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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 비하인드]"엄마, 나 소림사갈래" 은메달로 이어진 '쿵푸키드'의 꿈

이원만 기자

기사입력 2018-08-22 15:59 | 최종수정 2018-08-23 01:44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 우슈 투로 도술/곤술 부문에서 은메달을 따낸 조승재(28)가 은메달 소감을 밝히고 있다. 자카르타(인도네시아)=이원만 기자wman@sportschosun.com

"엄마, 나 소림사에 갈래."

어느 날 갑자기 8살 짜리 소년이 엄마에게 말했다. "무술 배워야 해요. 그러니까 소림사에 보내주세요." 어머니는 적잖이 당황했으리라. 왜 아니겠는가. 뜬금없이 '소림사'라니. 아니 그보다 대체 8살 꼬맹이는 그 단어를 어떻게 알았을까.

하지만 8세 소년 조승재의 이 엉뚱한 말을 어머니 황임숙(58)씨는 그냥 무시하지 않았다. 단번에 "그래"라고 한 건 아니지만, 그 후로도 1년 넘게 소림사 얘기를 하자 아들이 진짜 원하는 길이라는 것을 인정했다. 그 후로는 전폭적인 지지자가 되었다. 그 덕분에 조승재는 일찍부터 '무예의 길'에 정진할 수 있었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우슈의 첫 메달리스트(은메달)가 된 조승재(28·충북개발공사)의 '강호행'은 이렇게 시작된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 우슈 투로 도술-곤술 부문에서 은메달을 따낸 조승재(맨오른쪽)가 투로 남권-남곤 부문 동메달리스트 이용문과 함께 배경희 우슈 아시아기술위원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조승재
▶이소룡 성룡 이연걸…쿵푸에 푹 빠진 아이

조승재는 지난 21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엑스포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우슈 남자 투로 도술·곤술 부문에 출전해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전날 치른 도술 부문 투로에서 9.72점을 받았고, 이튿날 곤술에서 9.73을 받아 총점 19.45로 중국의 우자오화(19.52)에 0.07점 뒤져 아깝게 2위에 그쳤다. 그래도 충분히 박수를 받을 만한 성과다. 한국 우슈의 대회 첫 메달이었다.

값진 성과는 하루아침에 이뤄진 게 아니다. 무려 20년의 내공이 담긴 결과다. 조승재가 우슈에 첫 발을 내딛은 건 초등학교 1학년 무렵. 뜻밖에도 '쿵푸 영화'가 은메달까지 이어진 장도의 출발점이었다. 조승재는 "동네 비디오 대여점에서 우연히 이소룡 영화를 빌려봤어요. 나중에야 그게 '맹룡과강'이라는 걸 알았는데, 한번 보자마자 액션에 푹 빠졌죠."

어린 시절부터 집요한 면이 있었다. 조승재는 이소룡이 나온 영화를 모두 섭렵했다. 다음으로는 성룡, 그 후에는 이연걸 차례로 넘어갔다. 그들의 모든 영화를 전부 본 뒤 결심했다. "나도 소림사에서 무술을 배워야겠다." 당시까지만 해도 무술을 배워 국가대표가 되겠다는 생각은 건 없었다. 그저 영화에 나오듯이 힘든 수련을 통해 절대고수, 영웅이 되는 게 꿈이었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 우슈 투로 도술-곤술 부문에서 은메달을 따낸 조승재(28·충북개발공사)가 빛나는 은메달을 자랑스럽게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제공=조승재
▶어머니의 후원, 그리고 이어진 인연


조승재의 어머니 황임숙씨도 보통은 아니었던 듯 하다. 8살 짜리 소년이 대뜸 '소림사로 가겠다'고 하는 걸 받아줄 부모가 몇이나 될까. 물론 조승재가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꿈을 키워온 것도 있지만, 어머니 역시 어린 소년의 확고한 의지를 인정해줬다. 결국 조승재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그토록 꿈꾸던 무술의 길에 입문한다. 과정도 파격적이다. 집 근처가 아니라 아예 대구로 유학을 떠났다.

조승재는 "어머니가 우슈 체육관을 알아봐 주셨는데, 그게 대구에 있었어요. 당시 서울 고덕동에 살았는데, 어쩔 수 없이 대구에 내려가 하숙 생활을 시작했죠"라며 옛 추억을 떠올렸다.

오로지 우슈만을 배우기 위해 대구로 내려간 조승재는 거기서 하숙생활을 하며 학업과 운동을 병행했다. 그리고 1년 반. 여기서 또 하나의 인연이 이어진다. 중국 무술 유학의 길이 열린 것이다. "그때 수련하던 체육관에 중국에서 오신 사부님이 계셨어요. 그 분이 이제 중국으로 돌아가시는 길에 따라가게 된 거죠." 결국 조승재는 초등학교 5학년부터 고교 졸업까지 무려 8년간 중국 베이징에서 무술을 익혔다. 비록 어릴 때 꿈꾸던 '소림사'는 아니었어도, 베이징 최고의 무술학교에서 수련하며 꿈을 키워가게 된다. 대단한 열정이 아닐 수 없다.

흥미로운 건 이 학교가 바로 어린 시절 조승재를 무림으로 인도한 세 명의 영웅 중 하나인 '이연걸'의 출신학교, '베이징 스사해 체육운동학교'였던 것. 말하자면 이연걸이 조승재의 동문 대선배인 것이다. 무협의 용어를 빌려오자면 이연걸과 조승재는 '사조(師祖)-사손(師孫)' 관계라고 볼 수 있다. 이 정도면 '소림사 유학'에 못지 않은 엘리트 코스인 셈이다.

▶끝내 떨쳐내지 못한 아쉬움, 그리고 텃세

유학 수련을 마친 조승재는 한국으로 돌아와 청소년 국가대표부터 시작해 한국 우슈 도술·곤술 부분의 에이스로 이름을 날렸다. 하지만 4년 전 인천 아시안게임 때는 대표팀에 발탁되지 못했다. 여러 시련이 한꺼번에 왔는데, 대표적으로는 선발전에서 도술 투로를 펼치다 칼이 부러진 것이다. 큰 감점 요인이었다. 이것으로 조승재의 '아시안게임 금메달' 꿈은 한번 꺾인다.

조승재는 이 일이 있은 후 한 동안 '은거'했다. "탈락 이후 너무 속상해서 방안에만 틀어박혀 있었어요. 하지만 주위에서 계속 용기도 주시고, 또 다른 경기 일정도 계속 있어서, 금세 털고 운동만했어요. 일정에 따라서 준비하고 대회를 나가고 하면서 나쁜 기억을 잊을 수 있었죠."

그렇게 다시 일어선 조승재는 이번 아시안게임에 큰 기대를 걸었다. 금메달을 따면 병역 혜택을 얻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쉽지 않겠다는 생각도 했다. 워낙 우슈 종주국 중국 텃세가 워낙 강한데다 심판진도 거의 중국인들로 채워진 탓이다. 그래도 완벽한 도법과 곤법을 선보이면 금메달을 기대해볼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이어갔다.

실제로 조승재는 완벽한 기술을 펼쳤다. 도술과 곤술에서 각각 동작질량(5.0)과 난도(2.0) 만점을 받은 것. 하지만 변수가 있었다. 여기에 '연기력'에 대한 평가항목이 있었다. 이는 심판의 주관에 따라 다르게 평가될 수 있는 매우 미묘한 부분이다. 조승재는 도술과 곤술 연기부문에서 각 2.72와 2.73을 받았다. 그러나 우자오화는 미세하게 더 좋은 점수를 받았다. 결국 이게 0.07점차 패배의 원인이다.

조승재는 "연습해 온 대로 기술은 제대로 펼쳤는데, 연기력 부문은 명확한 기준이 없는 것이라 많이 아쉬워요. 은메달도 기뻤지만, 그 부분에서 진 게 너무 아쉬웠어요. 그래도 심판의 판정은 존중해야죠"라며 아쉬움을 삼켰다.

이것으로 조승재의 아시안게임은 사실상 막을 내렸다. 조승재는 이제 입대를 앞두고 있다. 제대 후에는? 아직은 명확한 계획은 없다. 하지만 무술의 길에 끝이란 없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그랬던 것처럼 계속 정진할 것이다. 어쩌면 다음 아시안게임에서 조승재의 모습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진정한 고수는 나이가 들수록 내공이 깊어지는 법이니까.


자카르타(인도네시아)=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AG은메달리스트' 조승재의 도법 수련 엿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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