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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급망 혼란에 내년 사업전략 마련에도 어려움
환율 급등(원화값 하락)은 수출 비중이 높은 한국에는 대체로 유리한 것이 과거 공식이었다.
하지만 국내 기업들의 해외 조달 및 생산 비중이 높아지고, 미국 관세라는 비용 충격까지 더해진 상황에서 환율 급등은 오히려 수출 불확실성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다 중국의 희토류 수출통제 등에 따른 원자재 공급망 혼란은 반도체 기업 등에 충격을 줄 수밖에 없어 국내 산업계가 설상가상의 상황에 빠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 1,430원대 넘나드는 불안한 환율…'관세 충격' 車·철강 삼중고
13일 재계에 따르면 중국의 희토류 수출 통제 강화에 미국이 중국에 대한 100% 추가 관세를 예고하는 등 미·중 간 무역 갈등이 다시 심화하는 모양새다.
이에 원/달러 환율은 이날 5개월 만에 제일 높은 수준인 1,430원대를 넘나들며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기획재정부·한국은행 등 외환 당국이 환율 안정을 위해 구두 개입에 나서기도 했지만, 경기침체와 관세, 노란봉투법 등으로 안 그래도 어려운 국내 기업들은 환율까지 급등하자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다.
과거에는 원/달러 환율이 오르면 제품을 판 후 받는 달러의 원화 환산 수익이 늘어나 수출 기업에 호재로 작용했다.
하지만 국내 기업들의 해외 조달 및 생산 비중이 늘어난 최근에는 환율 상승이 오히려 기업에 비용 부담으로 다가온다.
원자재 수입분과 현지 생산에 따른 인건비 등을 모두 달러로 결제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으로부터 25∼50%의 품목별 관세를 물고 있는 철강, 자동차 기업들은 환율 상승에 따라 더 어려운 상황에 부닥쳤다.
경기침체와 미국·유럽으로부터의 50% 관세에 직면한 철강업계는 철강재 생산에 필요한 철광석과 제철용 연료탄 수입 비용 증가까지 더해져 삼중고에 처했다.
항공업계 역시 환율 상승에 따른 유류비, 리스료, 정비비 증가로 손실 규모가 커질 전망이다.
대한항공의 경우 올해 상반기 말 기준 순외화부채는 약 40억달러로, 환율이 10원 상승하면 약 400억원의 외화평가 손실이 발생한다.
국내 기업들은 환헤징 등 자체 대책을 운용하고 있지만 환율 상승에 따른 경영 불확실성 확대를 우려하고 있다.
이에 따라 환율 변동성을 줄이기 위해 미국과의 무역 협상을 하루빨리 타결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예전에는 환율 높아지면 수출에 긍정적 효과를 미친다는 분석이 많았는데 지금은 수입 의존도가 높은 기업과 내수 중심 기업 위주로 부정적인 효과도 크다"며 물가 상승과 소비심리 위축 등 복합위기 심화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하루빨리 해결책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미국과의 무역협상 타결이 현재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본다"며 "그렇지 않으면 환율이 정말 1천500원대까지 치솟을 수도 있는데 미국 관세가 수출에 미치는 영향이 현실화하는 상황에도 기업에 더욱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 공급망 혼란에 반도체·가전·배터리업계도 대응 어려움
환율 상승 외에도 미중 통상 갈등 재점화에 따른 원자재 공급망 혼란으로 반도체·가전 및 배터리 업계는 내년 사업 전략 마련 및 공급망 대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가별 상호관세뿐 아니라 제품별로 관세가 세분되며 셈법이 더욱 복잡해졌다는 목소리다.
재계 관계자는 "글로벌 통상 규제가 품목별, 지역별로 다변화되고 있어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며 "내년 사업 전략을 짜는데 고려해야 할 변수가 계속 늘어나 무엇 하나 결정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특히 전자업계의 경우 마케팅 비용 증가 등으로 하반기 실적이 상반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조한 '상저하고' 경향이 크다. 4분기 들어 심화한 불확실성이 더욱 큰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중국이 희토류에 이어 리튬 이온 배터리와 인조 다이아몬드에 대한 수출 통제를 시행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면서 가전 및 전기차, 반도체 장비 부품 업계의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장상식 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중국이 이번에는 직접 통제를 강화했다는 점이 특징"이라며 "한국 기업에는 향후 반도체, 반도체 장비, 방산, 풍력 발전 등 여러 제품에 대해 중국의 수출통제가 커질 수 있다는 불안심리가 심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기업의 공급망 다변화를 위한 비용 압박도 커질 것으로 우려된다"며 "비축 물량 확대 및 장기공급 체결, 외부 기업과의 협력 강화 등으로 공급망 쇼크에 대응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조언했다.
vivid@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