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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를 머금을 뿐"…광복 80년, 기억해야 할 회당 장석영 발자취

기사입력 2025-08-08 09:06

[현손 장세민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칠곡=연합뉴스) 김재욱 경북 칠곡군수가 18일 서울시 서대문구에 있는 주한 프랑스대사관을 방문해 필립 르포르 주한 프랑스대사에게 회당 장석영 선생이 작성한 파리장서 초안이 담긴 서책을 전달하며 기념 촬영하고 있다. 1919년 프랑스에서 열린 파리강화회의에서 국제 사회에 조선 독립을 호소하고자 유림을 중심으로 작성했던 파리장서가 104년 만에 공식적으로 프랑스에 전달됐다. 2023.5.18 [칠곡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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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장서 초안 집필 회당 선생 내년 서거 100주기…기념사업회 출범

후손 "유림단 독립운동 협조자는 서훈은커녕 관심도 못 받아"

(칠곡=연합뉴스) 김현태 기자 = '우리는 10년 동안 어미의 젖을 잃은 어린아이와 같이 눈물을 뿌리며 피를 머금을 뿐 의지할 곳이 없었습니다."

회당 장석영(1851∼1926) 선생은 자신이 초안을 작성한 파리장서에 나라 잃은 심정을 이처럼 표현했다.

광복 80주년. 독립운동사에 기억해야 할 발자취가 있다.

경북 칠곡군 기산면 각산리에서 태어난 선생은 1919년 프랑스에서 열린 파리강화회의에서 국제 사회에 조선 독립을 호소하려고 유림이 중심이 돼 작성했던 파리장서의 초안을 집필했다.

선생은 파리장서 외에도 독립운동의 현실을 기록으로 여럿 남겼다.

"담당 순사는 밤새도록 철망 틈으로 각 방을 엿봤다. 꿇어앉아 있지 않은 자, 사사로이 서로 말하는 자, 앉아서 다른 사람의 등을 보고 있지 않은 자, 낮인데도 누워 있는 자, 밤인데도 누워있지 않은 자가 있으면 모두 문을 열고 들어가 뺨을 때리거나 허리를 발로 차며 백 가지로 능욕했다"

파리장서 초안 집필 등으로 대구교도소에서 127일의 옥고를 치른 선생은 그 기억을 흑산일록(黑山日錄)에 이같이 새겼다.

흑산일록은 일제강점기 대구교도소의 구조와 죄수들의 옥중생활이 자세히 기록돼 독립운동의 주요 사료로 평가받는다.

"외국에서 모욕받아도 막을 수 없으니, 드넓은 이 세상에서 우리가 가서 귀착할 곳은 어디인가"

1912년 100여일 동안 만주와 러시아 일대를 살피며 일제의 탄압에 조국을 떠났던 민초의 삶과 독립운동가의 현실을 기술한 요좌기행(遼左紀行)도 선생이 남긴 주요 사료다.

선생은 을사늑약에 항거해 이를 파기하고 을사오적의 처형을 요구한 청참오적소(請斬五賊疏) 상소 작성과 1907년 국채보상운동에도 참여했다.

1925년 70세를 넘긴 고령에도 독립자금 마련을 위한 영남지역 대표를 맡아 헌신하던 선생은 이듬해 생을 마감했다.

정부는 장석영 선생의 공로를 기려 1980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유학자로서 독립운동과 후학 양성에 매진했던 선생은 그 업적에 비해 대중에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다.

내년이면 선생의 서거 100주기. 잊힐 수도 있던 회당의 업적은 다시 조명될 채비를 갖추고 있다.

지난 6월 10일 칠곡군민회관에서는 후손과 학계, 칠곡군 관계자 200명이 모인 가운데 회당 장석영 선생의 기념사업회 창립대회가 열렸다.

행사에서 기념사업회의 공동대표를 맡은 이윤갑 계명대 명예교수는 "회당은 학문에서도, 덕행에서도 칠곡은 물론 근대 한국의 사표가 되기에 충분한 큰선비다"라며 "서거 100주년을 맞아 칠곡군에서 회당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고 계승하는 회당 장석영 선생기념사업회를 창립하는 것은 기념비를 건립하는 것만큼이나 뜻깊은 일"이라고 밝혔다.

김재욱 칠곡군수도 "장석영 선생은 칠곡이 낳은 인물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기억하고 기려야 할 독립운동가"라며 기념회 출범을 반겼다.

기념회는 선생의 뜻을 기리고자 우선 3가지 사업에 집중할 계획이다.

파리장서 회당본(초안) 등 장석영 선생이 남긴 사료와 항일운동에 대한 학술대회 개최, 요좌기행을 근거로 따라가는 만주·시베리아 역사 답사, 유림독립운동을 바탕으로 한 공연 제작 등이다.

회당 선생의 현손인 장세민씨는 8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2025년 현재까지 파리장서운동 서명자 137명 중 21명의 애국지사는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지 못했다"면서 "심지어 유림단 독립운동 관련 상당수는 서훈은 물론 관심도 받지 못한 상황이다"라며 잊혀가는 독립운동 역사의 현실을 전했다.

덧붙여 "광복 80주년을 맞아 정부가 나서서 유림단 독립운동에 대한 학자들의 연구를 지원하고 독립유공자 후손에 대한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지금 천하에 사람은 모두 평등하고 나라는 모두 자주(自主)인데, 어찌 유독 우리나라 사람들만이 자립을 얻지 못하고 다른 나라 사람의 압박을 받으며 처량하고 초췌하게 구렁텅이 속에서 죽어야 하겠습니까"

장석영 선생이 1919년 파리장서에 써 내려간 일제에 대한 울분은 잊힐 과거가 아닌 지금과 앞으로도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역사임은 분명해 보인다.

mtkht@yna.co.kr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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