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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 소림사에 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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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승재는 지난 21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엑스포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우슈 남자 투로 도술·곤술 부문에 출전해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전날 치른 도술 부문 투로에서 9.72점을 받았고, 이튿날 곤술에서 9.73을 받아 총점 19.45로 중국의 우자오화(19.52)에 0.07점 뒤져 아깝게 2위에 그쳤다. 그래도 충분히 박수를 받을 만한 성과다. 한국 우슈의 대회 첫 메달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집요한 면이 있었다. 조승재는 이소룡이 나온 영화를 모두 섭렵했다. 다음으로는 성룡, 그 후에는 이연걸 차례로 넘어갔다. 그들의 모든 영화를 전부 본 뒤 결심했다. "나도 소림사에서 무술을 배워야겠다." 당시까지만 해도 무술을 배워 국가대표가 되겠다는 생각은 건 없었다. 그저 영화에 나오듯이 힘든 수련을 통해 절대고수, 영웅이 되는 게 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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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승재의 어머니 황임숙씨도 보통은 아니었던 듯 하다. 8살 짜리 소년이 대뜸 '소림사로 가겠다'고 하는 걸 받아줄 부모가 몇이나 될까. 물론 조승재가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꿈을 키워온 것도 있지만, 어머니 역시 어린 소년의 확고한 의지를 인정해줬다. 결국 조승재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그토록 꿈꾸던 무술의 길에 입문한다. 과정도 파격적이다. 집 근처가 아니라 아예 대구로 유학을 떠났다.
조승재는 "어머니가 우슈 체육관을 알아봐 주셨는데, 그게 대구에 있었어요. 당시 서울 고덕동에 살았는데, 어쩔 수 없이 대구에 내려가 하숙 생활을 시작했죠"라며 옛 추억을 떠올렸다.
오로지 우슈만을 배우기 위해 대구로 내려간 조승재는 거기서 하숙생활을 하며 학업과 운동을 병행했다. 그리고 1년 반. 여기서 또 하나의 인연이 이어진다. 중국 무술 유학의 길이 열린 것이다. "그때 수련하던 체육관에 중국에서 오신 사부님이 계셨어요. 그 분이 이제 중국으로 돌아가시는 길에 따라가게 된 거죠." 결국 조승재는 초등학교 5학년부터 고교 졸업까지 무려 8년간 중국 베이징에서 무술을 익혔다. 비록 어릴 때 꿈꾸던 '소림사'는 아니었어도, 베이징 최고의 무술학교에서 수련하며 꿈을 키워가게 된다. 대단한 열정이 아닐 수 없다.
흥미로운 건 이 학교가 바로 어린 시절 조승재를 무림으로 인도한 세 명의 영웅 중 하나인 '이연걸'의 출신학교, '베이징 스사해 체육운동학교'였던 것. 말하자면 이연걸이 조승재의 동문 대선배인 것이다. 무협의 용어를 빌려오자면 이연걸과 조승재는 '사조(師祖)-사손(師孫)' 관계라고 볼 수 있다. 이 정도면 '소림사 유학'에 못지 않은 엘리트 코스인 셈이다.
▶끝내 떨쳐내지 못한 아쉬움, 그리고 텃세
유학 수련을 마친 조승재는 한국으로 돌아와 청소년 국가대표부터 시작해 한국 우슈 도술·곤술 부분의 에이스로 이름을 날렸다. 하지만 4년 전 인천 아시안게임 때는 대표팀에 발탁되지 못했다. 여러 시련이 한꺼번에 왔는데, 대표적으로는 선발전에서 도술 투로를 펼치다 칼이 부러진 것이다. 큰 감점 요인이었다. 이것으로 조승재의 '아시안게임 금메달' 꿈은 한번 꺾인다.
조승재는 이 일이 있은 후 한 동안 '은거'했다. "탈락 이후 너무 속상해서 방안에만 틀어박혀 있었어요. 하지만 주위에서 계속 용기도 주시고, 또 다른 경기 일정도 계속 있어서, 금세 털고 운동만했어요. 일정에 따라서 준비하고 대회를 나가고 하면서 나쁜 기억을 잊을 수 있었죠."
그렇게 다시 일어선 조승재는 이번 아시안게임에 큰 기대를 걸었다. 금메달을 따면 병역 혜택을 얻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쉽지 않겠다는 생각도 했다. 워낙 우슈 종주국 중국 텃세가 워낙 강한데다 심판진도 거의 중국인들로 채워진 탓이다. 그래도 완벽한 도법과 곤법을 선보이면 금메달을 기대해볼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이어갔다.
실제로 조승재는 완벽한 기술을 펼쳤다. 도술과 곤술에서 각각 동작질량(5.0)과 난도(2.0) 만점을 받은 것. 하지만 변수가 있었다. 여기에 '연기력'에 대한 평가항목이 있었다. 이는 심판의 주관에 따라 다르게 평가될 수 있는 매우 미묘한 부분이다. 조승재는 도술과 곤술 연기부문에서 각 2.72와 2.73을 받았다. 그러나 우자오화는 미세하게 더 좋은 점수를 받았다. 결국 이게 0.07점차 패배의 원인이다.
조승재는 "연습해 온 대로 기술은 제대로 펼쳤는데, 연기력 부문은 명확한 기준이 없는 것이라 많이 아쉬워요. 은메달도 기뻤지만, 그 부분에서 진 게 너무 아쉬웠어요. 그래도 심판의 판정은 존중해야죠"라며 아쉬움을 삼켰다.
이것으로 조승재의 아시안게임은 사실상 막을 내렸다. 조승재는 이제 입대를 앞두고 있다. 제대 후에는? 아직은 명확한 계획은 없다. 하지만 무술의 길에 끝이란 없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그랬던 것처럼 계속 정진할 것이다. 어쩌면 다음 아시안게임에서 조승재의 모습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진정한 고수는 나이가 들수록 내공이 깊어지는 법이니까.
자카르타(인도네시아)=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AG은메달리스트' 조승재의 도법 수련 엿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