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할린 첫 국가대표 배출 꿈꾸는 전상근 사범

기사입력 2016-04-04 18:20



K팝, K뷰티 등이 유행을 타고 있지만 진짜 한류는 '태권도'다.

태권도는 전세계에서 한국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다. 세계태권도연맹(WTF)에 가입한 가맹국만해도 206개국에 이른다. 수련인구도 8000만명 이상으로 추정되고 있다. 전세계인 80명 중 한명이 태권도를 즐기고 있다는 뜻이다. 이처럼 태권도가 세계 곳곳으로 뻗어나갈 수 있었던데에는 해외 사범들의 공이 절대적이었다. 세계 각국에서 태권도 뿌리 내리기에 여념이 없다.

사할린에서 태권도를 전파하고 있는 전상근 사범(50)도 이들 중 한명이다. 전 사범은 러시아 유일의 한국 정부 파견 태권도인이다. 국기원은 2009년 문화체육관광부와 함께 태권도 사범 파견 사업을 추진했다. 현재 세계 33개국에 사범을 파견해 태권도 보급에 압장서고 있다. 주로 경제 사정이 어려운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 중남미에 집중돼 있다. 이미 태권도가 자리잡은 러시아는 지원대상 국가가 아니었다. 사할린 동양 스포츠학교와 한국 외교부의 요청으로 사할린에도 사범을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전 사범이 대상자로 낙점됐다. 지난해 12월에 사할린에 온 전 사범은 "너무 추워서 유배 온 줄 알았다"며 웃었다.

사할린에서도 태권도는 인기 종목이다. 고려인들을 비롯해 한인들이 있는만큼 태권도 도장도 여러군데 있다. 한인 사범도 제법된다. 하지만 위상은 가라데, 유도 등에 미치지 못한다. 400여명의 학생이 있는 사할린 동양스포츠 학교에는 아예 태권도부가 없었다. 코치만 8명이 있는 가라데와 비교하면 더욱 초라한 현실이었다. 사할린에서 태권도의 위상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던 전 사범은 태권도 실업팀 창설을 계획했다. 전 사범은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사할린 체육부 장관을 만났다. 실업팀 창설을 위한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해서 갔는데 처음에는 웃더니 내가 거절 못할 제안을 했더니 나중에는 진지하게 듣더라. 흔쾌히 동의해줬다"고 했다. 그가 말한 제안은 '사할린 첫 국가대표'의 배출이다. 사할린에서는 종목을 막론하고 아직까지 러시아 대표선수를 배출하지 못했다. 전 사범은 "1년 안에 그림을 만들고 2018년에 있을 선발전에서 대표 선수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안되면 지원을 끊으라고 했다. 내가 외국인인만큼 그들을 설득시키기 위한 배수진이었다"고 했다.

그렇다고 무모한 도전은 아니었다. 무명 선수 출신의 전 사범은 지도자로 잔뼈가 굵다. 신생팀이었던 마산 구암고를 명문으로 바꾼 그는 2006년 대표팀 코치를 거쳐, 알제리, 코스타리카, 인도 대표팀을 이끌었다. 지역별 대회에서 우승자를 배출하는 등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전 사범은 "러시아 선수들은 연습 시간이 매우 짧다. 한국에서 전지훈련을 3개월만 하면 몇 년치 훈련 효과를 낼 수 있다. 내년말까지는 2018년 초에 이뤄질 러시아대표팀 선발전에 나갈 선수들을 키울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는 5월말까지 팀이 구성되면 6월말 경주에서 열리는 코리아오픈에 출전할 예정이다. 12월에는 한국으로 전지훈련을 올 예정이다. 전 감독은 스파르타식 지도로 유명하다. 그의 지도철학은 '땀만큼 성과가 나온다'다. 조금씩 성과도 나오고 있다. 전 감독은 "스포츠학교 학생수가 30명으로 늘었다. 지도 방식을 신기해하고 재밌어 한다. 실업팀 선수들도 찾아보고 있다. 남자 보다는 여자로 결정했다. 아무래도 저변이 넓은 남자보다는 대표 배출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1명 정도는 결정을 했고 블라디보스토크와 하바롭스크에 가서 선수들을 발굴할 예정이다. 힘이 좋아서 발전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동포 사회에서도 관심이 늘어나며 전 사범의 계획도 조금씩 윤곽이 드내고 있다. 고민도 생겼다. 전 사범은 실업팀 규모로 8명 정도를 생각하고 있다. 이중 절반만이 사할린 주 정부가 지원을 해주기로 했다. 나머지 선수들의 급여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전 사범은 "알제리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는데 당시에는 국내기업이 지원을 해줬다. 하지만 사할린에는 그 정도로 큰 기업이 없다. 월 5000달러 정도면 된다. 후원사가 절실하다"고 답답해했다. 실업팀 창단으로 전 사범은 예정된 꽃길을 포기하고 가시밭길을 걷게 됐다. 사할린에서 처음하는 일이라 고비도 있을 것이다. 그는 후회하지 않는다. 그의 꿈 때문이다. 전 사범은 "나는 실패한 선수였다. 하지만 내가 가르치는 선수는 최고가 되는 것을 보고 싶다. 여러 나라를 거치면서 그 희열을 맛봤다. 사할린 출신이 2020년 도쿄올림픽에 출전하는 모습을 본다면 그만한 행복은 없을 것"이라고 웃었다.


사할린(러시아)=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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