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라클 소치, 응답하라 2014]①이규혁

기사입력 2014-01-27 07:41



'엄마 나 준비됐어. 요번엔 정말 빈틈없이 준비했는데 막상 시간이 다가오니까 떨리네. 하지만 엄마가 있으니까, 할머니가 계시니까, 동생 규현이도 있으니까. 가족을 위해서 최선을 다할 거야. 끝나고 통화해.'

4년 전, 어머니에게 문자를 보냈다. 복잡한 심경이 얽혔지만 자신감은 단단했다. 그러나 올림픽은 다시 한번 그를 외면했다.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000m가 벌어진 밴쿠버 리치몬드 올림픽 오벌, 관중은 이미 퇴장했다. 혈전을 마친 대부분의 선수들도 숙소로 돌아갔다. 경기장은 감동을 뒤로한 채 적막에 휩싸였다. 하지만 그는 떠날 수 없었다. 취재진을 피해 홀로 경기장 한 구석에 자리를 했다. 올림픽 메달을 향한 16년간의 도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설움이 북받쳤다.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휴대폰을 열었다. 평소 친형처럼 의지하던 제갈성렬 전 SBS 해설위원에게 전화를 했다. "형, 난 올림픽이랑은 인연이 없나봐." 그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중계를 마치고 방송센터로 향하던 제갈 위원도 마음속으로 함께 울었단다. 그 때가 마지막인 줄 알았다.

이규혁(36·서울시청)의 올림픽 드림은 2010년 밴쿠버올림픽(캐나다)이 끝이 아니었다. 1991년 열세 살의 어린 나이에 처음 태극마크를 단 그가 올림픽과 처음 만난 것은 16세 때였다. 1994년 릴레함메르(노르웨이)였다. 1998년 나가노(일본),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미국), 2006년 토리노(이탈리아), 2010년 밴쿠버를 지켰다. 강산이 두 번 바뀌었다.

16세의 소년은 어느덧 불혹을 바라보고 있다. 이규혁은 소치 무대에 다시 선다. 스피드스케이팅 500m와 1000m에 출격한다. 5전6기의 무대다.

걸어온 길이 올림픽 신화다. 6번째 올림픽 출전은 한국 최초의 기록이다. 1978년 3월생인 이규혁은 여자 선수 중 최고령인 컬링의 신미선(1978년 4월생)보다 생일이 한 달 빠르다. 최고령 선수다. 가장 어린 여자 피겨스케이팅의 기대주 박소연(17·신목고)보다 무려 알아홉 살이나 많다.

또 다른 도전의 향기는 그윽하다. 그는 결코 패자가 아니다. 진정한 올림픽 챔피언이었다. 그가 없었다면 한국 빙속이 밴쿠버에서 일궈낸 금2, 은2의 영광도 없었다. 이규혁의 자리를 채우고 500m와 1000m에서 각각 금, 은메달을 목에 걸은 모태범과 여자 500m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이상화는 이구동성으로 이규혁에게 그 공을 돌렸다.


그는 '정신적 지주'로 소치에서 함께 호흡한다. "또 한 번의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4년 전에는 왜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하는 새로움도 있다."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 스피드스케이팅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선후배 간의 유대감도 예전만 못하다. 여전히 그는 '선수 이규혁'이다. 메달 전망을 떠나 늘 그랬듯 정상을 꿈꾼다.

세계 스프린트 선수권대회 4차례, 종목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1차례 정상에 오른 그는 월드컵 시리즈에서 통산 14개의 금메달을 수확했다. 하지만 올림픽에선 '노메달'이다. 그는 "내게 올림픽은 '메달이 없는 대회'이기 때문에 그저 기분좋게 생각하기보다는 아쉬움을 털고 싶은 마음"이라며 "한 해씩만 더 하자는 마음으로 선수 생활을 이어가다 보니 어느새 다음 올림픽이 다가오고 있더라. 그래서 1년만, 몇 달만 더 버티자는 생각으로 힘든 훈련을 버텨냈다"고 했다.

더 이상 4년 후는 없다. 소치는 선수 생활을 정리하는 마지막 무대다. 이규혁은 "더는 이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는 나만의 편안함이 있다. 끝을 예상하고 준비했으니 많이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며 "예전에는 올림픽 출발선만 생각했다면 지금은 끝나고 뭘 할지, 무슨 생각을 하게 될지 떠올린다"며 희미하게 웃었다.

이규혁은 한국 빙속의 찬란한 유산이다. 그는 화려한 피날레를 머릿속에 그리고 있다. 소치는 과연 어떤 추억을 선물할까. 결전만 남았다.
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

Copyright (c) 스포츠조선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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