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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로] 삼성에 찾아온 마지막 기회일지도

기사입력 2025-08-12 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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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건설 중인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전경. 2025.2.14 [삼성전자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photo@yna.co.kr


(서울=연합뉴스) 이승우 선임기자 = 공산품 무역으로 사실상 먹고사는 우리나라에 삼성이란 이름은 국가대표 에이스와 동격으로 여겨진다. 반도체와 첨단 가전 수출로 고속 성장의 선두에 섰고 국내에서뿐 아니라 국제 무대에서도 `일등주의', '제일주의'를 서슴없이 외쳤다. "역사는 1등만을 기억합니다. 2등은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습니다"란 말을 광고 문구로 썼을 만큼 '일등 DNA'를 중시했다. 증시에서도 삼성전자를 위시한 삼성 계열사들이 큰 지분을 차지해 삼성이 무너지면 우리 경제가 무너진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삼성은 젊은이들에게도 여전히 취업하고 싶은 선망의 일자리다.

그랬던 삼성에 여러 적신호가 켜진 지 꽤 됐다. 반도체, 휴대전화 등 세계 정상을 수성하던 여러 부문에서 선두를 내주거나 엎치락뒤치락하고 새로운 시장에선 경쟁력이 뒤처지며 삼성은 몇 년 새 부진을 거듭해왔다. '일등 삼성'은 과거 영화를 추억하는 역사 속 단어로 남는 게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온다. 삼성 위기의 배경엔 경쟁자들의 추격과 성장도 있었지만, 시의적절한 투자와 기술 개발 시기를 놓치는 등 내부 문제도 적지 않았다. 그 사이 오너 사법 리스크까지 겹치면서 지휘 체계도 흔들렸다. 선대 시절의 일사불란한 결정과 신속하고 과감한 투자가 이뤄지기 힘든 환경이 한동안 지속됐다.

천우신조일까. 활로를 찾던 삼성에 부흥의 기회가 왔다. 최근 글로벌 빅테크와 대규모 투자 협력에 잇달아 합의하는 성과를 올린 것이다. 이번 협력 계약은 여러 우연이 겹친 행운이라 부를 만큼 이상적이다. 우선 상대가 세계 첨단산업 질서를 넘어 인류 지적 혁명을 주도하는 테슬라, 애플이라는 점이다. 해당 분야가 앞으로 우리의 '쌀'이 될 인공지능(AI) 시스템 반도체 칩과 첨단 이미지 센서 칩이란 건 더 고무적이다. 게다가 시스템 반도체는 삼성 철수설까지 나올 만큼 고전해온 분야다. 흔들리던 이재용 회장의 '시스템반도체 2030' 선언이 실현을 위한 본궤도에 일단 오른 셈이다. 시스템반도체 2030은 2030년까지 팹리스(반도체 설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등에 133조 원을 투자해 시스템 반도체 1위에 오른다는 목표다.

삼성이 이처럼 재도약 발판을 마련한 데에는 여러 외형적 이유가 있으나 근본적 배경은 세계 질서의 급격한 변화로 볼 수 있다. 중국의 급부상과 이를 견제하려는 미국의 행동 계획 속에서 세계 질서는 외교안보를 넘어 경제산업 측면에서도 변화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첨단기술=군사력'이란 등식을 잘 아는 미국은 AI 반도체처럼 최첨단 산업에 활용되는 기술·부품의 중국 수출을 봉쇄하고 나섰다. 자국과 동맹국의 기업들이 중국에 관련 기술과 부품을 공급할 경우 제재를 불사한다. 대한민국 제조업의 최대 숙적인 중국이 큰 걸림돌을 만났다.

이 같은 세계사적 지각변동이 미국 제조업 부활이란 트럼프 행정부의 목표와 맞물리며 삼성과 같은 한국 제조업체들엔 반사이익으로 돌아오게 된 형국이다. 세계 파운드리 공급량의 3분의 2가량이 대만 TSMC에 집중된 현상이 지정학적으로 위험하다는 판단도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한국 기업에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AI 수요 급증이 예상되는 가운데 부품 반도체의 위탁 공급처가 불안정한 한 곳에 집중된 건 당연히 바람직하지 않다. 이 역시 중국의 대만 위협이 직결된 지정학 리스크다. 미국이 일으킨 관세 전쟁의 최종 표적도 중국이다. 관세 전쟁을 세계 질서 재편을 위한 제2의 플라자 합의로 해석하는 학자나 미디어도 적지 않다. 정치와 경제는 언제나 밀접하다.

뒤처진 비메모리 반도체에서 추격의 전기를 맞았지만, 삼성이 해결해야 할 난제도 많다. 우선 매우 엄격하고 까다로운 것으로 알려진 빅테크 협력사들의 요구 조건과 기대치를 고도의 기술력과 생산력으로 충족해야 한다. 그러려면 충분한 보상을 통한 관련 인력 확보 및 양성, 생산·연구·개발 시설의 차질 없는 확보, 공정한 성과 위주의 조직 운영, 내외부 정치 리스크 차단 등이 필요하다. 정부와 국회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 글로벌 거대 기술사들과 경쟁 중인 우리 선도 기업들이 이런 과제들을 잘 해결하도록 각종 제도적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불필요한 규제는 조속히 개선하고 정부 재정이 필요한 곳엔 집중적 지원이 언제든 이뤄지게 예산 배분 계획을 짜야 한다.

leslie@yna.co.kr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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