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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이나 특정 국가를 비방하는 표현이 담긴 정당 현수막이 난립하면서 현수막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1일 국무회의에서 각 정당의 현수막이 혐오를 부추기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이에 대한 대책을 주문하면서 정부는 가이드라인 마련에 나섰다.
◇ 상반기 현수막 민원 1만8천16건 접수…"위치 부적절·민망한 내용"
16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전국에서 정당 현수막에 대한 민원이 온오프라인으로 총 1만8천16건 접수됐다.
서울과 경기에서 발생한 민원이 각각 26.5%(4천782건), 26.3%(4천744건)로 많은 편이었다. 민원 접수 등을 바탕으로 각 시도가 정비한 정당 현수막은 올해 상반기에만 5만2천650건에 달한다.
행안부 관계자는 '현수막 위치가 부적절하다', '내용이 아이들 보기에 민망하다', '도로 교통상 위험하다' 등의 신고가 안전신문고 등을 통해 접수됐다고 전했다.
실제로 최근 전국 곳곳에서 확인되지 않은 사실로 정치인을 비방하거나, 근거 없는 의혹을 확산하는 내용의 정당 현수막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지난달 경주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중국 혐오를 유발하는 현수막이 무분별하게 게시되면서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윤호중 행안부 장관은 지난 11일 국무회의에서 "혐오 현수막 문제가 심각하다"며 "정당 현수막은 옥외광고물법뿐만 아니라 정당법에 의해 허용되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한 법률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자체장을 해보니 현수막이 정말 동네를 지저분하게 만든다. 정당이라고 현수막을 아무데나 달게 하는 게 맞는 건지 모르겠다"며 "(옥외광고물법 개정안은) 물론 제가 당대표로 있을 때 만든 것 같긴한데, 이렇게 악용이 심하게 되면 (법을) 개정하든지 없애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정당이 국고보조금을 받으면서 현수막까지 동네에 너저분하게 걸 수 있게 하고 있는데, 일종의 특혜 법이 될 수도 있다"며 "옛날대로 돌아가는 방안을 정당과 협의를 해달라"고 지시했다.
정당 현수막을 2022년 5월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한 옥외광고물법 개정안이 같은 해 12월 시행되면서 정당명과 연락처 등을 기재하기만 하면 거의 제한 없이 게시할 수 있게 됐다. 이에 일각에서는 현수막을 달기 위해 정당을 만든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 헌법학자들 "정당에 특혜 준 현행법 문제"…"객관적 기준으로 제한"
행안부는 일단 '인종차별 또는 성차별적 내용으로 인권침해의 우려'가 있는 현수막을 금지하는 현행법을 근거로 금지광고물 적용 가이드라인을 제작해 각 지방정부에 배포할 예정이다.
하지만 정치권 안팎에서는 '인권침해'라는 판단 기준이 모호해 실질적 대응이 어렵다며 옥외광고물법과 정당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현행 옥외광고물법은 정당법에 따라 통상적인 정당 활동으로 보장되는 정당의 정책이나 정치적 현안에 대한 광고물을 표시·설치하는 경우에는 허가·신고 및 금지·제한에 관한 규정을 적용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만 '인권 침해 우려'가 있는 경우엔 현수막 설치를 금지할 수 있다.
위성곤 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옥외광고물법 개정안은 '특정 인종·국적·종교·성별 등 특정 집단에 대한 편견이나 증오를 조장 또는 선동하는 것'을 금지 규정으로 구체화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현수막을 달기 위해 정당을 만드는 주객전도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만큼, 현수막을 게시할 수 있는 정당을 원내정당으로 한정하는 등 요건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전문가들은 정당 현수막 규제 강화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객관적 기준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처럼 디테일을 제대로 챙겨야 (제한의) 정당성 여부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 교수는 "정당 현수막을 제한하는 객관적 기준을 세워야 하고, 국민이 그 기준을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며 "객관적, 합리적 근거 없이 특정 민족이나 국가, 지역에 대한 반감을 무조건 드러내는 것은 일종의 혐오표현으로 보고 제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다만 그는 현수막을 게시할 수 있는 정당을 한정하자는 주장에 대해서는 "헌법상 정당의 자유와 평등은 인정된다. (군소정당에 대한 제한을 강화하면) 기득권을 깨뜨릴 방법 자체가 없어질 것"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험오표현을 판단하는 기준은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정한 내용을 참고하면 될 것"이라며 "다만 정치인에 대한 비방은 모욕죄나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는 한 직접 규제할 근거는 없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정당이 현수막을 제한 없이 걸 수 있도록 특혜를 준 현행법이 문제"라며 "정당이든 누구든 현수막을 걸기 위해서는 지자체의 심의를 거치도록 해야 한다. 이는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도시 미관, 도로 교통, 안전을 고려한 조치로 개입의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dindong@yna.co.kr
<연합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