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전영지 기자]'평창패럴림픽 영웅' 신의현 대한장애인체육회(KPC) 선수위원장(46·BDH파라스)은 요즘 지도자 공부에 푹 빠져 있다. '노르딕 철인' 신 위원장은 대한민국 동계 스포츠 리빙 레전드다. 군대 특공대 출신 '상남자'인 그는 교통사고로 스물다섯에 두 다리를 잃은 후 4년 만인 2009년 친구 형의 권유로 휠체어농구를 시작했다.
이후 파라아이스하키, 핸드사이클 등 다양한 스포츠를 경험하던 중 그의 남다른 투지와 배짱을 눈여겨본 정진완 대한장애인체육회장(당시 문체부 장애인체육과장)의 권유로 2015년 배동현 장애인노르딕스키연맹 회장이 창단한 창성건설 파라-노르딕스키 실업팀에 입단, 철인의 도전을 시작했다. 강철 체력과 불굴의 투지, 부단한 노력으로 입문 2년 만에 포디움을 꿰찼고, 2018년 평창동계패럴림픽 크로스컨트리 남자 클래식 좌식 7.5㎞에서 대한민국 선수 최초로 기적같은 금메달, 크로스컨트리 스키 남자 15㎞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의 도전은 멈추지 않았다. 2023년 베이징 대회에 이어 40대 중반에 나선 2026년 밀라노-코르티나 대회에서 크로스컨트리, 바이애슬론 전종목을 완주하는 괴력을 선보였다. '스마일 철녀' 김윤지(20·한체대·BDH파라스)가 첫 패럴림픽에서 금메달 2개, 은메달 3개를 휩쓸며 대한민국 선수 최다 메달 기록을 세운 역사의 이면엔 늘 함께 설원을 달리며 썰매를 고쳐주고 경험담을 기꺼이 나눠준 '금메달 멘토' 의현 삼촌이 있었다.
"윤지같은 훌륭한 후배가 나와 이제 마음 편히 떠날 수 있겠다"던 신 위원장은 밀라노-코르티나 대회 직후 선수 은퇴를 선언했다. '제2의 김윤지'를 키워내기 위한 지도자 수업을 시작했다. 누구보다 아끼는 구단주이자 이제 가족이 된 배동현 BDH 재단 이사장이 새 도전을 적극 지원하고 나섰다. 배 이사장의 추천으로 5월부터 국제바이애슬론연맹 코치 아카데미-파라바이애슬론 기초과정을 수강 중이다. 온-오프라인 수업을 병행하는 '하이브리드' 방식. 5~6월 두 달간 온라인 프로그램 수강 후 7월 테스트를 마쳤고. 6월 5~8일 이탈리아 안톨츠-안테르셀바에서 첫 대면 교육을 받았다. 세계적인 바이애슬론 경기장 쥐르티롤 아레나 알토 아디제에서 전세계 지도자들과 함께 수업을 하는 새로운 경험을 했다. 9월 21~24일 독일 오버호프에서 2차 대면 교육을 받을 예정이다.
지난 10년간 설원에서 앞만 보고 달려온 그에겐 처음 가보는 길이다. 평창서 새 시즌을 한창 준비할 시기에 혼자 공부를 하고 있는 이 현실이 낯설다. 하지만 지도자의 길을 결심한 이유는 분명하다. 신 위원장은 "배동현 이사장님이 10년 내내 한결같이 지원해주신 덕분에 패럴림픽 금메달의 꿈을 이뤘다. 배 이사장님께서 내게 아낌없이 나눠주셨듯 나 역시 후배, 동료들에게 미력하나마 도움이 되고 싶다"고 했다. "처음 노르딕스키를 시작했을 때는 막막했다. 정확히 아는 사람도,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었다. 첫 국제대회에서 꼴찌를 한 후 1등 러시아 선수의 썰매를 훔쳐봤다. 썰매 바스켓 크기, 높이도 바꿔보고, 이런저런 시행착오도 많았다. 그렇게 10년간 국제대회를 오가며 몸으로 배우고 익힌 것을 후배들과 나누고 싶다. 후배들은 시행착오를 덜 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22~28일 이천선수촌에서 열리는 '2026년 꿈나무 선수 하계 스포츠 캠프'에도 멘토로 참여해, 노르딕스키 꿈나무 선수를 직접 찾아나선다. 총 35명의 휠체어, 하지, 상지, 시각장애 장애 유·청소년들이 참가하는 만큼 '제2의 김윤지'를 발굴할, 더없이 좋은 기회다.
눈 밝은 정진완 대한장애인체육회장이 노르딕스키 재목으로 신의현을 한눈에 점 찍은 이유는 지고는 못 사는 승부욕과 포기를 모르는 근성이었다. "2010년에 핸드사이클을 시작했다. 패럴림픽에 도전하겠다는 꿈을 품고 마이너스 통장으로 900만원짜리 사이클을 샀다. 상금을 계속 타서 메우겠다고 결심했다. 충남 대표로 광주 대회를 나갔는데 내리막길 코너를 돌다 넘어졌다. 핸들이 부러졌는데 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다. 피를 철철 흘리면서 앰뷸런스도 안타고 끝까지 결승선을 통과하는 모습을 당시 충남장애인체육회 사무처장이던 회장님이 보셨던 모양이다. 2015년에 문체부 장애인체육과장 하실 때 문득 전화하셔서 '노르딕 스키 한번 해볼래'하셨다"며 운명의 순간을 돌아봤다. "세상에 기회는 늘 널려 있다. 기회인 줄도 모르고 흘려보낸다. 나도, 윤지도 '악으로 깡으로' 그 기회를 잡은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웃었다.
그가 찾는 선수도 그렇다. 가장 중요한 건 해내고야 말겠다는 '근성'과 할 수 있다는 '긍정의 마인드'다. 신 위원장은 "윤지처럼 근성 있고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진 선수를 찾는다. 운동 능력, 유리한 장애조건 그런 건 없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하는 것, 뭘 하든 가장 중요한 건 결국은 마인드"라고 힘주어 말했다. "어릴 때 운동을 시작하는 것도 중요하다. 윤지도 아주 어릴 때부터 수영을 했다. 꿈나무 캠프를 통해 근성 있고 체력 있는 좋은 선수를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신 위원장은 자신이 그러했듯 더 많은 유·청소년들이 스포츠를 통해 세상을 만나고, 더 행복해지기를 희망했다. "장애인이 된 후 3~4년간 술을 퍼마시며 폐인처럼 살았다. 어머니께 '왜 나를 살려놨느냐'고 원망도 했다. 큰 불효였다"면서 "장애인체육을 만나면서 인생이 바뀌고 목표가 생겼다. 행복과 성공을 얻었다. 더 많은 후배들이 스포츠를 통해 성공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마흔여섯 은퇴할 때까지 가장 먼저, 가장 마지막까지 훈련에 임하는 선수였다. 베테랑의 솔선수범이 대한민국 선수단의 분위기를 이끌었다. 그는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 BDH파라스에 들어간 후 술, 담배를 딱 끊었다. 오직 훈련에만 전념했다. 그래야 프로페셔널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평창패럴림픽 때 캐스퍼 노르딕스키 대표팀 감독님, 휠체어농구 때 고 한사현 감독님을 존경한다. 따뜻하고 다정한 분들이셨다. 나도 후배들이 언제든 스스럼없이 다가설 수 있는 좋은 어른, 좋은 지도자가 되고 싶다"며 미소 지었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