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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로] 무기가 된 물…진짜 전쟁 부르는 '물 전쟁'

기사입력 2025-08-19 08:53

[신화=연합뉴스 자료사진. 재배포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이승우 선임기자 = 우리 몸은 70%가 물이다. 생명체가 있다고 유일하게 확인된 별이 지구인 것도 물 덕분이다. 생명이 살만한 별을 찾을 때 먼저 확인하는 것도 물의 존재다. 물은 그 중요성만큼이나 성질과 기원 등도 신비스럽다. 현대과학에서도 물이 어떻게 지구에 생겨났는지 이유를 정확히 모른다고 한다. 물이 없으면 인간은 살 수 없다. 그래서 예부터 치수(治水)는 국가 생존의 필수 요건이었다. 농경과 공업을 비롯한 모든 산업의 사활도 필요한 물을 댈 수 있느냐에 달렸다.

지구 표면 약 71%를 물이 덮고 있는데, 육지 생명체가 쓸 수 있는 비율은 극히 낮다. 지구상 물 97.5%는 해수이고 나머지 2.5%만 염분 없는 담수다. 이 민물 중 70% 가까이인 빙하와 만년설을 제외하고 대부분 지하수나 토양 속 수분 등도 빼면 인류가 쓸 수 있는 물은 지구 전체 물의 0.007%밖에 안 된다고 한다. 세계 인구가 계속 늘고 그에 따라 식량 생산량도 증가하는 데다 엄청난 물을 소비하는 전자·기계 산업 등까지 발전하면서 인류는 만성 물 부족이라는 숙제를 안았다.

이제 세계 각국이 물이란 한정된 자원을 놓고 국민 생명을 건 싸움을 벌여야 하는 시대가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실제 곳곳에서 물 전쟁(Water War)이 격화하고 있다. 아시아에선 강을 공유하는 중국, 인도, 파키스탄 등이 댐 건설 등을 두고 충돌 중이다. 아프리카의 이집트와 에티오피아도 나일강 때문에 분쟁 위기를 맞았다. 미국과 멕시코도 리오그란데강과 콜로라도강의 물을 서로 나눠 쓰는 조약을 놓고 갈등을 빚고 있다. 이란과 아프가니스탄, 칠레와 볼리비아, 그리고 중앙아시아 내륙 국가들도 물싸움이 한창이다.

특히 인구 밀집 대륙인 아시아의 물 전쟁은 자칫 세계 대전을 야기할지 모를 뇌관으로 떠올랐다. 세계 인구 1위를 다투는 인도와 중국에다 파키스탄까지 세계 인구 '톱5'에 드는 삼국이 물 전쟁에 휘말렸다. 모두 핵보유국이란 점에서 더 심각해 보인다. 지금 눈에 띄는 건 인도와 파키스탄의 물을 둘러싼 무력 충돌이다. 지난 4월 카슈미르 테러 배후를 파키스탄으로 지목한 인도가 양국 간 인더스강 조약을 파기하겠다고 선언한 뒤 양국이 미사일 공격까지 주고받으며 확전 우려를 키우고 있다.

1960년 체결한 인더스강 조약은 파키스탄으로 흐르는 인더스 서쪽 지류의 사용 권리를 파키스탄이 갖는 게 골자다. 파키스탄은 전체 수자원의 80% 가까이 의존하는 인더스 지류가 끊기면 수력발전이 사실상 중단되고 농작물 재배도 어려워진다. 파키스탄으로선 생존권을 박탈당하는 셈이지만 인도는 '일수불퇴'를 거듭 공언해 전운이 짙어지고 있다. 이 대립에서 미국은 아시아의 새 전략 거점인 인도에, 중국은 일대일로 핵심인 파키스탄에 각각 힘을 실어 미·중 충돌의 대리전으로 비화할 가능성도 있다.

인도는 중국과도 물 분쟁 중이다. 티베트에서 발원해 인도까지 흐르는 브라마푸트라강이 문제다. 중국이 이 강 하류에 세계 최대 싼샤댐의 3배 넘는 용량을 보유할 수력발전 댐 건설을 시작해서다. 이 정도 규모면 환경 파괴는 물론 가뭄과 대형 홍수 같은 재해 발생 가능성이 커지므로 인도도 대응책을 고민 중이다. 특히 양국이 잠재적 적국이란 점에서 인도는 중국이 댐을 무기화할 가능성을 의심한다. 물은 이제 명실상부한 국제 안보 이슈가 됐다.

이미 중국은 지정학적 이점을 활용해 물 전쟁을 부추기는 나라로 국제사회에서 지목받고 있다. 중국은 '세계의 지붕' 티베트고원을 장악한 덕에 아시아의 물줄기를 다수 지배한다. 이 고원은 아시아 10대 하천의 시작점이자 두 자릿수 나라를 지나가는 강의 수원지로, 중국은 여기에서 발원해 다른 나라로 흐르는 강들을 무기화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는 하이브리드 전쟁의 중국 버전인 '초한전'(超限戰)의 한 형태로도 해석된다. 중국이 메콩강 상류에 댐들을 대거 지은 이후 하류의 베트남, 태국, 라오스 등은 거의 해마다 가뭄을 겪는 등 안보 위기를 실감하고 있다.



물 전쟁은 남의 일이 아니다. 우리도 이미 과거 1980년대에 북한이 북한강 상류에 지은 금강산댐이 수공(水攻)에 활용되거나 천재지변으로 붕괴할 가능성에 대비하고자 '평화의 댐'이란 방어용 댐을 건설했다. 정치적 논란이 끊이지 않았지만 21세기 들어 금강산댐이 붕괴하면 실제 수도권이 위험해진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자 결국 2단계 증축을 통해 저수 용량을 4배나 늘렸다. 지금은 안보 유용성과 홍수 조절 기능을 인정받고 있다.

우리나라는 강물 수량의 변동성을 뜻하는 하상계수가 매우 높다. 다른 나라 주요 하천들의 하상계수는 통상 20~30 안팎이지만, 우리 강들은 평균 300에 달한다. 비가 안 오면 강이 마르고 호우 때는 단시간에 홍수가 나는 지형이니, 물이 안보상 약점일 수밖에 없다. 한강의 하상계수는 390으로 장마철마다 홍수가 반복됐고 갈수기엔 백사장이 드러날 정도였다. 여러 댐과 수중보를 지은 뒤에는 한강 하상계수를 90까지 하향 조절할 수 있게 돼 지금은 가뭄에도 물이 차 있고 해마다 반복된 서울 홍수도 거의 사라졌다. 5대 하천 중 한강과 함께 하상계수가 가장 높은 섬진강은 아직 유량 조절 역량이 떨어진다고 한다.

leslie@yna.co.kr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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