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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에서 중도(中道)가 실종되면 국가의 무게 중심이 흔들린다. 역사는 이를 여러 번 보여줬다.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 말기 의회는 존재했지만, 타협은 불가능했다. 진영 내 이른바 '열심당원'은 협상과 양보를 배신으로 간주했다. 지도자들은 국가 전체보다 진영 내 정서를 먼저 관리해야 했다. 해방 직후 대한민국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좌우파의 극한 대립 속에 중간 지대는 설 자리를 잃었다. 타협을 시도한 정치인은 양쪽에서 배제됐다.
이 같은 현상을 놓고 누구는 민주주의의 심화, 즉 당원이 주인이 되는 과정이라고 역설한다. 반대 쪽에선 숙의와 절제가 밀려나면서 나타나는 포퓰리즘의 징후라고 본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군중의 감정이 이성과 규범을 무력화하는 중우정치(衆愚政治)의 징후로 읽으려는 관점도 있다. 어느 게 맞는지 단정하기 어렵다. 다만 이들의 주장에서 공통점은 찾아볼 수 있다. 정치가 전체 유권자 대신 결집된 소수를 향할수록 언어는 거칠어지고, 선택의 폭은 좁아진다는 사실이다.
현대 정치에서 열성 당원이 많다는 사실 자체를 문제 삼을 이유는 없다. 당원은 정당의 생명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 내부의 열기를 바깥으로 확산시키지 못한다면 울림은 안에서만 맴돌게 될 뿐이다. 당 지도부가 해야 할 일은 지지의 강도만 높이는 게 아니라, 지지의 폭도 넓혀야 하는 것이다. 당심이 강경파의 요구에 잠식되는 순간, 정당은 스스로 확장의 길을 잃어버린다. 정치는 결국 더 많은 사람의 마음을 얻어내야 승리하는 싸움이다.
<연합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