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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 14일 서울 여의도. '이태원 참사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던 유족 5∼6명을 A씨가 막아 세우며 소란을 피웠다.
A씨는 유족들에게 "시체 장사" 운운하며 6시간 가까이 쉬지 않고 욕설을 내뱉었다. 춤을 추며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는가 하면, 유족들이 오열하는 영상을 눈앞에서 재생해 이들을 조롱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헌법에 보장된 평화 집회에 참가한 피해자를 모욕하고 피해자에게 용서받지도 못해 죄책이 가볍지 않다"면서도 "범행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사회적 참사 유족에 대한 2차 가해를 수사하는 상설 전담 조직 설치를 경찰에 지시한 가운데, 가해자 대부분이 벌금형과 징역형 집행유예에 그친 것으로 19일 나타났다.
대법원 판결문 열람 시스템을 통해 입수한 2014∼2025년 세월호·이태원 참사 희생자 및 유족을 겨냥한 모욕·명예훼손·음란물 유포 사건 1심 판결문 43건을 분석한 결과다.
참사 희생자와 유족에게 2차 가해를 한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세월호 34명·이태원 10명) 44명 중 33명(75.0%)이 벌금형을 받았다.
4명(9.1%)은 징역형 집행유예를 받았고, 모욕 혐의로 기소된 4명은 피해자 측이 고소를 취소해 공소 기각됐다. 친고죄인 모욕죄는 피해자가 처벌 의사를 철회하면 기소할 수 없다.
벌금형 중 절반에 가까운 16명이 초범이고 범행을 반성하고 있다는 등의 이유로 150만∼300만원에 그쳤다. 100만원 이하를 선고받은 피고인도 10명에 달했다.
실형이 선고된 것은 2명뿐이었다. 2015년 수원지법 안산지원은 단원고 교복을 입고 어묵을 먹는 모습을 촬영해 온라인 커뮤니티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에 올린 이들에게 징역 4개월을 선고했다.
이태원 참사 관련 2차 가해 10건 중 7건은 희생자를 성적으로 모욕해 정보통신망법상 음란물 유포 혐의로 기소된 경우였다.
수원지법 안산지원은 2023년 참사 희생자들의 사진과 함께 성적으로 비하하는 글을 인터넷 게시판에 올린 B씨에게 피해자가 구체적으로 특정되지 않은 점 등을 이유로 벌금 150만원을 선고했다.
송해진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위원장은 연합뉴스에 "특별법에도 '2차 가해 처벌'을 규정한 내용이 없고 그 심각성에 비해 실제 처벌받은 사람은 얼마 없다"며 "명백한 혐오와 2차 가해에 대해 강력한 처벌의 메시지를 내놓아야 우리 사회가 더 나은 방향으로 갈 것"이라고 호소했다.
'솜방망이 처벌'이 지난해 12월 제주항공 참사 직후 희생자와 유족을 향한 조롱과 모욕을 양산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5월까지 희생자와 유족들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총 14명이 재판에 넘겨졌다.
광주지법은 박한신 전 유가족협의회 대표에 대해 '가짜 유족', '민주당 권리당원' 등의 허위 사실을 온라인상에 게시한 C씨에게 지난달 벌금 3천만원을 선고했다.
제주항공 참사 왜곡대응팀장을 맡은 김정호 변호사(법무법인 이우스)는 "이례적 고액 벌금"이라면서도 "유족들을 두 번 죽이는 표현까지도 징역형이 아닌 벌금형을 선고한다면 계속되는 2차 가해에 전혀 경고를 주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찰은 지난 16일 "유족 대상 2차 가해에 대한 엄정한 제재가 필요하다"는 이 대통령 지시에 따라 상설 전담 수사 조직 편성을 준비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내부 논의를 이어가는 중"이라며 "전담팀을 만들지 여부부터 시작해 (수사팀을) 어디에 설치하고 어떻게 구성할지 등 전반적으로 살펴보고 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사법부가 사회적 비극에 대한 2차 가해를 중대범죄로 인식하고 양형 수준을 높여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사회적 트라우마를 남긴 참사를 조롱하고 희화화하는 것이 중대한 범죄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사자에 대한 명예훼손과 비하, 조롱에 대한 엄벌이 필요하다"고 했다.
away777@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