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퇴사하겠습니다." 2024년 파리패럴림픽 역도(파워리프팅) 80㎏ 4위를 차지한 장애인 역도 간판 김규호(44·평택시청)는 한때 남부럽지 않은 연봉을 받는 은행원이었다. 2012년에 입사해 2021년 10월 퇴사할 때까지 9년간 우리은행을 다녔다. 수인업무센터 금융정보팀 등에서 일했다. 단란한 가정도 꾸렸다. 어느 날 김규호의 퇴사 결심을 전해들은 한 직장 선배는 '은행을 떠난 사람 중 90%가 후회를 했다. 나는 네 결정이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꿈을 좇는 건 좋지만, 옳은 선택이 아닌 것 같다'고 만류했다고 한다. 불혹을 갓 넘긴 나이였다. 40세는 무언가를 도전하기에 이른 나이가 결코 아니다. 하지만 현실은 꿈 앞에서 꼬리를 내렸다. 김규호는 "주변에선 무슨 일이 생길까봐 걱정했는데, 은행에 다니더라도 무슨 일이 생길 수 있다. 지금이 아니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내 선택이 옳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규호의 꿈은 '패럴림픽'이었다. 만 4살 때 교통사고로 오른쪽 다리를 잃은 김규호는 장애인 조정 선수로 활동하다 2013년 역도 선수로 전향했다. 그 이후 은행 업무와 역도 선수를 병행했다. 퇴근 후 역기를 들었다.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국제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적지 않은 자비를 털어야 하는 등 현실적인 문제도 있었다. 파리패럴림픽에서 메달에 도전하기 위해선 우선 익숙한 것과 결별해야 했다. 퇴사 후 평택시청에 입단하며 본격적으로 운동에 전념한 김규호는 2023년 부단한 노력으로 목표로 삼은 200㎏을 돌파했다. 체중 100㎏ 이하 장애인 선수가 200㎏ 이상을 든 건 김규호 포함 4명뿐이다. 김규호는 "역도라는 종목은 언제든지 내가 하고 싶은 시간에 운동할 수 있다는 점에 끌렸다. 처음부터 잘했던 건 아니다. 200㎏도 꾸준한 노력으로 일군 결실"이라고 말했다.
|
김규호는 "세계 최정상과의 격차를 인정했지만, 나를 증명하고, (메달)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대회였다. 4년 더 도전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고 말했다. 360도로 구성된 경기장에서 한 한국인 관중이 '김규호!'라고 외치는 목소리가 두고두고 잊히지 않는다고 했다.
김규호는 2028년 LA패럴림픽이라는 명확한 목표점이 있기 때문에 파리 대회가 끝난 뒤에도 단 하루도 쉬지 않았다고 했다. 세계 최정상과의 격차를 좁히는 방법이 오직 땀뿐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김규호는 3월 일본 대회를 시작으로 6월 중국 대회, 10월 이집트 엘리트 월드챔피언십에 줄줄이 출전할 예정이다. 내년에는 2026년 아이치-나고야장애인아시안게임이 열린다. 김규호는 "제 체급 1~3위가 모두 아시아 선수다. 이란, 중국, 이라크, 요르단 등이 강세다. 아시안게임에서 220㎏을 들어 포디움에 오르면 다음 패럴림픽에서도 좋은 성적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역도 선배' 장미란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은 김규호의 롤모델이다. 그는 "경기를 앞두고 '집중해야 해'라는 장 차관의 말을 들으면 힘이 난다"고 했다. 김규호는 "최고의 선수가 돼 최고의 연봉을 받는 것이 목표다. 역도 종목에서 김연아, 손흥민 같은 선수가 되고 싶다. 그래서 훗날 떳떳하게 후배들에게 최고의 자리를 물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윤진만 기자 yoonjin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