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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말저런글] 민의 대의 심의 숙의 대리 대표

기사입력 2025-08-08 07:57

[촬영 진성철]


국민만 바라보겠다는 다짐이 우렁찹니다. 국민 눈높이에 맞추겠다는 약속도 흔하고요. 누구 이야기이겠습니까. 정치인들입니다. 좋은 뜻인 줄 압니다. 그렇겠거니 합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구석에 들어찬 생각을 비우지 못합니다. '고만고만한 소리들 또 하는구나.' 정치인들이라고 어디 다 같기야 하겠습니까. 안 그런 이들이 있었고 지금도 있습니다. 절망하면서도 희망을 못 버리는 것은 그래서입니다. 하지만 여전한 말치레가 한탄스러워 한소리 아니할 도리는 없습니다.



국민만 바라보겠다는 그 말, 이따금 불편합니다. 일상에 치여 사는 국민은 자기 뜻, 즉 민의(民意)를 대신하여(대의. 代議) 일해 달라고 선거로 대표들을 뽑습니다. 선택받은 이들이라면 심의(審議. 자세히 조사하고 논의하여 결정하다)하고 숙의(熟議. 깊이 생각하여 충분히 의논하다)하여 일을 척척 해줘야 합니다. 대통령이라면 국회를 설득해야 하고요. 국회의원이라면 정부 당국자들과, 또 정당 사람들과 소통해야 합니다. 국민만 바라봐선 될 일이 아닙니다. 국민 바라볼 시간에 공공 의제에 매달려 심의해야 하고요. 쟁점 현안을 숙의해야 합니다. 국민은 평소에 넉넉히 보아두고요.

국민 눈높이에 맞추겠다는 말에도 '이의 있습니다'. 그 함의(속뜻)야 지엄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도 눈높이에만 맞추면 안 됩니다. 장기적 공익을 해칠 수 있습니다. 무릇 심의하고 숙의하는 대표(자)들이라면 그렇게 하기 힘든 국민들의 '필요'(needs)를 파악하여 정책을 펼쳐야 합니다. 오로지 '수요(요구)'(demands)에 따라 인기 영합으로만 나아가선 곤란합니다. 추수(追隨. 뒤쫓아 따름)만 해서는 더더욱 안 되겠고요. 삶이 바쁜 국민들은 니즈를 알기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정치인들은 국민들보다 반걸음 앞서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조언을 참고합니다.



민의를 대하는 정치인의 자세에 관해서는 새길 말한 금언도 여럿 있습니다. '정치인은 대중의 요구에 부응해야 하지만, 그와 동시에 자기 판단에 따라 대중에게 진정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책임도 져야 한다.' [과감한 거역]으로 번역된 이탈리아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의 개념입니다. 로마의 철학자 겸 정치가 세네카의 말도 솔깃합니다. '민심(민중)을 따르기만 하면 국민과 함께 망할 것이요, 민심을 거스르기만 하면 국민에 의해 망할 것이다'. 역사의 교훈과 현자들의 가르침은 중용(中庸.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이 도리에 맞는 中과 평상적이고 불변적인 庸)으로 보입니다. 중용은 곧 시중(時中)입니다. 같은 무게를 양쪽에 놓고 저울대의 한중간을 들어 균형을 잡는 '관념적' 중용이 아니라 그때 그 장소의 그 비중을 봐서 중(中)을 잡는 '현실적' 중용 말입니다. 정치인은 국민을 바라보되 국민만 바라봐선 안 됩니다. 눈높이에 맞추되 눈높이에만 맞춰선 안 되고요. '필요'한 정책을 만들되 '수요'를 살펴야 합니다. 표층의 민심을 대변하는 대리인(delegate)이자 심층의 민의를 체현하는 대표자(representative, 또는 trustee/수탁자)여야 함도 자각하면서요. 민심은 때마다 일렁입니다. 민의는 저류에서 도도하게 흐르고요. (서울=연합뉴스, 고형규 기자, uni@yna.co.kr)

※ 이 글은 다음의 자료를 참고하여 작성했습니다.

1. 서병훈 김주성 임혁백 강정인 이화용 정호원 홍태영 오향미 김남국, 『왜 대의민주주의인가』, 이학사, 2011

2. 박상훈, 『정치의 발견』, 폴리테이아, 2011

3. [이런말저런글] 시중(時中) (송고 2024-12-09 05:55) - https://www.yna.co.kr/view/AKR20241206081800546

4. 표준국어대사전

5. 네이버 고려대한국어대사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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