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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수력원자력이 미국 웨스팅하우스와 지재권 분쟁 해소 '불공정 합의'를 맺는 데 '한국형 원자로 APR1400이 미국 웨스팅하우스 기술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는 미국 정부의 결정이 핵심 근거가 된 것으로 확인됐다.
19일 한수원이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허성무 의원(더불어민주당)에게 보고한 내용에 따르면 미국의 원자력 수출 통제 주무 부처인 에너지부(DOE)는 바이든 행정부 시절인 작년 8월 한국형 원자로 설계가 미국 원천 기술을 포함하고 있다는 내용의 '결정'을 내렸다.
이 결정은 한수원이 체코 신규 원전 2기 우선협상자로 선정된 작년 7월 직후 이뤄졌다.
한수원은 당초 APR1400은 한국의 독자 개발을 거쳐 완성한 모델로 미국 수출 통제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미국 정부가 이런 주장을 배척한 것이다.
체코 원전 수출 통제권을 가진 미국 정부가 이 판정으로 지재권 분쟁에서 자국 기업의 손을 공개적으로 들어준 것으로 평가된다.
앞서 미국 정부는 2023년 4월 한수원이 웨스팅하우스에 의뢰하지 않고 직접 체코 원전 수출 신고를 하자 '미국인이 신청하라' 취지로 반려한 바 있다.
당시까지만 해도 지재권 분쟁의 핵심 논쟁 지점에서 관한 공개 결정을 내린 것까지는 아니었다.
지재권 분쟁 흐름에 결정적 쐐기를 박은 작년 8월 결정이 나옴에 따라 웨스팅하우스의 '대리 신고' 없이는 한국의 체코 원전 수출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이후 협상 지형은 2025년 3월로 정해진 계약 시한에 쫓기는 한수원과 한국 정부 측에 크게 불리해졌다.
한수원·한전은 결국 협상 끝에 지난 1월 웨스팅하우스에 원전 1기 수출마다 1조원이 넘는 규모의 물품·용역 구매 계약 및 로열티를 제공하고, 유럽 등 선진 시장 독자 진출을 포기하는 등의 내용이 담긴 기본 유효기간 50년짜리 합의문에 서명했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 정부의 판정이 있어 사실상 수출 통제 협조를 받지 않고는 (제3국에) 수출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었다"며 "미국 측 입장이 워낙 강경했고, 수출 통제를 무기화하다 보니 (우리) 국민 눈높이에서 미흡한 부분들이 많이 좀 있었다"고 말했다.
한수원과 한전 이사회는 앞서 작년 11월 이사회에서 이런 내용의 합의문에 서명하기로 결정했다.
양사의 결정은 당시 정부와 긴밀한 소통과 공감대 속에서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한수원·한전과 웨스팅하우스의 합의 타결 직전인 지난 1월 8일 한국 산업통상자원부와 미 에너지부는 '한미 원자력 수출 및 협력 원칙에 관한 기관 간 약정'에 서명한다.
약정은 한미 양국이 철저한 비확산을 전제로 양국 기업이 세계 원전 시장에 함께 진출하는 것을 독려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를 두고 한미 양국이 미국의 기술 주도권 인정을 전제로 한미 양국 기업 대립을 뒤로 하고 '팀 코러스'(KORUS·KOR-US) 차원 협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정치적 여건 조성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 바 있다.
이와 관련해 당시 정부와 한수원·한전은 자국 우선주의 성향이 강한 트럼프 2기 행정부 공식 출범 이전에 미국 기술 주도권을 인정하는 범위에서라도 한미 원전 협력 틀을 마련하는 편이 낫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올해 집권 이후 웨스팅하우스와 합의를 '불공정 합의'로 규정하고 강력히 비판해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여당 내부서는 미국이 절대적 주도권을 갖는 원자력 통제 체제의 특수성과 전반적 한미 관계의 안정을 고려해 합의 파기·재협상 주장보다는 '전 정권 사태 수습'의 중요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커지고 있다.
현 정부도 한미 관계의 민감성 측면에서 이 문제를 실용적 차원에서 다루겠다는 기류가 강하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지난 13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어떤 계약이든 아쉬운 부분이 있고, 불가피한 양면성을 다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웨스팅하우스와 관련된 여러 논란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온 것이 우리 수출의 역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전 정부와 한수원이 과거 중요 정보를 숨기고 체코 원전 수출을 전후로 '장밋빛 전망' 위주로 부각한 것에 관한 비판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허성무 의원은 "24년 8월 미국 에너지부의 기술 검증 결과 발표는 이번 웨스팅하우스 굴욕 협약의 핵심 사건임에도 산업부, 한수원, 한전 모두 꼭꼭 숨겨왔다"며 "산업부, 한전, 한수원이 입을 다물게 한 실체가 윤석열 전 대통령인지 대통령실인지 이번 국정감사에서 그 실체를 밝히겠다"고 말했다
cha@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