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승마는 역대 아시안게임에서 11개의 금메달을 획득했다. 15개를 딴 일본에 이어 2위다. 세계 무대와 격차가 크지만, 아시안게임에서만큼은 효자노릇을 톡톡히 해왔다. 그러나 안방에서 개최되는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에선 망신당할 위기에 놓였다.
대한승마협회가 파행을 거듭하고 있다. 신은철 대한승마협회 회장을 비롯해 핵심 지도부 5명이 전격 사퇴했다. 신 회장과 함께 김효진 실무부회장, 안중호 부회장, 전유헌 이사, 손영신 이사 등이 사퇴하면서 승마협회는 사면초가에 빠졌다. 서울대 교수인 안 부회장을 제외한 나머지 네명은 모두 한화그룹 소속이다. 이는 3대째 이어 온 한화그룹의 승마 후원이 중단됐음을 의미한다.
한화의 승마사랑은 유명하다. 고(故) 김종희 한화 창업주는 1964년 도쿄올림픽 때 외국에서 말을 구해와 한국 승마대표팀이 올림픽에 참가하도록 도왔다. 한화는 갤러리아 승마단을 운영하고 대회를 직접 개최하며 승마협회의 재정 지원을 도왔다. 김승연 회장의 차남인 김동선은 아시안게임에서 두차례 금메달을 획득한 국가대표다. 한화생명 고문인 신 회장은 2012년 6월 승마협회에 부임해 약 2년간 한국 승마를 이끌어왔다. 지난해 1월 연임에 성공했고 임기는 2017년까지였다. 그는 2013년 5월 아시아승마협회장에도 선출됐다.
안민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8일 국회 교육·사회·문화 분야 대정부 질의가 도화선이 됐다. 안 의원은 "지난해 5월 대한승마협회 살생부가 작성돼 청와대에 전달됐다"며 "청와대 지시로 체육단체 특감이 추진돼 청와대, 문체부, 시도체육회에서 살생부에 오른 인사들에게 사퇴 종용 압력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안 의원은 이과정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통하는 정모씨의 딸이 승마 국가대표로 선발돼 특혜를 누리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승마협회의 관계자는 "한화가 최근 불거진 논란이 정치적으로 비화될 조짐을 보이자 빨리 승마에서 손을 떼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승마협회는 난감한 모습이다. 연간 10억원 이상 지원된 후원금이 하루아침에 끊겼기 때문이다. 승마협회 관계자는 "당장 대회를 치르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이런 일이 벌어져 유감스럽다. 정치 싸움에 승마협회가 연루되며 스폰서를 잃어버렸다"며 울상을 지었다. 차기집행부 구성도 쉽지 않다. 회장의 궐위 시에는 부회장 중 한명이 직무대행을 맡아야 하지만 이날 부회장 두명까지 모두 사퇴해 직무대행 선임도 난관에 봉착했다. 60일간 회장을 선임하지 못할시 사고단체로 선정된다.
이같은 파행이 이어진 1차 원인은 승마협회의 안일한 일처리다. 이번 논란의 중심에는 비리로 직위가 해직된 전 승마협회 관계자가 연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승마협회는 그가 승마계 여러 현안마다 개입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비호했다는 의혹까지 나오고 있다. 일찌감치 싹을 완벽히 잘랐더라면 이처럼 사태가 확대되지 않았을 것이라는게 승마계의 의견이다.
한화 역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미 올해 예산 및 안건심의까지 끝난 마당에 한순간에 나몰라라 하고 물러서는 것은 대기업 답지 못한 처사다. 한화는 승마에 많은 지원을 아끼지 않았지만, 이를 통해 얻은 것도 많다. 신 회장은 승마협회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 아시아승마협회장까지 올랐다. 개인적 명예를 얻었다. 그는 승마협회장은 사퇴를 선언했지만, 아시아승마협회장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 한화는 아시안게임이라는 거사를 앞에 두고 무책임하게 물러섰다는 비난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의혹이 없다면 당당히 밝히면 그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