 있다"고 말했다.
일본 청년들이 한국 문화에 빠져 있다는 사실은 정부 설문조사에서도 확인된다.
내각부가 작년 10∼11월 일본인 1천734명을 상대로 진행한 조사에서 한국에 대해 '친밀감을 느낀다'는 견해는 56.3%, '친밀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의견은 43.0%였다.
연령대별로 보면 친밀감을 느낀다는 응답은 18∼29세가 72.5%로 가장 높았다. 30∼39세와 70세 이상은 약 59%였고, 40∼49세가 48.1%로 가장 낮았다. 성별 기준으로는 여성 62.9%, 남성 49.8%가 친밀감을 느낀다고 답했다.
한국에 친밀감을 느낀다는 응답은 2019년 26.7%로 저점을 찍은 이후 매년 꾸준히 높아지는 추세다.
전문가들은 한국을 친밀하게 여기는 일본인 비율이 청년층과 노년층에서 높게 나타나는 배경에 일본 내 한류 유입 과정과 인터넷 보급 등이 있다고 분석했다.
일본에서는 보통 20여 년에 걸친 한국 대중문화 유행을 네 단계로 나눈다.
한류 전문가 4명은 지난해 출간한 대담집 '한류 붐'에서 1차는 드라마 '겨울연가', 2차는 걸그룹 '소녀시대', 3차는 'SNS 사진이 잘 나옴'과 '치즈닭갈비', 4차는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과 걸그룹 '뉴진스'를 시기별 핵심 단어로 꼽았다.
이러한 흐름을 고려하면 '겨울연가'를 즐겨 봤던 노년층과 어린 시절부터 유튜브와 넷플릭스 등으로 한국 콘텐츠를 접한 청년층이 자연스럽게 한국에 호감을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
한류 연구자인 황선혜 조사이국제대 교수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현재의 일본 젊은이 중 일부는 한국 문화를 좋아했던 할머니, 엄마의 영향을 받았다"며 소셜미디어(SNS) 유행과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디지털 콘텐츠 소비 증가도 일본 청년들이 한국 문화에 친밀감을 느끼게 된 요인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다나카 야스호(27) 씨는 "엄마가 한국 드라마를 좋아해서 집에 겨울연가 DVD가 있었다"며 "유튜브에서 한국 드라마 추천 영상을 본 것이 계기가 돼 한국 문화에 빠졌다"고 털어놨다.
방탄소년단 관련 도서를 번역한 가와하타 유카 씨는 책 '한류 붐'에서 일본인들이 한국 콘텐츠를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로 문화적 유사성을 꼽았다.
그는 "젠더 문제, 노동 방식, 가족 관계 등 전제가 되는 것들이 일본과 비슷해 공감하기 쉬운 듯하다"며 일본에서는 유야무야되는 문제를 표면화해 다룬다는 점에서 대리 만족을 주기도 한다고 분석했다.
한국 음식 칼럼니스트인 핫타 야스시 씨는 '한류 붐'에서 고속 인터넷 보급 등 일본이 직면한 과제를 한국이 줄곧 먼저 해결한 것도 한국의 매력이라고 설명했다.
한일 수교 60년 역사를 돌아보면 일본 내 한국 문화 위상은 격세지감이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높아졌다.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당시 일본은 국내총생산(GDP)이 한국보다 30배 넘게 많았고 한국에 대한 관심도 미미한 편이었다.
그러나 양국 간 경제·문화 격차는 서서히 줄어들었고, 1998년 이른바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을 계기로 한국이 일각의 우려에도 일본 대중문화를 개방하면서 양국 간 문화 교류는 급속도로 빨라졌다.
가수 이미자는 지난 9일 보도된 마이니치신문과 인터뷰에서 '한국 거리에 J팝이 흐르고 일본에서는 K팝이 사랑받고 있다'는 질문에 "좋은 시대가 됐다"며 "서로 더 교류하고 잘 지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다만 일본에는 한국에 호감을 느끼는 사람 외에 한국에 무관심하거나 반한 감정을 품은 이들도 적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양국 간 역사 문제가 불거지면 노골적으로 한국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는 사람도 종종 눈에 띈다.
예컨대 혼슈 중부 이시카와현 가나자와시에서는 올해 초 윤봉길 의사 추모관 설립 계획이 알려지면서 우익단체 회원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집단행동을 벌이기도 했다.
다나카 씨는 내각부 조사에서 40∼50대의 한국 친밀도가 상대적으로 낮았던 것과 관련해 "이들이 반한 감정을 갖고 있다기보다는 막연하게 한국에 반일 성향 사람이 많다는 인식이 강하게 남아 있는 것 같다"며 "이 세대는 다른 세대와 비교해 한국 문화를 접할 기회도 적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황 교수는 한국 콘텐츠 제작사가 일본 TV와 손잡고 만든 드라마 '마물'을 예로 들면서 국경을 넘나드는 한일 간 협업이 5차 한류의 핵심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일본에서 '한국'이 하나의 브랜드처럼 인식되고 있다"며 한국 문화가 앞으로 일본인들의 생활에 더 스며들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취재보조: 김지수 통신원)
psh59@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