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돋보기] AI가 떠먹여 준 공부, 내 실력 아니었다

기사입력 2026-01-31 08:23

(EPA=연합뉴스)
[연합뉴스 자료사진]
[연합뉴스 자료사진]
(AP=연합뉴스)
(EPA=연합뉴스)

"수학 문제를 풀 때 계산기를 쓰면 답은 빠르게 얻지만, 계산기가 없으면 쉬운 덧셈도 어려워진다."

우리가 익히 아는 이 '계산기의 역설'이 인공지능(AI) 시대에 더 강력한 형태로 되살아나고 있다.

생성형 AI가 학생들의 단기 성적을 폭발적으로 끌어올리지만, 정작 AI를 끄는 순간 문제 해결력은 사용 전보다도 떨어지는 현상이 국제기구 분석에서 확인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최근 발표한 '디지털 교육 전망 2026' 보고서에서 이 같은 'AI 학습의 역설'을 지적하며, 전 세계 교육 현장에 신중한 접근을 주문했다.

◇ "AI 끄자 성적 곤두박질"…충격적 실험 결과

보고서가 핵심 근거로 인용한 것은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와튼스쿨) 연구팀이 튀르키예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진행한 대규모 실증 실험이다.

연구팀은 2023∼2024학년 동안 수학·관련 과목을 듣는 고등학생 1천여 명을 무작위로 나눠, 최신 생성형 모델 GPT-4를 학습 보조 도구로 제공하고 성취 변화를 정밀 추적했다는 취지로 보고서는 설명한다.

결과는 극적이었다.

일반 챗봇처럼 질문하고 바로 답을 얻는 인터페이스를 쓴 그룹은 AI를 쓰지 않은 통제 그룹에 비해 실전형 문제 풀이 점수가 평균 약 48% 높게 나왔다.

정답 대신 단계별 힌트를 제공하도록 설계된 '튜터형' GPT-4를 쓴 그룹은 같은 조건의 학생들보다 성과가 최대 127%까지 향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반전은 그다음이었다.

일정 기간 후 AI 사용을 차단하고 똑같은 유형의 시험을 치르게 하자, GPT-4에 의존했던 학생들의 점수는 AI 없이 공부해 온 학생들보다 평균 약 17%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OECD는 이 데이터에 대해 "AI가 단기 성과는 극대화하지만, 학습 과정을 일정 부분 대체해 버림으로써 장기적인 문제 해결력과 전이 능력이 훼손될 위험이 있다는 증거"라며 "성적표상 점수는 올랐지만 실제 인간의 지적 능력은 오히려 약화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 생각의 외주화가 부른 '거짓된 숙달'

이런 현상의 원인으로 OECD는 '인지적 외주화'와 '학습의 착시'를 지목했다.

학생들이 AI를 지식 확장의 도구가 아닌 사고 과정의 대체재로 활용하면서, 겉으로 드러난 성과와 실제 이해·문제 전이 능력 사이에 괴리가 커졌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고품질의 AI 답변이 '거짓된 숙달의 신기루'를 만든다"고 지적한다.

AI가 친절하게 답을 떠먹여 주는 동안 학생의 뇌는 진단·탐색·전략 수립 같은 필수적인 인지 근육을 거의 쓰지 않게 되고, 그 결과 스스로 깊이 이해했다고 착각하는 '거짓된 숙달'에 빠지기 쉽다는 설명이다.

내비게이션에만 의존하다 길 찾는 감각을 잃는 것과 마찬가지로, 교실 내에서도 '디지털 의존증'이 심화하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OECD는 "AI가 즉각적인 피드백을 줄 때 학생은 자신이 내용을 충분히 이해했다고 착각하기 쉽다"며 "과제를 완수했다고 해서 곧바로 학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며, AI가 유능해질수록 진짜 학습 경험은 교실 밖으로 밀려날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 교사 37%가 AI 활용…주도권은 누가 쥐나

문제는 학생뿐만이 아니다. 교사들의 AI 의존도 역시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OECD의 '교수·학습 국제조사(TALIS) 2024' 예비 결과에 따르면 회원국 중등 교사의 약 36∼37%가 지난 1년간 수업 준비나 업무에 AI를 활용했다고 응답했으며, 일부 도시권·기술 선도국에서는 이 비율이 60∼70% 안팎까지 올라가는 사례도 보고됐다.

교재 검색이나 단순 자료 정리 등 행정 업무 효율화 측면에서는 분명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

하지만 OECD는 "AI가 교육과정 설계나 평가 같은 교사의 핵심 전문 영역까지 깊숙이 개입할 경우 교사는 알고리즘이 짠 시나리오를 읊는 단순 '집행자'로 전락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AI가 추천하는 커리큘럼을 비판 없이 수용하면 교실의 실질적 주도권이 인간 교사에서 알고리즘으로 넘어가고 학생 개개인의 정서·맥락을 살피는 교육의 본질이 훼손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보고서는 교사와 학생 모두 '하이브리드 휴먼-AI 스킬'을 필수 역량으로 길러야 한다고 제언한다.

OECD는 이 개념을 "AI 산출물을 그대로 믿지 않고, 언제·어떤 방식으로 활용할지 비판적으로 검증·선택하는 메타 인지·비판적 사고 능력"으로 설명한다.

다시 말해 AI 사용 여부 자체가 아니라, AI와 인간의 역할을 어떻게 나누고 조율하느냐가 새로운 교육 목표가 돼야 한다는 메시지다.

◇ 값싼 AI 튜터의 함정…교육 불평등의 새 뇌관

AI 도입이 교육 격차를 해소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에도 제동이 걸렸다.

보고서는 "디지털 격차가 단순히 기기·접속 격차를 넘어 고급형 AI와 고품질 교사 지도에 접근할 수 있는지 여부로 이동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부유한 계층은 유능한 인간 교사와 고급형 AI를 병행해 깊이 있는 사고법을 배우겠지만, 저소득층 학생은 정답만 빠르게 제시하는 저가형 AI 튜터에 의존할 위험이 크다는 분석이다.


당장의 시험 점수 격차는 줄어들지 몰라도 복잡한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진짜 실력'의 격차는 오히려 벌어질 수 있으며 이는 장기적으로 노동시장의 경쟁력 차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다.

OECD는 "AI가 단순한 '정답 자판기'로 소비되는 환경을 방치하면, 디지털·정보 격차가 구조적으로 심화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즉 '값싼 AI 튜터'에 의존하는 학습 문화가 굳어지면 생각하는 법을 배우는 교육의 본령이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다.

◇ "AI는 보조 바퀴일 뿐, 걷는 건 사람의 몫"

결론적으로 OECD는 "디지털 기술에 대한 투자가 곧장 학업 성취 향상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핵심 질문은 "AI를 얼마나 많이 쓰느냐"가 아니라 "AI를 끄고도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라는 데 있다는 것이다.

학생이 고민하고 헤매는 '지적 고통'의 시간을 통째로 삭제해 버리는 방식의 AI 활용은 당장은 편리할지 몰라도 인간의 생각하는 힘을 갉아먹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

보고서는 "AI는 훌륭한 보조 바퀴가 될 수 있지만 평생 보조 바퀴를 단 채로 달릴 수는 없다"며 "생각하고 판단하는 힘인 '휴먼 인텔리전스'를 지키는 것이 AI 시대 교육의 제1 과제"라는 취지로 강조한다.

AI라는 가장 똑똑한 도구를 손에 쥐고도 우리가 사고력과 비판적 판단력을 잃어버린다면 교육은 '디지털 혁신'이 아니라 지성의 퇴보라는 역설을 맞이하게 될 수 있다는 점이 이번 보고서가 던지는 경고의 핵심이다.

president21@yna.co.kr

<연합뉴스>

Copyright (c) 스포츠조선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Copyright (c) 스포츠조선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당신이 좋아할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