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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년 만에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정상에 오른 피겨여왕 김연아가 금의환향했다. 김연아가 20일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하며 신혜숙-류종현 코치와 함께 인사를 하고 있다. 김연아는 캐나다 온타리아주 런던 버드와이저 가든스에서 펼쳐진 2013 피겨스케이팅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쇼트프로그램(69.97점)과 프리스케이팅(148.34점)을 합친 종합 218.31점을 따내며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 당시 본인이 세운 세계신기록 228.56점에 이은 역대 두 번째 기록과 함께 우승을 차지했다. 인천공항=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2013.03.20/ |
그녀는 어깨에 태극기를 둘렀다. 감동이 밀려왔다. 시상대 맨 위에 섰다.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태극기가 올라갔다. 시상대 뒤에서는 외국인 합창단이 한국말로 애국가를 불렀다. 한반도가 감동했다. 전세계 피겨스케이팅 팬들도 전율을 느꼈다. 피겨스케이팅으로 감동을 안겨준 그녀는 '피겨 여제' 김연아였다.
목표는 미셸 콴(미국)이었다. 콴은 꼬마 김연아가 피겨를 시작하던 당시 세계 최고의 선수였다. 김연아는 콴이 1998년 나가노 올림픽에서 은메달, 같은 해 미국 미니애폴리스 세계피겨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을 보면서 꿈을 키워나갔다. 2000년 초등학생 김연아는 미국 전지훈련에서 자신의 우상 콴을 만났다. 당시에는 깜짝 놀라 아무런 말도 못하고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했다. 그래도 마음 속으로는 꿈을 하나 더 꾸었다. '올림픽 금메달을 딴 뒤 콴 언니와 함께 공연해야지.'
지독한 훈련의 결과였다. 김연아는 초등학교 6학년 때 3회전 점프 5종 세트를 마스터했다. 총 6가지 점프 가운데 트리플 악셀을 제외하고는 모두 완벽하게 해냈다. 강도 높은 반복 훈련의 결과였다. 와이어에 몸을 묶고 계속 점프를 했다. 2단 줄넘기 연속 70번도 해냈다. 점프에 성공하지 않으면 집에 가지 않겠다는 각오로 뛰고 또 뛰었다. 하나씩 성공하기 시작한 점프는 어느새 김연아를 주니어 세계 정상의 자리로 인도했다.
아사다 마오
김연아는 2004년 12월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린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라이벌을 만났다. 일본의 아사다 마오였다. 아사다는 12세(2002년) 때 트리플 악셀에 성공했다. 합계 172.25점으로 김연아(137.75점)를 큰 점수 차로 제쳤다. 김연아는 자신의 에세이에서 아사다의 첫인상에 대해 '왜 하필 저 아이가 나랑 같은 시대에 태어났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썼다.
이후 아사다와의 격차는 벌어졌다. 경기력보다는 지원의 차이가 컸다. 아사다는 피겨가 인기 종목이었던 일본의 국가적인 지원을 받고 있었다. 스폰서도 넘쳤다. 해외 전지훈련에서는 언제나 일등석이었다. 이동할 때도 대형버스를 혼자 타고 다녔다. 반면 김연아는 부모님의 돈으로 어렵게 훈련을 이어나갔다. 캐나다 전지훈련은 힘겨웠다. 민박집에서 기거했다. 비행기 좌석은 언제나 이코노미 클래스였다. 스케이트 부츠 조달도 쉽지않았다. 한 때 선수생활 포기까지 생각했었다.
성인 무대에 들어서면서 격차는 줄어들었다. 2006년 12월 러시아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김연아는 고관절 부상을 딛고 역전극을 펼쳤다. 쇼트프로그램은 3위였지만 프리스케이팅에서 역전쇼를 펼치며 우승을 차지했다. 아사다는 프리스케이팅에서 실수를 연발하며 2위에 머물렀다.
2009년 3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김연아는 확실히 아사다보다 우위에 서게 됐다.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김연아는 207.71점을 기록해 세계 피겨 여자 싱글 역사상 처음으로 200점을 돌파하며 우승했다. 아사다는 188.09점으로 4위에 그쳤다. 세계선수권 시상대 맨 위에서 선 김연아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마지막 목표가 남아 있었다. 바로 올림픽 금메달이었다.
올림픽 금메달
김연아는 13년간 '올림픽 금메달'만 꿈꿨다. '점프의 정석'이 되기까지 1800㎡의 차가운 빙판에서 수만번 뒹굴었다. 13년의 꿈을 이룰 날이 왔다.
2010년 2월 26일. 13년 만에 그녀는 전설이 됐다. 2010년 밴쿠버동계올림픽에서 최정상에 섰다. 소름 돋힌 7분 드라마 끝에 쇼트프로그램, 프리스케이팅 합계 228.56점을 기록, 여자 싱글 사상 최고점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피겨 불모지에서 이룬 올림픽 기적은 한반도는 물론 세계 피겨사를 새롭게 작성했다. 스무살에 이룬 전설이었다. 아사다의 라이벌 김연아는 없었다. 그냥 '피겨 여제' 김연아만이 있었다.
또 다른 선택
'박수 칠 때 떠나라'고 했다. 김연아도 갈림길에 들어섰다. 올림픽 금메달의 꿈을 달성한 후 허탈감이 몰려들었다. 은퇴하기에는 너무 이른 나이였다. 새로운 고민이 시작됐다. 한달 후 이탈리아 토리노세계선수권대회를 준비하면서 정신적인 후유증을 겪었다. 2011~2012시즌 러시아 모스크바세계선수권대회 출전으로 피겨와 인연의 끈을 이어갔다. 아이스쇼에서는 일곱 살때 꿈꾸었던 콴과의 합동공연도 화려하게 마무리했다. 하지만 현역과 은퇴의 사선에서 방황은 계속됐다.
두려웠다. 다시 선수로 돌아가 혹독한 훈련을 이겨낼 수 있을까. '강심장'이라고 하지만 그녀는 빙판에 설 때 늘 긴장했다. 중압감은 상상을 초월했다. 온 국민의 관심과 애정은 더 큰 부담이었다. 후퇴를 결정했다. 2011~2012시즌을 건너 뛰었다. 그랑프리 시리즈는 물론 세계선수권대회에도 불참했다. 김연아가 자리를 비운 세계 피겨계도 덩달아 침체기를 겪었다. 경쟁 선수들도 부진의 늪에서 허우적거렸다.
전설
2012년 7월 2일 김연아는 말문을 열었다. "피겨스케이팅 국가대표 김연아입니다." 현역 복귀를 선언했다. "고된 훈련이 겁이 났다. 대회 출전할 경우 '실수해서 기대에 못미치면 어떻게 하나'는 압박감이 있었다. 모티브를 찾기 힘들었다. 지난 1년간 피겨 후배들과 함께 훈련했다. 동기부여가 됐다. 기대치를 낮추고 자신을 위한 목표로 삼으면 되지 않을까, 생각을 바꾸었다. 지금 은퇴할 경우 후회하고 큰 아쉬움으로 남겠다는 생각을 했다. 벤쿠버 금메달리스트가 아닌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새 출발을 하겠다."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을 새로운 목표로 삼았다.
8개월 후 김연아는 새로운 전설을 썼다. 3월 17일 캐나다 온타리오주 런던에서 열린 2013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218.31점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쇼트프로그램에서는 아쉬움이 있었다. 1위를 했지만 심판들의 잣대가 가혹했다. 프리스케이팅은 무결점이었다. 심판들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2위 코스트너(197.89점), 3위 아사다(196.47)와는 품격이 달랐다. 올시즌 여자 싱글 최고점이다. 지난달 4대륙 선수권대회에서 아사다 마오가 기록한 205.45점과는 비교가 안됐다. 김연아는 전설이었다.
이제 김연아는 새로운 전설에 마침표를 찍으려 한다. 내년 2월 열리는 소치동계올림픽이다. 올림픽 2연패를 노리고 있다. 독일의 카트리나 비트밖에 일구어내지 못한 대위업이다. 김연아는 겸손했다. 세계선수권대회가 끝나도 '2연패'를 입에 올리지는 않았다. 김연아는 "모든 대회에서 잘하고 싶고 모든 대회에서 최선을 다하려 애쓴다"면서 "올림픽도 대회만 올림픽이지 똑같다. 올림픽이라고 더 노력하고 그랑프리라고 덜 노력하고 그런 건 없다. 똑같이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이 건 기자 bbadagun@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