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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가관광전략회의에서는 각종 관광 활성화 대책이 쏟아졌다.
그 가운데 눈길을 끈 대목은 민속 마을과 사찰 등을 활용한 한국형 '파라도르' 모델 육성 방안이다.
내심 다행이다 싶었지만 10여 년 전 추진됐던 '궁 스테이' 사업이 떠올라 걱정 반 기대 반이 됐다.
당시에도 문화재를 고급 숙박 시설로 활용하자는 논의가 있었지만, 규제와 이해관계의 벽을 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스페인의 파라도르는 1928년 국왕 알폰소 13세와 정부가 주도해 출범한 국영 호텔 체인이다.
중세 성채와 수도원, 궁궐, 역사적 건축물을 호텔로 전환해 국가 차원의 관광 전략으로 키웠다.
객실 상당수가 문화유산 구역 안에 있으며, 일부는 세계유산에 포함된다.
문화재를 단순히 보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체류형 관광 자산으로 재해석한 모범 사례다.
기자는 파라도르를 여러 차례 경험했다.
겨울 비수기에 묵었던 톨레도 파라도르는 절벽 위에 있어 도시 전경이 내려다보였다.
역사적 공간이 현재를 살아가는 관광객과 만나는 감동을 주는 공간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또 다른 한 곳은 마드리드 인근 알칼라 데 에나레스에 자리한 파라도르다.
이곳은 17세기 도미니코회 수도원이었던 산토 토마스 데 아키노 수도원을 복원해 조성한 국영 호텔이다.
이 도시는 '돈키호테'의 작가 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출생지로, 중세 대학 도시의 전통을 간직한 역사 지구 전체가 세계유산이다.
회랑을 중심으로 한 전형적인 수도원 구조를 갖춘 이곳은 교정 시설 등으로 쓰였으나 오랜 기간 방치됐다.
이를 복원해 호텔로 전환하면서 두꺼운 석조 벽과 아치형 구조는 보존하고, 내부는 절제된 현대적 디자인으로 재구성했다.
과거의 종교 공간이 현대 숙박 공간으로 탈바꿈한 셈이다.
이러한 매력 덕분일까. 스페인은 지난해 컨슈머 인사이트 조사 결과 한국인 해외여행 만족도 1위로 올라섰다.
그러나 스페인 전역의 파라도르는 숫자가 한정돼 있어 한국인 단체여행객은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곳이 되어버렸다.
문화유산을 되살린 고급 숙박 모델은 스페인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일본은 전통 가옥을 숙박시설로 전환하는 분산형 호텔 전략을 확장해 왔다.
교토의 전통 가옥을 활용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영국 역시 성과 저택을 보존·운영하면서 일부를 숙박 공간으로 개방하고, 그 수익을 보존 재원으로 환원한다.
◇ 10년 전 실패 사례 되짚어 봐야
한국에서도 시도는 있었다.
2015년 박근혜 정부 당시 창덕궁 낙선재 권역 일부 전각에서 숙박 체험을 허용하는 '궁 스테이' 추진 계획이 발표됐고, 고궁과 서원, 향교, 옛 관아를 묶는 통합 브랜드 구상도 제시됐다.
그러나 문화재 훼손 우려와 상징성 문제로 논란이 커졌고, 이 계획은 결국 동력을 잃고 이듬해인 2016년 폐기됐다.
숭례문 화재 이후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던 점도 영향을 미쳤다.
당시 반대 논리는 강경했다. 조선왕조의 역사성과 정신적 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였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당시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결산심사에서 궁 스테이에 대한 의원들의 문제 제기가 계속돼 사업을 완전히 철회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반면 문화재를 일상에서 활용해야 오히려 유지·관리 측면에서 도움이 된다는 주장도 있었다.
사람이 살지 않는 고택은 환기와 관리가 어려워 더 빨리 낡는다는 현실론이다.
결국 핵심은 '상업화' 여부가 아니다. 운영 구조와 철학의 문제다.
관광 전문가들은 문화재를 활용한 숙박시설 고급화에는 지금과는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첫째, 운영 주체의 일원화와 책임 구조가 분명해야 한다.
스페인은 국영 체인이라는 통합 관리 체계를 갖췄다.
한국은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민간이 혼재할 경우 책임과 권한이 분산될 가능성이 있어 확실한 추진 기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둘째, 수익의 환원 구조가 투명해야 한다.
숙박 수익이 문화재 보존과 지역사회에 재투자된다는 확신이 있어야 사회적 합의가 가능하다.
셋째, 고급화의 기준을 재정립해야 한다.
단순히 가격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해설·전통음식·지역 스토리텔링을 결합한 체험 설계가 필요하다.
한국에는 이미 템플스테이, 한옥스테이, 고택 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존재한다.
그러나 브랜드와 품질 관리 체계가 통합되지 못한 채 흩어져 있다.
한국형 파라도르가 주체가 돼 이 자산들을 전략적으로 묶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 '궁 스테이' 막힌 한국 관광객, 스페인 파라도르에 줄 서
관광은 이제 '보고 즐기는 산업'에서 '머무는 산업'으로 변화하고 있다.
체류형·고부가가치 모델로 전환하지 못하면 한국 관광은 가격 경쟁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최근 크리에이트립 조사에 따르면 외국인 관광객 10명 중 8명이 재방문 의향을 밝혔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다시 찾은 여행자에게 광장시장 떡볶이와 피부과 시술만을 반복해 제시할 수는 없다.
떡볶이와 비빔밥이 한국을 대표하는 일상적 매력이라면, 이제는 그 너머의 무언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 관광업계의 시각이다.
선재스님의 정갈한 사찰 음식, 고품격 숙박 시설에서의 하룻밤처럼 시간과 공간의 밀도를 체험하는 콘텐츠가 필요하다.
그 경험이 문화유산의 수명을 연장하고, 지역 경제에 기여하게 된다.
당시 궁 스테이를 추진했던 박강섭 서울관광재단 이사장은 "궁의 중요문화재를 제외한 별채 등에서 숙박을 하는 것은 외국인들에게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며 "아울러 수문장 교대식에 참여하고 궁중음식을 만들어 보는 등 조선시대 왕궁으로 떠나는 '타임슬립' 여행상품을 만든다면 외국인 관광객 유치에 상징적 도움이 될 것"이라며 기대를 나타냈다.
polpori@yna.co.kr
<연합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