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쿄=스포츠조선 전영지 기자·도쿄패럴림픽 공동취재단]기적같은 동메달이 확정된 순간 '투혼의 태권청년' 주정훈(27·SK에코플랜트·세계 12위)은 오열했다. 무릎에 얼굴을 묻은 채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벅차오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종주국' 대한민국 태권도를 대표해 '나홀로' 나선 첫 패럴림픽, 부담감이 컸다. 첫 경기를 패한 후 자신감이 떨어졌지만 무너지진 않았다. 모두가 고개를 젓던 패자부활전에서 '내 발을 믿자' '할 수 있다'는 주문을 외우며 끝까지 살아남았다. 기어이 꿈의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패럴림픽 메달은 신이 내리는 것"이라고 했다. 롤러코스터같은 긴 하루를 빛나는 동메달로 마무리한 태권청년은 믹스트존에서 우는 듯 웃었다.
|
주정훈은 1회전부터 작정한 듯 강공으로 나섰다. 3연속 몸통차기에 성공하며 6-0으로 앞서나갔다. 격렬했던 패자 4강 혈투 승리 직후 "내 오른다리는 지금 내 다리가 아니다"라고 했지만 그의 절실한 발차기엔 거침이 없었다. 마음 급한 상대가 머리 부분을 가격하는 위험한 플레이로 감점이 이어지며 8-2로 앞선 채 1회전을 마쳤다. 2회전 초반 한차례 공격을 주고받은 후 신중한 탐색전이 이어졌다. 10-6에서 주정훈의 몸통차기가 2차례 작렬했다. 14-7로 앞선 채 3회전에 돌입했다. 메달이 결정되는 3차전 만신창이가 된 다리로 주정훈은 마지막까지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이살디비로프가 몸통차기로 따라붙었지만 45초를 남기고 주정훈의 3연속 발차기가 맞아들며 24대14 완승을 거뒀다.
주정훈은 태어난 직후 맞벌이하던 부모님 대신 할머니와 함께 지내다 두 살 때 소여물 절단기에 손목을 넣는 끔찍한 사고를 겪었다. 평생 죄책감에 시달리던 할머니는 3년 전부터 치매 투병중이다. 눈에 넣어도 안아플 손자를 알아보지 못한다. 주정훈은 "저를 못알아보신다. 아마 내가 태권도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실 것"이라고 가슴아픈 사연을 털어놨었다. 비범한 재능으로 비장애인 전국대회에서 8강, 4강에 오르며 기대를 모았으나 사춘기 시절 경기장에서 쏟아지는 주변의 시선에 상처를 받고 고등학교 2학년 때 태권도의 꿈을 내려놓았다. 그러나 태권도가 패럴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면서 꿈이 다시 살아났다. 2017년 12월 도복을 다시 입었고 올해 요르단 암만에서 열린 도쿄패럴림픽 아시아 선발전을 1위로 통과, 한국 선수로는 유일하게 도쿄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첫 패럴림픽 무대에서 패자부활 8강, 4강을 모두 이겨내고 결국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경기 직후 인터뷰에서 주정훈은 "이제 상처를 당당히 드러낼 수 있다. 태권도로 돌아오길 잘했다"며 웃었다. 잘자란 청년은 아들의 상처를 평생 가슴아파했던 부모님, 할머니를 오히려 위로했다. "부모님께 자랑스러운 아들이 세계에서 3등 했다. 낳아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부모님도 아들 자랑을 많이 하시면 좋겠다"고 했다. "부모님과 함께 메달을 들고 할머니를 뵈러 갈 것이다. 할머니가 저를 못알아보시더라도 손자가 할머니 집에서 다치긴 했지만 할머니 덕에 이 대회에 나올 수 있었다. 정말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할머니가 제가 자라면서 한탄을 많이 하셨다. 우리 손자 너무 잘 컸는데 나 때문에 이렇게 다쳤다고 자책하셨다. 이젠 그 마음의 짐을 덜어드릴 수 있을 것같다"며 웃었다.
이제 주정훈은 2024년 파리패럴림픽 금메달을 바라본다. "파리패럴림픽 경기장을 미리 찾아봤다. 꼭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대회에서 금메달은 가장 많이 노력한 사람이 가져간다는 것을 깨달았다. 파리에선 저도 1등을 할 수 있도록 죽어라 노력하겠다."
▶재테크 잘하려면? 무료로 보는 금전 사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