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효원이 룩셈부르크전 마지막 5단식을 앞두고 있는 석하정에게 다가가 이야기를 나누며 긴장을 풀어주고 있다. 사진제공=대한탁구협회, 웍간탁구 안성호 기자
"(석)하정이언니를 안아줘야겠어요."
1일 도쿄세계탁구선수권 조별리그 최종 룩셈부르크전, 0-2의 게임스코어를 3대2로 뒤집어놓은 '역전주자' 양하은(20·대한항공 ·세계랭킹 21위)이 말했다. 대한민국 여자탁구대표팀이 '굳건한 자매애'가 빛났다.
일본 도쿄 요요기경기장에서 펼쳐진 도쿄세계탁구선구권 여자단체전 C조 조별리그 최종전 룩셈부르크전에서 한국은 3대2로 역전승했다. 첫경기 네덜란드전에 이은, 또한번의 역전드라마였다.
사진제공=대한탁구협회, 웍간탁구 안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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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연승을 달리던 여자대표팀은 30일 펑톈웨이의 싱가포르에게 1대3으로 패하며 조1위를 내줬다. 8강 직행은 불발됐지만 조2-3위가 겨루는 16강행을 통한 8강행은 무난하다는 판단이었다. 조별리그 최종전 룩셈부르크전, 낙승을 예상했다. 김형석 여자대표팀 감독은 1차전 엔트리 '서효원(27·한국마사회·세계랭킹 8위)-양하은-석하정(29·대한항공 ·세계랭킹 15위)' 조합을 재신임했다.
단체전으로 진행된 이번 대회, '세계 15위'이자 귀화에이스인 석하정의 부진은 대표팀 최대의 고민이었다. 전매특허인 강력한 포어핸드드라이브가 빛을 잃었다. 테이블앞에만 서면 다리가 뻣뻣하게 얼어붙었다. 석하정은 지난해 아시안컵에서 단체전 멤버로 나섰다. 결과가 좋지 않았다. "귀화선수라서 국가경쟁인 단체전엔 안맞는다"라는 얘기를 들었다. '단체전 트라우마'가 생겼다. 탁구가 무서워졌다.
지난달 30일 네덜란드와의 첫경기 제3단식에 나섰다. 석하정은 위축된 모습이었다. '세계100위' 브리트 에란드에게 1대3으로 졌다. 스무살 막내 양하은이 '소방수'로, '톱랭커' 서효원이 '마무리'로 활약하면서 천신만고 끝에 3대2로 승리했다. 이후 조별리그 2~4차전(프랑스-러시아-싱가포르)엔 석하정 대신 '왼손 에이스' 박영숙(26·한국마사회·세계랭킹 61위)이 나섰다. 박영숙은 3경기에서 3승을 책임지며 제몫을 톡톡히 해냈다.
사진제공=대한탁구협회, 웍간탁구 안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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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별리그 순위를 확정하는 룩셈부르크전 제1단식, 양하은이 중국 출신 '50세 베테랑' 니시알리안에게 풀세트접전끝에 2대3(11-8, 9-11, 5-11, 11-6, 7-11)으로 졌다. 제2단식 석하정이 테이블 앞에 섰다. 세계랭킹 156위, 사라 드 뉘트와 마주했다. 믿었던 석하정은 또다시 흔들렸다. 무기력한 경기끝에 0대3으로 완패했다. 2번 연속 100위권 선수들에게 패했다. 선수도, 대표팀도 '멘붕'이었다. 벤치로 돌아온 석하정은 고통스러웠다. "집에 가야겠다. 탁구를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이 맴돌았다.
세계선수권 단체전은 단식 5경기, 5전3선승제로 진행된다. 게임스코어 0-2, 한경기만 더 내주면 룩셈부르크에 패해 조3위로 주저앉을 위기였다. '톱랭커' 서효원이 제3단식에 나섰다. 테시 곤데린저(세계 251위)를 상대로 압도적인 3대0(11-3, 11-7, 14-12) 승리를 가져왔다. 제4단식, 양하은은 비장했다. 석하정을 3대0으로 누른 드뉘트는 기가 살았다. 공 하나하나 혼신의 힘을 다했다. 두번의 듀스 접전을 끈질기게 이겨냈다. 3대0(12-10, 11-2, 12-10)으로 돌려세우며 '복수혈전'에 성공했다.
마지막 5단식 또다시 석하정에게 공이 넘어왔다.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서효원이 몸을 푸는 석하정에게 다가갔다. "언니, 져도 죽지 않아. 괜찮아. 탁구는 계속될 거고, 우리탁구는 여기서 안끝나. 또 올라가면 돼. 편하게 쳐." 동료의 진심어린 한마디는 '힐링'이었다. 마음이 풀렸다. 몸도 함께 풀렸다. "벼랑끝이다. 어차피 진다면 해볼 것 다해보고 지자. 결과 생각하지 말고 하나하나 풀어가자."
김형석 여자대표팀 감독은 "룩셈부르크를 상대로 어려운 경기를 했다. 석하정이 첫세트에서 진 후 의기소침한 모습이었는데, 잘 마무리할 수 있어 다행이다"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에이스의 부활'을 반겼다. "경기에 들어가기전헤 하정이가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다. 벼랑끝이다. 죽기살기로 하겠다고 하더라. 서효원 양하은 박영숙이 잘 견뎌주고 있는 상황에서 하정이가 살아난다면 향후 8강, 4강에서 재도약을 노려볼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믹스트존에서 만난 석하정은 "탁구가 너무 고통스러웠다"며 연신 눈물을 닦아냈다. 역전의 발판을 만든 양하은은 "첫게임에서 내가 이겨줬어야 했다"며 오히려 자신을 탓했다. 서효원은 "선수라면 누구나 안풀릴 때가 있다. 그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안다. 후회없이 경기하고 돌아가는 것이 목표다. 하정언니가 이제 자신감을 갖고 즐겼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전영지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