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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 기술을 선점하고 관련 산업을 육성하는 것은 더 이상 개별 국가나 기업들에 취사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미래 존망을 걸고 반드시 해내야 하는 과제가 됐다.
이는 지방자치단체들 사이에서도 지역 경쟁력 강화와 생존을 위한 최대 현안으로 떠올랐다.
자칫 소모적 경쟁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전문가들은 지역별 강점을 살린 AI 특화 노력이 국가 차원의 경쟁력 제고는 물론 지역 균형발전까지 동시에 도모하는 도약대가 될 수 있다고 분석한다.
AI 선도기업과 협력해 주도권을 선점하려는 지자체들의 노력이 이어지는 가운데 울산의 행보가 우선 눈에 띈다.
울산시는 지난 29일 울산 미포국가산업단지에서 열린 울산 AI 데이터센터 기공식에서 '산업 수도'를 넘어 'AI 수도'로 거듭나겠다고 선언했다. 전통 제조산업 강자에서 AI 산업 중심지로 도약하겠다고 천명한 것이다.
이런 자신감은 SK와 아마존웹서비스(AWS)가 추진하는 AI 데이터센터 건립사업을 유치한 성과에서 비롯된다. 두 글로벌 기업이 2029년까지 울산 남구 황성동 일대 3만6천㎡에 103㎿ 규모로 구축하는 이 데이터센터의 전체 투자액은 7조원에 달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이후 첫 산업현장 방문지로 지난 6월 열린 데이터센터 출범 행사장을 찾았을 정도로 국가적 관심을 받는 사업이기도 하다.
울산시는 이 데이터센터 구축을 계기로 AI, 빅데이터, 클라우드 등 관련 업계 혁신기업의 울산 유치가 이어질 것으로 기대한다.
경북 포항시는 AI 컴퓨팅센터를 들이기 위해 지난 6월 경북도, AI 기업, 지역대학 등과 함께 투자 양해각서를 맺었다.
이들 기관과 기업은 앞으로 10여년에 걸쳐 포항 북구 흥해읍 포항경제자유구역 4만7천647㎡에 2조원을 들여 AI컴퓨팅센터를 건립한다. 이 시설은 약 17만장의 최신 그래픽처리장치(GPU)를 탑재해 고난도 AI 모델 학습과 대규모 실시간 데이터 처리 등을 지원하게 된다.
부산시는 네이버클라우드의 기술 지원 등을 토대로 부산형 지능 행정 구현에 나선다.
올해는 내부 행정 업무에 생성형 AI 서비스를 도입해 공무원의 업무 생산성을 높이고 시민 정책 수요에 대응하는 행정시스템을 마련한다. 또 AI를 이용해 방대한 행정자료를 통합·연계해 정책 환경의 분석, 진단, 예측 과정을 지원한다.
◇ 'AI 혁신거점' 4개 지자체, 예타 면제 혜택에 사업 탄력
정부는 최근 광주·대구·전북·경남을 AI 혁신 거점으로 정하고, 이들 지역 사업의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했다. 이에 따라 관련 사업을 지원하는 해당 지자체의 대응이 분주해졌다.
광주시는 지난 5년간 4천300억원 규모의 AI 1단계 사업을 통해 국가AI데이터센터, 대형 드라이빙 시뮬레이터 등 기반 시설을 구축했다. 이번에 2단계 사업인 AX(AI 전환) 실증밸리 조성이 예타를 면제받아 추진에 탄력을 받게 됐다.
2단계는 시민들의 일상에 AI를 입히는 사업이다. 내년부터 5년간 6천억원을 투입해 모든 시민이 AI 기술의 혜택을 체험하고 공유하는 AI 모델 구현에 중점을 두고 모빌리티와 에너지산업 AX 핵심기술을 개발할 계획이다.
전북특별자치도는 피지컬 AI 실증 거점 조성사업의 예타 면제가 확정됨에 따라 이 사업에 한층 힘을 실을 방침이다.
이 사업은 피지컬 AI 전략 모델을 수립·기획하고 기술 구현을 위한 기초 모델과 개발 인프라를 설계하는 데 중점을 둔다. 피지컬 AI 핵심 기술 개발과 물류 등 분야별 산학연의 공동 연구도 진행된다. 2030년까지 들어가는 총사업비만 1조원이다.
경남도는 제조 분야 피지컬 AI 파운데이션 기술개발·실증사업이 예타 면제 대상으로 확정돼 내년부터 본격적인 사업을 추진한다.
국가 제조 분야에 범용으로 투입할 수 있는 피지컬 AI 모델과 정밀 제어, 예지 정비(고장·이상 징후 사전 감지) 등 제조공정에 대한 분야별 AI 설루션 개발이 경남을 중심으로 이뤄지게 된다. 국비와 민간투자를 포함해 1조원이 투입된다.
안대한 울산대 ICT융합학부 교수는 31일 "AI 대전환은 단순한 기술 도입이 아니라, 지역 특화 산업과 연계한 AI 생태계 구축이 핵심"이라며 "대기업 중심으로 축적되는 데이터를 중견·중소기업과 공유하도록 공공 데이터 허브를 구축해 혁신을 가속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AI 도입 자체 청사진도 추진…"지역소멸 극복 대안 가능성"
AI 대전환을 위한 자체 청사진을 마련해 실행에 나선 지자체들도 있다.
인천시는 '사람 중심의 AI 공존도시'라는 비전을 앞세워 피지컬 AI, 제조 AI, AI 로봇 분야의 핵심 기술을 육성하기로 했다. 특히 강력한 제조업 기반과 국제공항, 항만을 보유한 인천의 강점을 살려 AI를 통해 혁신을 이룬다는 구상이다.
해외 AI 연구자들의 인천 정착과 AI 융합 인재 양성을 위해 '인천 AI 워케이션(업무·휴가를 결합한 새로운 근무방식)' 사업과 1천억원 규모의 AI 혁신 펀드 조성도 추진한다.
충북도는 최근 AI 대전환 밑그림 마련을 위한 연구용역을 마무리했다. 이 연구 결과를 토대로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AI 혁신 얼라이언스 출범, AI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할 전담부서 신설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
경기도는 오는 11월부터 시범 운영하는 것을 목표로 보안 기능까지 갖춘 행정업무용 생성형 AI 플랫폼을 구축 중이다.
강원특별자치도는 전국 처음으로 생성형 AI 기술을 활용한 야간 민원 응대 서비스 'AI 당직원'을 9월부터 도입한다.
전문가들은 지자체들의 이런 경쟁과 노력이 지역 균형발전을 촉진해 지역소멸을 막는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분석한다.
유대승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지능로보틱스울산연구실장은 "지역의 강점을 살린 AI 특화 전략은 자원의 낭비를 막고, 지역 주력산업 고도화로 신산업을 육성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창출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유 실장은 "이는 지역경제의 지속 가능성을 강화하고 일자리를 창출해 수도권과 지방의 불균형을 해소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안 교수는 "AI 대전환의 핵심 전제인 인재 유치 전략은 단순히 수도권 인재에 의존하기보다는, 지역 현장에서만 습득할 수 있는 지식과 데이터 활용 기회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차별화를 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산학연관 협력이 원활하도록 제도적 기반을 강화하고, 실질적인 성과를 도출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최해민 이재현 김선호 장덕종 이정훈 전창해 임채두 황수빈 신민재 허광무 기자)
hkm@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